마스크 쓰고 아기와 만나는 코로나 시국 출산 후기
9월 24일 드디어 일단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이틀 늦은 날이었다.
출산한 지 두 달 정도가 지났지만 분만실에서 느꼈던 초조함과 죽을 것 같이 아프던 진통과 일단이가 내 몸에서 빠져나오던 순간, 일단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와 눈 맞췄을 때가 모두 어제처럼 생생하다.
출산 이후 지인들에게 여러 질문을 받았다. 얼마나 아팠는지 고통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특히 회음부 절개. (나도 출산 전엔 회음부 절개가 가장 무서웠다. 막상 겪어보니 회음부 절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코로나 시국의 분만 과정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진통할 때도 마스크 껴? 분만실에 누가 들어갈 수 있나? 등등.
여성 상당수가 겪는 강렬한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출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여전히 덜 알려져 있다.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을 포함해, 나의 분만 경험을 시간 단위로 자세히 적어봤다.
출산을 앞두고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맘카페의 생생한 출산후기들이었다.
내 경험도 누군가에게 정보와 응원이 되면 좋겠다.
20:30
일단대디와 저녁 먹고 산책을 나갔는데, 20분쯤 걸었을 때 따뜻한 물이 주르륵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틀림없는 양수다. (소변과 많이들 헷갈려하는데, 막상 양수 터지니까 확실히 알겠더라. 정말 주륵 계속 흐른다)
와! 드디어 일단이가 나오나 보다. 일단대디가 엄청 깜짝 놀란 얼굴로 택시를 불러야 하나 허둥지둥이다. 어쩔까 잠시 고민하다 멀지 않으니 걸어서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마주잡은 일단대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떨리고 벅차오른다며. 꼭 결혼식 때처럼. 나도 피식피식 자꾸 웃음이 나왔다. 분만은 너무 긴장되는데 일단이 만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설렜다.
빙구처럼 둘이 웃으며 걷다가, 문득 양수 터지고 이렇게 걸어도 되나 의문이 들었다. 서둘러 검색을 해보니 양수 터진 뒤 진통이 안 걸리면 촉진제를 써야하고, 촉진제를 써도 아기가 안 내려오면 응급 제왕절개를 해야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21:40
코로나 때문에 양수 확인 전까지 신랑은 분만실에 들어올 수 없다. 접수하고 분만실에 혼자 들어왔다. 태아 모니터링을 하면서 양수가 맞는지 테스트했는데 간호사 분이 양수가 아니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질에 고여있던 분비물이 왈칵 쏟아져서 그럴 수 있다고. 바지가 젖을 정도로 여러 번 물이 흘렀는데??
간호사 분 말론 이런 일이 꽤 있단다. 일단 30분 이후에 다시 한번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질경 넣어서 하는 더 정확한 방법이라고. 양수가 아니면 그냥 집에 가서 진통 오길 기다리면 된단다. 흠냐;;;
22:10
혼자 어리둥절한 상태로 누워있는데 다른 간호사 분이 오셔서 젖은 내 속옷과 바지에 양수 테스트를 하더니 양수가 맞단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이제 일단대디도 입원 절차를 밟은 뒤 분만실로 합류했다. 일단대디를 보니 너무 반갑다. 예정일 전 날 보건소에서 둘 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두길 너무 잘했다.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은 산모와 보호자 1인만 분만실 출입 가능)
내진을 했다. 아직 아기가 높이 있단다. 자궁문은 1cm열렸다. 일주일 전 검진 받으러 갔을 때와 같은 상태.
무통주사, 회음부 열상 방지 주사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동의서를 작성했다. 항생제 이상반응 체크를 했는데, 꽤 따끔해서 놀랐다. 수액과 항생제 투여가 시작됐다.
밤 중엔 촉진제는 딱히 쓰지 않을 거라며 자연진통을 기다리란다. 내일 힘들거니까 잘 수 있으면 자라는데, 과연 잘 수 있을까.
분만실은 생각보다 고요하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릴 줄 알았는데.
내 상태 역시 너무 고요하다. 진통이 올 것 같지 않다. 편히 자라고 일단대디를 집에 보냈다. (이 병원은 3시간 이내의 외출은 가능하다)
간신히 잠이 들려는데 비명소리가 들려 깼다. 옆옆 침대다. 아기 심박수가 급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간호사 분들 목소리도 들린다. 응급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가는 듯하다. 남 일이 아니다. 무사히 출산하시길 기원하며 자다 깨다 했다.
새벽 5시 반, 일단대디가 돌아왔다.
07:00
아직도 진통이 오지 않고 있다. 결국 촉진제를 투여했다.
배가 살살 아픈 것 같다가도 곧 괜찮아지길 반복 중이다.
