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아침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오고 있었다.
아침식사는 이유식 카페에서 사 온 아기 밥과 컵밥, 어제 공항에서 포장해온 파니니 등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한식을 꼭 드셔야 하는 어른들을 위해 다양한 컵밥, 김, 컵라면 등을 넉넉히 싸갔고 엄청난 내공의 요리 금손 어머님도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오셨다.
다만 이때 아프리카 돼지 열병 확산으로 육가공품 등의 검역이 강화되어 언니가 주문한 컵밥 중 일부는 한국에서 짐 싸기 직전 제외됐고 어머님이 가져오신 장조림도 결국 비행기를 못 탔다.
아침을 먹고 나서 남편 쥐군은 예약한 렌터카를 받으러 가고, 남은 가족들은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아빠를 기다리던 아기 문어는 시차 적응 때문인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아기 문어가 잠든 소파 뒤로 새벽부터 내린 비에 촉촉하게 젖은 테라스가 싱그럽고 멋지다. 아기 문어 낮잠 콜라보 덕분일까 베네치아 집이 갑자기 어젯밤과 다르게 근사해 보인다. 그나저나 밖에서 잘 안자는 앤 데 아빠 알면 깜짝 놀라겠다.
체크아웃 후 렌터카에 짐을 싣고 근처 주차 구역에 세워두고 베네치아 본섬으로 향했다. 비는 그쳤다.
7년 전 남편과 둘이 베네치아를 여행할 땐 수상버스 바포레토를 타고 들어가서 엄청나게 많은 골목과 다리들을 걸어 다니며 도시를 구경했다. 이번엔 수상택시를 타기로 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비행기 연착에 장거리 여행으로 많이 힘드셨을 어머님과 아버님, 보트를 타고 시원하게 베네치아 대운하를 가르던 바로 그 순간부터 안색이 좀 밝아지신 것 같은 느낌이다.
언니가 배에서 아버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 같아 무슨 얘기였는지 나중에 물어보니 말뚝을 박아 베네치아를 세운 히스토리를 들려드렸다고. 베네치아를 여러 번 여행하고 관련 책도 많이 읽어서 그런지 투어가이드 급이다.
비행기 연착으로 인천과 공항에서 까먹은 시간이 많아 베네치아에 주어진 시간은 짧았지만 오후에 렌터카로 토스카나까지 장거리(4시간) 이동 예정이라 무리한 일정은 피했다. 수상택시로 대운하를 왕복하며 도시 감상하기,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광장에서 커피 한잔 정도의 여유를 즐기고 시에나로 이동하는 것이 이날의 일정이다.
점심은 언니가 추천한 식당 'Trattoria alla Rivetta'에서 먹기로 했다. 곤돌라 아저씨들이 즐겨 찾는다는 식당(우리로 치면 기사식당)으로 내부는 아담했고 직원들은 무척 바빠 보였지만 친절했으며(+장난기), 요리가 정말로 맛있었다. 소박하면서도 하나하나 다 맛있었다. 접시 나오기가 무섭게 먹기 바빴는지 요리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산마르코 광장 가는 길에 어떤 젊은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서럽게 울고 있던 게 생각난다. 여행 중 소매치기를 당해 망연자실 울고 있었는데 순간 7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당했던 악몽이 잠시 스쳐간다.
주변에 있던 관광객들도 그녀가 너무 서럽게 울어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기도 했는데 광장에 있던 경찰이 소매치기당한 여자에게 여기 당신 같은 관광객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해주고 있었다고 남편이 기억 :O
떠날 무렵 날씨는 점점 더 좋아지기만 하고
베네치아의 하늘과 잘 어울리는 핑크빛 가로등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혹적이고
아 노을이 질 무렵 핑크 가로등은 더 환상적이었지.
우리는 음악이 흐르는 광장 어느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장거리 이동에 화장실을 걱정하는 엄마는 여행만 하면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신다.

아기 문어는 주스 한 병을 순삭 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온라인 예매했다가 날린 5명의 티켓값은 귀국해서 알이탈리아에 청구해보자..ㅠㅠ
2019년 가을에 떠난 여행이라 어쩌다 보니 베네치아 대홍수 직전,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불과 몇 개월 전이다.
음 뭔가 미러 효과를 노리고 찍었으나... 후후
유럽 여행할 때 남의 집 빨래와 아기자기한 화분이 장식된 창문, 예쁜 꽃이 있는 집 등에 집착한다.
이번 여행은 수상택시를 타고 빠르게 오고 가느라 좋아하는 좁은 골목길들을 누비진 못했다.
좁은 골목길처럼 베네치아의 좁은 운하들도 매력적이다.
다음에 또 베네치아에 오면 곤돌라를 타봐야 하나 생각해본다.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베네치아 본섬을 뒤로하고 렌터카로 돌아왔다.
렌터카를 타고 시에나(Siena)로 출발
두 번째 여행지는 나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한 토스카나 지역이다. 베네치아에서 차로 4시간 가까이 달려야 해서 평소에 자동차 1시간 거리인 할머니네 갈 때도 힘들어하고 짜증 내는 아기 문어를 좀 걱정했었다. 특히 차에서 도통 잠을 안 자서 어디 갈 때 낮잠 시간을 피해 가거나 할 수 없이 낮잠을 건너뛰곤 했다. 그랬던 아기 문어가 에어비앤비 숙소 소파에 이어 토스카나를 향해 달리는 렌터카에서도 곤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