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 숙소 TMI (Italy 5)

여기 그냥 살고 싶다.

by 가오리

여행 전에 할 일들을 분담했는데 간편식 주문부터 부모님 투어 예약 등 여행 준비의 많은 것들을 이탈리아 여행을 많이 한 언니가 담당했고(과장 조금 보태서 자동화 단계) 야근이 일상이었던 쥐군도 렌터카 예약 담당, 육아와 잡일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는 토스카나 숙소를 맡았다.


토스카나에서 여행할 도시들을 찾아보고, 렌터카로 다녀야 하니 구글 지도로 여행 동선도 체크하고 자동차 이동거리와 시간 등을 따져봤다. 시에나에 숙소를 잡으면 3박을 하는 동안 주변에 끌리는 도시 한두 곳을 추가로 둘러보고 세 번째 도시인 로마까지 내려가는데 무리 없어 보였다.


처음엔 토스카나의 농가민박(agriturismo)을 해보고 싶었는데 여행 시기가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우리 가족에게 적당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바쁘다고 미루다가 여행 날짜를 급하게 확정해서 떠나기 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부랴부랴 목적지를 고르고, 항공권 예매를 알아보고 숙소 예약 등을 해치웠다. 멀미 나게 토스카나 숙소를 뒤지던 나는 고생 끝에 시에나 캄포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방이 넉넉하게 있고 주방, 세탁기 등 필요한 시설을 갖춘 데다 멋진 정원까지 딸린 집을 찾았다.

예약사이트에 나온 시에나 숙소 이미지

시에나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 체크인을 위해 우리를 기다린 호스트는 모녀였는데 아주 밝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베네치아에서 잠든 아기 문어는 시에나에 도착할 때까지 잘 잤고, 침대로 옮겨도 깨지 않고 계속 잤다. 베네치아에서 넘어온 토스카나의 첫날은 밤도 늦었고 한적한 곳이라 숙소에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시에나 숙소 입구

사이프러스 나무가 곧게 뻗어있는 길을 쭉 따라가면 밝은 색 벽과 초록 창문이 경쾌한 시에나 집이 나온다.

시에나 숙소와 렌터카

우리는 이 집이 1층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집 한쪽 코너로 돌아가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1층인 줄 알았던 우리 건물은 1층이 아니었다!

아래층엔 혹시 호스트 가족이 살까 상상해본다.

아기문어 놀이터

집 앞 뜰이 굉장히 넓은데 돌이 많이 깔려 있어 마침 돌멩이 던지기 좋아하는 아기 문어가 틈만 나면 신나게 던지고 발로 튀기고 뛰어놀았다. 정원 한쪽에 테이블이 놓여 있어 한가로운 오후 과일을 먹으며 쉬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시에나 랜선 집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공간 스케일


어느 공간이나 창문만 열면 기분 업그레이드.


깔끔하게 관리된 복도를 쭉 따라 들어가면 침대방들이 하나씩 나온다.

집안 곳곳에 예술 분야 책들이 많아서 언니는 호스트의 전공을 미루어 짐작해본다. 저 복도 끝 창문에서 보이는 토스카나 마을 풍경이 시시각각 너무 예뻐서 이 집에 머무는 동안 창밖을 자꾸만 내다봤다.


복도 끝 아기 문어네가 사용한 방. 잠자기 최적화.


아담하면서 필요한 건 다 있었던 깨끗한 주방

이곳에서 어머님이 누룽지 미역국을 끓여주시기도, 마트에서 사 온 샐러드용 채소에 한국서 가져온 고추장을 버무려 겉절이를 뚝딱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밝고 깔끔했던 시에나 부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 혼돈의 우리 집 주방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어느 날 일찍 잠들었던 아기 문어가 새벽에 깨더니 배고프다 하여 즉석밥과 김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던 식탁 :)


식사를 준비할 땐 한쪽 벽 고풍스러운 진열장에 정갈하게 포개진 그릇과 컵을 꺼내다 썼다.


욕실 창문도 멋있어서 깜놀.

정원 의자랑 렌터카가 보인다.


시에나의 아침

해뜨기 전 까만 나무들의 실루엣을 보고 있자니 왠지 사바나의 밤이 생각난다. 멀고 먼 토스카나에서 또다시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다니 재미있다.

Buon giorno!
새소리가 듣기 좋았다.

아침잠 많은 엄마도 산책하고 싶어지는 마법의 길 길 길.

엄마랑 이모랑 아침 산책 나온 아기 문어
나무들 옆으로 살짝 보이는 시에나 마을 풍경

사이프러스 길 산책을 마치고 다시 정원으로 돌아와 허브잎을 살짝 비벼서 손가락에 남은 허브 향기 맡는 법을 알려줬다. 허브 잎을 비벼서 잔향을 맡는 건 8년 전 어느 영국 아저씨가 알려준 방법인데 아기 문어에게 당당하게 전수.


토스카나 도시를 쉬엄쉬엄 여행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노을 진 시에나 하늘이 차분하게 반겨준다.




너무 좋아서 쭉 살고 싶었던 시에나 숙소 TMI 여기까지..





Buona No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