08:30
까무륵 잠들었다가 깼다. 좀 잤더니 한결 몸이 편하다. 여전히 진통은 오지 않고 있다.
화장실에 갔는데 피가 묻어나온다. 간호사 분이 이슬이라며 계속 나올 거라고 했다.
배고프다. 일단대디는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분만실은 여전히 조용하고 평화롭다.
09:00
주치의 선생님이 왔다. 진통이 너무 안 오는 것 같다고 걱정했더니, 원래 초산은 양수 터져도 진통 걸리는 데 오래 걸린단다. 걱정 말라고 웃으며 이야기하셔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양수가 먼저 터졌으니, 어쨌든 내일까지는 무슨 방법(!)으로든 출산을 해야한다고 한다. 으아, 제왕절개 안 하고 싶은데... 일단아, 힘내서 내려오렴.
09:30
짐볼을 빌려 20분 정도 했다.
10:00
내진. 아직도 1cm… H언니가 격려차 전화를 했다. 어떻게든 애는 나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응원해줬다. 양수 터진 지 12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진통이 없다. 제왕절개할 수도 있겠구나. 마음을 다잡는다.
13:00
어제 저녁식사 이후 물도 마시지 못하고 있다. 혹시 응급 수술을 할 수 있어서다. 배도 고프다. 일단대디는 점심 식사를 하러 내보냈다. 신랑이 자리를 비운 사이 주치의 선생님이 한 번 더 오셨다. 아직도 진통이 없다는 내 이야기에 촉진제를 더 투여해줬다.
13:10
친구 P에게 전화가 왔다. 수다를 떨던 중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점점 더 아프다. 아, 이게 진통인가? 심상치 않은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13:30
으아, 진통이구나. 점점 더 아프다. 진통 주기 측정 앱을 켠다. 주기가 3분 안쪽이다. 촉진제 때문에 가진통 없이 진진통이 바로 시작된 건가 싶다. 점심 먹으러 간 일단대디에게 얼른 들어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14:30
누워도 아프고 서도 아프다. 일단대디 어깨를 잡고 서서 허리를 살살 움직인다. 고통을 줄여준다는 자세다.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며 호흡도 계속 한다. 정말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다.
마스크 착용이 원칙이지만 혼자 있거나 일단대디와 함께 있을 때 진통 중인 산모는 마스크를 벗고 있어도 됐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
간호사 선생님이 내진해 보더니 3.5cm 열렸다고 한다. 관장하고 무통주사 도와주겠다고 한다.
좀 더 진통을 견뎌 볼 마음도 있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더 아프면 무통주사 못 맞을 수 있단다. 무통주사 맞는 자세를 못 할 수 있다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간다. 하지만 무통주사 못 맞을 수 있다는 말에 겁이나 무조건 알겠다고 답했다.
정신이 혼미해 간호사 선생님 이야기가 멀리서 들리는 듯하다.
15:00
간호사 선생님이 관장약을 넣어준 뒤 가족 분만실로 이동하라고 한다. 정신없는 와중에 '아, 이제 진짜 출산하나보다' 싶다. 비틀비틀 걸어 가족분만실에 갔다. 최대한 참다가 변을 보라고 했는데 10분도 참지 못했다.
15:30
마치과 선생님이 오셨다. 옆으로 누워 허리를 구부리라고 한다. 진통이 너무 심해서 (아까 간호사 선생님 말처럼) 자세를 유지하는 게 힘들다. 간신히 자세를 유지하고 무통주사를 맞았다.
무통주사 맞으면 천국이라던데 그 정도는 아니다. 조금 편안해지나 싶더니 잠깐이다. 곧 진통이 다시 심해졌다. 너무 아파하니까 간호사 선생님이 다시 내진을 했다.
6cm다. 이래서 아프셨구나-하더니, 이제 힘을 줘보자고 한다. 진통 올 때마다 아래에 힘주라고, 그래야 아기가 잘 내려온단다. 아기를 도와주는 마음으로 열심히 힘을 줬다. 일단대디가 계속 등마사지를 해줬다. 산소 마스크를 씌워줘서 그나마 호흡하기 수월했다.
17:00
계속 더 아프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간호사 선생님이 내진 하더니 되게 좋다며 8cm가 열렸다고 했다.
