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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나 Jul 30. 2024

엄지손톱의 쓰임

당신에게 100억이 있다면 무엇을 하실 예정인가요?

갑자기 오른쪽 엄지손톱 끝이 살짝 아려왔다. 다음날 회사에서 먹을 영양제를 약통에다가 손으로 톡톡 빼서 넣는데, 바짝 깎은 손톱에 피가 차오르면서 살이 아파온다. 손톱이 또 자라면 일할 때 방해가 되니깐 자를 때 최대한 바짝 잘랐다. 생각보다 엄지손톱의 쓰임이 많았다. 캔을 딸 때나, 테이프를 땔 때나, 비닐을 뜯거나,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이렇게 엄지손톱의 역할이 컸나 싶을 정도로 수시로 아파왔다. 한 순간에 쓰임이 많은 손톱도 잘못된 실수로 사용을 못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손톱도 바짝, 10이 있으면 꼭 1이나 2를 남겨두고 쓰고, 그 후의 대비를 해야만 맘이 편해졌다. 혹시라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빚 독촉으로 몇 번의 집안의 풍비박산을 경험을 하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아끼고 대비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엄마와 늦은 저녁을 챙겨먹는데, 냉동실이 또 말썽이다. 내가 누구를 닮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는, 엄마의 냉장고 음식 쟁이기의 여파로 고장이 났다.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음식들은 몇 년은 족히 먹고도 남을 만큼 많았다. 냉동실은 유통기한에 눈 감을 수 있는 안정감이 있어서 그런지, 음식들이 더 넘쳐난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곶감은 언젠가는 먹으려고 냉동실 안에서 애타게 주인을 찾고 있었고, 다이어트 한다고 사놓았던 닭 가슴살 몇 개가 구석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밖에 고춧가루, 양념, 먹다 남은 음식들.... 다 모두 언젠가는 먹으려고 놔둔 음식들, 우리의 안정되지 못한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구호물품처럼 쌓여있는 게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음식들이 쌓여있으면 냉동실 안에 순환하는 모터까지 막아서 잦은 고장을 일으킨다는데, 이제는 조금은 버리고 현재를 즉시하면서 즐기자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결혼 적령기를 한참 지나, 독립을 벌써 해야 할 나이에 집에 빌붙어 살다보니 눈치 보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물가 시대에 자취하려고 하면 버리는 돈이 더 크기에 어쩔 수 없이 기생하면서 살고 있다. 돈을 크게 벌지는 못해도, 나름 성실하게 모았다고 생각했지만, 새고 있는 독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엄마와 내가 모은 돈은 아빠의 도박과 투자로 한 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이제는 지쳐서 말도 잘 하지 않는 무 존재 아빠에게, 나는 바라는 것은 없다. 돈은 벌어오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빚 생산만은 그만 하기를 바랄 뿐이다.      


잠들기 전, 집에 중고라도 냉장고 괜찮은 게 없는지 당근 어플을 뒤적거리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삐비비비비비빅 삐비비빅“  알람 소리가 들리고, 벌떡 일어났다. 


꿈을 자주 꾸기는 했지만 이렇게 생생한 꿈은 처음이었다. 중고로 산 냉장고를 집에 들여놓고, 안에 물건을 채워 넣으려고 문을 열었는데 수억의 돈 다발이 쏟아져서 집 안을 가득 채우는 꿈이었다. 로또라도 사야 하나 생각하며,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했다.      


간신히 출근 시간에 맞춰서 여유로운 척 커피 한잔을 타서, 업무 준비를 했다. 

오전 업무를 빠르게 해내고, 오늘 직원 식당의 점심 메뉴는 뭔지 식단표를 찾고 있을 때였다.      


“띠링” 핸드폰 알람이 선명하게 들렸다.      


화장품 세일 소식이었다. 그럼 그렇지, 내 핸드폰에 알람 소리가 뭐 특별하게 있을까.      


식당에 줄을 서고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동료들과 신나게 주말 계획들을 이야기하는데, 핸드폰에 알람이 정확히 2번 울렸다.      


진동을 느꼈지만, 별거 없는 광고려니 하고 식판을 든 손을 빼기 귀찮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습관처럼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입금 되었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얼마 전에 취소한 영양제 카드 값이 이제야 들어왔나 싶어서 빠르게 확인을 했다.    

  

일십백천만십만 백만 천만 ..... 억... 십억... 오십억? 그것도 두 번이 입금되어서 100억이 입금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신종 사기인건가? 내 폰에 오류가 생겼나?....      


