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엄마의 변명 혹은 항변
1. 육아 정보를 다루는 채널을 3개 이상 구독하고 있다.
2. 인플루언서가 추천하는 육아 용품을 공동구매해본 적 있다.
3. 어린이집 등원룩이 올라오는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다.
4. 아기 사진 올리는 SNS 계정이 있다.
5. 육아 아이템 리뷰나 육아 일기 등을 블로그 혹은 인스타그램에 기록한다
이 중에 몇 개나 해당되세요?
2-3개면 평균,
4개 이상이면 당신을 이 시대의 부지런한 엄마로 인정합니다. 땅땅땅.
제 주변인들을 보면 대체로 3개 이상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하나도 해당사항이 없어요. 저 같은 분 있나요?
사실 제가 이렇게까지 게으른(?) 엄마가 될 줄 몰랐어요. 근데 낳고 보니 전 꽤나 여유 넘치는(?) 인간이었더라고요. 그 흔한 아기 전용 인스타 계정도 안 만들었어요. 물론 나름의 이유가 없진 않아요.
프랑스는 부모가 자녀 사진을 SNS에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대요. 자녀를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꽤 멋있어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그래야겠다! 결심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멋드러진 다짐까지 동원한 (게으른) 엄마인데도, 불쑥불쑥 초조해질 때가 있어요.
어떨 때냐. 엄마아빠의 수고를 덜어주고 아기의 발달을 도와준다는 고급 육아 아이템과 정보들을 볼 때 그렇습니다. 대충 이런 식이에요.
'이 사람이 공구하는 육아템 인기 엄청 많네? 똑똑하고 주도적인 아이로 키우는 데 좋다고? 사야할 것 같은데?'
'바쁜 엄마아빠들을 위해 전문가가 월령별 딱 맞는 장난감을 보내준다고? 이것도 사야할 것 같은데?'
나도 이 구매 행렬에 서야할 것 같은 초조함.
하지만 고급 육아 아이템은 어찌나 비싼지.
저의 초조함은 대체로 해소되지 못합니다. 대신 분노라는 다른 감정으로 바뀌곤 해요.
사실 전 그리 화가 많은 인간은 아니거든요.
근데 왜 유독 '고급' '프리미엄' 육아템을 보면 화가 나는지. 물론 못 사서 화가 나는 걸 수도 있죠.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것 때문만은 아니더라고요.
솔직히 저는 육아에 ‘정답’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믿지 않아요. 다른 많은 지식처럼 육아에 대한 지식과 이론 역시 계속해서 새로고침 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학벌, 전문성 등등을 내세워 정답인듯 판매되는 아이템과 정보를 보면 좀 화가 나요. 그 자신만만한 태도, '이게 있으면 걱정 없어요‘식의 마케팅이 못 마땅해요. 겉으론 부모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 부모의 죄책감과 불안을 자극하는 아주 못된 공포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미안한 마음으로 아기를 키우는 워킹맘 입장에선 더욱더 화가 나요.
그렇다면 나의 죄책감을 이용하지도 않고, 불안 초조를 유발시키지도 않는 육아 콘텐츠, 도움 받은 콘텐츠는 어떤 걸까 생각해봅니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네요.
최근 30년에 걸친 연구들 덕에 아기를 백지 혹은 빈 그릇 같은 존재로 보던 관점이 뒤바뀌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갓 태어난 아기도 성인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공동의 지식을 만드는 능동적인 학습자라는 게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는 거예요.
한 예로, 아기의 뇌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즐겁게 놀아줄 때 훨씬 더 큰 자극을 받는대요. 못 알아듣는 것 같아도 사실 온 몸으로 상대방과 교감하고 있다는 거죠.
테크닉컬한 정보보단 아이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최신 연구들을 보는 건 너무 즐겁고 흥미로워요. 이런 연구들은 내가 아이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하는지를 스스로 고민하게 합니다.
정답을 따라가야 하는 육아는 재미도 없고 자신감도 낮추지만 고민하고 성장하는 경험으로서 육아는 재밌어요. 그 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해요. 어떤 특정 아이템이 있어야만 우리 아기가 발달 과업을 놓치지 않을 거라는 불안, 공포 마케팅을 튕겨낼 힘이 생기죠.
그러고보면 요즘 엄마아빠들이 받는 스트레스 중 상당수는 ‘너무 많은 육아 정보’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요? 괜히 비교하게 되는 남의 집 육아 일상부터,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수많은 육아 정보들까지.
자존감을 깎아먹는 육아 콘텐츠가 아니라
자존감을 높여주는 육아 콘텐츠를 더 많이 보고 싶어요.
안 그래도 피곤한데 쏟아지는 정보들 받아내느라 더 피곤하고 더 불안해지고 싶진 않으니까요. 비싼 장난감을 구독하는 걸로 불안함을 해결하라는 마케팅엔 더욱이 휘둘리고 싶지 않고 말이죠.
이상, 게으름뱅이 엄마의 변명 혹은 항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