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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치리 Feb 27. 2023

“아이 낳는 건 중산층의 값비싼 취미”라는 말을 들었다

소득과 출생률 관련 통계를 확인해봤다

건너건너 아는 사람이 한 말이다. 그 사람은 비혼은 아니지만 연애도 쉰 지 오래라고 들었다. 이유야 하나로 꼽혀지는 건 아닐 테다.


꽤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일단 내가 ‘중산층’은 아니지 않나?-라는 억울함. 빚도 많고 연봉도 내 연차의 대기업 직장인보다 낮고 등등이 입 안에 소리없이 맴돌았다.


억울함에 이어 조금 화가 났다. 아이를 낳는 게 ’값비싼 취미‘라는 말이 속을 긁었다. 왜 그랬을까. ’값비싼‘, ’취미‘라는 두 단어의 조합에 비죽거림이 묻어나서였나.


값이야 비싼 게 맞긴 하다. 다만 취미라는 단어가 이어붙는 것엔 동의할 수 없는 기분. 왜냐면 나에게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여유가 있어 선택한 것도, 나의 즐거움만을 위한 선택도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의 삶의 방식을 통째로 뒤엎는 힘든 결정이었고, 실제로 지금 내 삶은 한가로움과는 압도적으로 거리가 멀다.


내적 씩씩거림은 몇 일 갔다. 그러다 문득, 내가 어떤 동기와 마음이고, 어떤 상황에 처했는가와 상관없이 지금 한국에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심각할 정도로 양극화되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요즘 분위기를 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연구를 찾아봤다. 한국경제연구원(2019, 소득분위별 출산율 변화 분석과 정책적 함의)에 따르면 2010년 대비 2019년 소득계층별 출산율 하락폭이 상위층보다 중위층에서, 중위층보다 하위층에서 컸다.


출산가구 내 하위소득층 비중도 2010년보다 2019년이 11.2에서 8.5로 줄었다. 상위층은 42.5에서 54.5로 늘었다.


연령, 학력, 거주지역, 거주형태 등 다른 변수들을 통제했을 때 소득계층에 따른 출산율을 분석해보니 소득계층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하위층의 출산율은 100가구 당 3.21가구, 소득 중위층은 5.31가구, 소득 상위층은 8.22가구로 추정됐다.


여러 데이터가 전부, 최근 10년간의 양극화가 얼마나 가파르게 심해졌는지, 특히 소득에 따라 출산율이 달라진다는 걸 보여준다. 출산가구 내 상위층 비중이 절반 이상이라니. “아이 낳는 건 중산층의 값비싼 취미”라는 말을 자신있게 반박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2010년에도 이미 출산가구 내 상위층 비중은 절반이 좀 못 됐고, 하위층은 11.2%에 불과했다.


아이와 아이를 낳는 계층에 대한 박탈감, 그로 인한 분노와 억한 심정이 그동안 얼마나 폭넓게 누적돼 왔을지를 생각하니 아득해진다. 노키즈존이니 맘충이니 하는 혐오가 사회적 현상이 된 데엔 이런 배경이 있었구나 새삼 아프게 와닿는다. 이런 곳에서 나는 아이를 길러야 한다. 어떻게...?


저출산 해결을 위해 어린이집을 늘리고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고 유자녀 가산점 제도를 만들어 청약 가능성을 높이는 그런 정책도 필요하기야 하겠지만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가장 절실한 건 우리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따뜻한 사회 분위기다.


따뜻한 사회야말로 정책 한두 개로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아닐테니 더 오랜 노력과 더 많은 자원이 총 동원 되어야 할 게 분명하다. 제일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개인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미소 지어주기, 반갑게 인사 건네기. 그리고  “아이 낳는 건 중산층의 값비싼 취미”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근거 없이 분노하지 않기. 그건 바로 얼마 전의 나.


‘중산층 이상에서 오히려 출생률 낮아지고 있을걸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감정적으로 굴지 마세요‘라고 하마터면 소리 내어 말할 뻔 했으니... 휴. 통계라도 확인해보자고 큰 소리쳤으면 10년치 이불킥이었겠지. 아찔하다.


감정적인 대응과 감정적인 대응이 부딪힌 자리에선 절대 대화가 이어질 수 없다. 자기연민과 적대심만 두루뭉술하게 커질 뿐이다. (그리고 이불킥...) 다른 건 몰라도, 이것 만큼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육아에 대해 글 쓰는 이유는 하나다. 아이와 육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은 마음. 왜냐면 내 아이가 살아가야 할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하길 바라니까.


그러므로 육아가, 워킹맘으로서의 내 상황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그 감정이 자기연민과 적대심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경계해야겠다. 자기 감정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건 너무 쉬우니까.


“아이를 낳는 건 중산층의 값비싼 취미”라는 말을 한 F님.

뜻밖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말 값진 교훈을 얻었어요. 언젠가 만나면 따뜻한 커피 한 잔 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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