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도시, 시에나 (Italy 4)

버킷리스트 시에나에 가다.

by 가오리

꽤 오래전 재미있게 봤던 영화 <Letters To Juliet> 에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베로나에서부터 토스카나 풍경들이 아름답게 나오는데 이때도 시에나에 마음을 뺏긴 건 확실하나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설마 한때 좋아했던 배우 시에나 밀러 때문은 아니겠지. 꼭 시에나가 아니어도 토스카나라면 좋았다.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는 시골 마을 어딘가라면 좋을 것 같았다.


느릿느릿 토스카나 즐기기


토스카나에 오기 전에 시에나를 거점으로 잡고 숙소를 예약한 것 말고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그냥 캄포 광장에 가면 되니까. 아, 토스카나 오는 길에 아이가 놀만한 놀이터나 어린이 박물관 같은 정보들을 검색해보긴 했다. 사실 이탈리아 놀이터가 궁금했던 건 엄마. 막상 여행 중엔 아이만을 위한 일정을 따로 낼 여유도 그다지 없었고 어딜 가든 다 새로운 곳이라 지루하기도 힘들었다.


아무런 스케줄이 없어 서두를 필요가 없었기에 마음이 느긋했던 토스카나. 하지만 연세가 꽤 있으신 부모님과 아침잠이 없는 23개월 아이와 떠난 여행이니 마냥 여유를 즐길 수만은 없다. 숙소에서 아침밥을 가볍게 먹고 렌터카를 타고 시에나 중심가를 향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유일한 목적지 캄포 광장을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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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듯 중세 도시의 건축물들이 조화로운 골목길들을 누비며 드디어 시에나에 왔음을 실감한다.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빛깔이 매혹적이다. 시에나 도시에서 이름을 따온 시에나 혹은 번트시에나(burnt sienna)라는 색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도시의 빛깔은 아이폰에 담기지 않는다. 그래도 눈에서 사라지기 전에 자꾸 찍고 싶다.



캄포 광장

조개껍데기 모양이 독특한 캄포 광장에 도착했다. 캄포 광장에 직접 와보니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토스카나의 뜨거운 태양만 쬐고 있어도 좋을 분위기다.

IMG_4955.jpeg Piazza del Campo
20191004_125153.jpg Fonte Gaia
IMG_4953.jpeg 만지아(만자?) 탑과 푸블리코 궁전 Torre del Mangia & Palazzo Pubblico

광장 어딘가에 앉기 전에 Mangia 탑과 푸블리코 궁전이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으로 피자를 먹기로 했다.

유모차를 타고 오던 아기 문어가 잠들어 이모 스카프로 암막 커튼을 만들어 주고 피자를 주문했다.

IMG_4949.jpeg Siesta in Siena

캄포 광장에서 아기 문어 낮잠이라니! (실화냐)

피자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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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여행 중 첫 번째로 찍은 밥 사진인데 테이블 분위기를 보니 인스타 감성은 아니고 기록 남기기 차원에서 찍어둔 것 같다. 그래도 이것이 이탈랴 여행 최초의 식당 사진. 토스카나에 와서 비로소 여유를 찾은 걸까. 여러 종류의 피자를 주문해서 나눠 먹었는데 나는 마르게리타와 버섯 피자를 먹었다. 물론 이 두 종류는 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배려해 주문한 거다. 비건 채식을 지향하고 나서 일부러 찾아먹진 않았으나 가족 외식 모임 같은 데서 정 먹을 게 없을 땐 해산물이나 유제품도 이따금 먹던 시절.


Mangia 탑을 바라보며 피자만 먹었지만 시에나에 또 가면 탑에도 꼭 오를 거다.

(피자 딱 한조각만 먹고 나라도 뛰어갔다올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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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식사가 끝나고 아기 문어가 깼다.

깨자마자 해가 적당히 비치는 광장 가운데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침에 싸온 밥으로 혼밥 중인 아기 문어. 유럽 날씨답게 햇살은 뜨겁고, 그늘진 곳은 좀 있다 보면 한기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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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아기 문어

근처 젤라또 가게에서 사 온 젤라또를 캄포 광장에 앉아서 먹었다. 녹아내리는 젤라또는 먹기 바빠서 사진이 거의 없다. 그리고 1일 3젤라또는 막상 돌아다니다 보면 지키기 힘들다. 식탐이 많은 편은 아닌데 이것은 항상 슬프다.


젤라또를 다 먹고 다시 걷는다. 유모차는 이탈리아에 버리고 와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잘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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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본 이 집 피자랑 와인이 엄청 맛있을 것 같다.



시에나 대성당
20191004_132425.jpg Duomo di Siena

시에나의 또 다른 명소, 시에나 대성당. 이날 대부분의 시간을 캄포 광장과 시에나 두오모에서 보냈다.


IMG_4964.jpeg Panorama dal Facciatone , Museo dell'Opera del Duomo

저기 왼쪽에 높이 솟은 Panorama dal Facciatone 역시 시에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400개가 넘는 계단 오르기는 70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무리일 것 같아 Mangia 탑도, 시에나 대성당 파노라마 뷰도 모두 스킵!


엘리베이터가 있어 예약했다 날린 베네치아 산마르코 종탑이 다시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군.


시에나 대성당 계단


가족이 꽤 많이 나온 (무려 4명) 몇 장 안 되는 가족사진 중 한 장이다. 이때 아기 문어가 자기 옆에 할아버지 앉지 말라고 계단에서 밀고 심술을 부리다 찍힌 한 컷. 사진을 보니 할아버지와 살짝 거리두기 성공 ㅎㅎ 이모는 두오모 입장 티켓 사러 갔나?


두오모 광장에서 그늘과 햇빛 사이를 넘나들며 성당 외관을 실컷 감상하고 티켓을 끊어 성당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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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4970.jpeg 돔의 내부


IMG_4967.jpeg 촛불 봉헌하시는 아기 문어 할머니

유럽 여행하면서 성당은 꽤 가본 편인데 사실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들이 워낙 많아 어느 순간 성당을 봐도 감흥이 별로 없거나 관광이 아닌 미사에 참여할 목적으로 가기도 했다.


시에나 대성당은 아기 문어가 들어가 본 유럽의 첫 번째 성당이라 기억에 남지만 아기 문어를 돌보느라 이렇게 성의 없이 둘러보기도 처음인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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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두오모를 나와 번트시에나 컬러가 짙은 올드 타운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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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는 길, 마트 장보기는 필수 코스다.

생수도 사고, 과일도 많이 사 먹었다.

퓨레를 제일 좋아하고 퓨레를 피에라고 발음하던 시절의 아기 문어, 퓨레 고르는 눈빛이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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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피에 피에~

종류별로 다 먹겠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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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에나의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