이제 분만 준비를 하겠다며 회음부 절개를 해야해서 해당 부위를 제모하겠다고 했다. 맘카페에선 관장-제모 등 분만실에서 겪는 수치를 이야기하던데, 진통의 고통이 수치심을 훌쩍 뛰어넘는다. 관장이든 제모든, 힘줘서 응가를 지리든…. (출산 전에 미리 제모해야 한다는 글도 봤는데 아니더라고요. 미리 하실 필요 없어요)
제모 뒤엔 힘을 어떻게 주는지 알려 주셨다. 양팔로 두 다리를 잡고 윗몸일으키기 하듯 힘주는 자세. 유튜브에서 미리 봤던 자세다.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기 전에 숨을 멈춘 상태에서 힘을 줘야한다.
진통이 올 때마다 이 자세를 하라고 했는데,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배에 힘이 잘 들어 가는지 확신이 안 선다. 그래도 어떻게든 빨리 이 고통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노력해본다. 간호사 선생님이 잘 한다고 이야기 해줘서 힘이 잘 들어가나보다 안심했다.
17:30
다시 내진. 이제 다 열렸다고 했다. 아픈 와중에 너무 기뻤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분주하게 분만 준비를 하고, 주치의 선생님도 왔다. 주치의 선생님이 내진하더니 조금 더 아기 내려와야 할 것 같다고, 힘 계속 주란다.
일단대디와 간호사 선생님 한 분과 함께 계속 힘 주기를 했다. 무통주사를 껐다. 그래야 빨리 힘을 많이 줄 수 있다고 했다. 진짜 너무 아팠다.
잠시 뒤 주치의 선생님이 다시 와 보더니 이제 마지막 힘주기 해보자고 했다. 무통주사는 다시 켰다. 지금까지는 간간히 마스크를 뺄 수 있었는데 이제 마스크를 다시 낀다. 아기 맞이할 준비다.
18:00
죽을 것 같은 마지막 힘주기. 주치의 선생님이 자리잡고 앉있고 간호사 선생님 4명 정도가 양 옆에 자리 잡았다. 고통을 덜어주는 음악이 언제부턴가 틀어져 있었는데, 무슨 음악이었는지 생각도 안 난다.
마지막엔 한 선생님이 내 위에 올라가 배를 밀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힘내라고 계속 다그치니까 숨을 멈추고 계속 더 더 힘을 줬다.
18:33
가장 오래 숨을 멈추고 힘을 주는 마지막. 옆에서 일단대디가 같이 힘내라고 외치다가 “나온다”고 말 하는 게 들리고 드디어 뭔가 미끄덩한 덩어리가 쑥 나왔다. 아기가 엄청 크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쑥 나오는 느낌이 금방 끝났다.
마침내 아기가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계속 흘렀다.
아기는 젖어 있고 피부는 빨갰다. 나오자마자 크게 울 줄 알았는데, 조용하다.
선생님이 아기 엉덩이를 조금 때리니 마침내 작은 울음소리가 터진다.
뭔가 문제가 있나 불안한 와중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아기를 나에게 안겼다. 맨 살의 아기를 직접 만질 수 없어서 파란 천을 사이에 두고 안으라고 했다.
나는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했다. 너무 작았다. 눈물이 계속 났다. 이 아기가 뱃속에 있던 내 아기라니.
어떻게 안아야 하나 안절부절하는 찰나, 아기가 크게 못 울고 있어서 의료진들이 아기를 급하게 옆으로 데려갔다.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마취과 의사 선생님도 오셨다.
제발 제발 아무 문제 없어라. 제발….
머지않아 아기가 크게 울기 시작했다. 마음이 놓였다.
태반까지 다 나온 뒤 의사 선생님이 이제 나의 회음부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부분마취를 해서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첫 울음을 멈춘 일단이를 천에 싸서 내 옆에 데려와 주셨다. “일단아” 부르니 한쪽 눈을 감고 있던 아기가 양쪽 눈을 다 뜨고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나를 알아 보는 것처럼.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는 벌써 이 아이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있었다.
아기는 바로 신생아실로 올려 검사를 해야한다고 했다.
일단대디가 같이 가고 나는 약 2시간 분만실에 누워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
마스크는 젖어서 엉망이고, 입원복은 피가 묻어 엉망이다.
얼떨떨하게 누워있다가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마침내 아기가 태어났다. 내가 해냈다.
1시간쯤 뒤 일단대디가 돌아왔다. 아기 몸무게는 2.9kg. 양쪽 청력 문제 없고, B형 간염 1차 예방접종도 했다고 한다.
얼른 안아보고 싶지만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아기는 출산 직후 신생아실로 보내진다. 퇴원 전까지 유리벽을 사이에 둔 면회만 가능하다. 캥거루 케어도, 모유수유도 불가능한 시국에 태어난 우리 아기.
아기가 아무 문제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젠 고생한 나를 다독여야 할 시간이다.
1시간 정도 일단대디와 분만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더 책임감 갖고 살아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우린 세 가족이라는 일단대디 말이 새삼스레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