간신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빠르게 포털 검색 창에 신종 사기 입금,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100억을 입금하는 사기는 아직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퇴근시간까지 정신이 팔려서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업무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떤 사건에 연루가 된 건 아닌지, 검은 돈을 잘못 만졌다가 내 인생이 잘못 되는 두려움에, 경찰에 신고를 하기로 했다. 경찰에서는 내 전화를 단순 장난 전화로 넘겼다. 3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모두 내 전화를 믿지 않았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은행에 전화를 걸어서 잘못 입금을 받았다고, 처리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입금자명이 찍혀 있지 않아 확인이 어렵다고 기다려 달라는 말만 계속 되었다.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은행에서는 내 말을 오히려 믿지 않았고, 100억이라는 돈이 잘못 입금될 리 없다고 나를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무려 1년 동안 입금된 돈을 1원 한 푼 쓰지 않았고, 은행에서도 1년이 지나면 잘못 입금된 사람이라도 돈을 찾을 수 없다는 확답을 받은 뒤에 돈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이 돈을 마이너스 통장을 막기로 했다. 집을 담보도 대출 받았던 돈, 아빠의 도박 돈 등을 대충 다 막고 나니 2억 정도가 순식간에 다 나갔다. 엄마에게는 이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했고, 이때까지 모았던 내 돈을 엄마의 빚을 갚으면서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며, 효녀 코스프레를 할 수 있었다.      


몇 천 만원의 대출 금액의 이자를 갚느라 등골이 휘어지던 엄마가 이제 이자를 갚지 않아도 된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데,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들을 털어낸 것 같아서 출처모르는 돈의 죄책감이 조금은 사라졌다. 아니 오히려 돈의 쓰임이 평생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 가족을 위해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합리화시키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돈 쓰는 게 두렵지 않았다. 카페나 식당에 가서도 몇 천원이라도 저렴하게 먹으려던 가난한 메뉴 선정이 이제는 금액을 아예 보지 않고 시킬 수 있었고, 밥을 사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다. 혹시라도 갑자기 큰 금액을 써버리면 주위 사람들이 의심할까봐 나름 조절하면서 돈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집에 고물 덩어리인 냉장고를 ,그것도 중고가 아닌 최신식 양문형 냉장고로 바꿔드렸다. 엄마가 이 큰 금액의 출처를 알게 되면 아빠의 귀에 들어가는 거는 순식간이고 휴지조각의 경험을 또 할 수 없었기에, 운 좋게 친구가 직원이라서 할인가에 50프로에 구입했다고 둘러댔다. 순식간에 커진 냉장고에, 그 전 냉장고 음식들을 모두 다 넣어도 텅텅 남아돌 정도로 여유가 넘쳐서 맘에 들었다.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지금 현재를 즐기면서 살자고, 음식도 지금 먹을 것만 장만하고 미래는 그만 걱정하고 남겨두는 게 아니라 지금 모두 소진하자고’      


분명히 엄마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이제는 10에서 1-2를 남겨두는 게 아니라,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거대한 98억의 자본이라는 게 뒷받침 된다는 걸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용기로 98억 보다 더 값진 미래를 위해,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에 쓰면 되지 않을까?       


98억으로 현실적으로 어떻게 사용하여야 할까, 하고 싶은 리스트를 적어봤다.     


집에 있는 빚 청산 

새 냉장고 바꾸기

우리 집 마련

한 번도 못 가본 유럽 여행, 가족들과 함께.     


돈이 생긴다면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단출한 나의 버킷 리스트를 보는데 허무해졌다. 돈도 쓸 줄 아는 사람이 잘 쓴다고, 평생을 모으기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어디에 돈을 써야할지 생각만 하기에도 벅찼다.      


나머지 남은 돈은 건물을 사서 투자를 한다거나, 안전하게 저축을 하면 되지 않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삐비비비비비비빅 삐비비비비비빅”     


알람이 울렸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다시 선명한 꿈의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집에 새로 들여온 중고 냉장고를 힘차게 열었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냉장고였다.      


이게 다 꿈이었나 싶은 마음에, 내 통장 잔고를 들여다봤다.

월급날 하루 전, 통장 잔고 845원....      


그래 역시 이래야 내 통장이지.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집에 빚을 다 갚고 냉장고를 새로 들여다 놓을 때 엄마의 환한 미소를 못 보는 게 많이 아쉽기는 했지만, 

평생을 죄책감과 시름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한 가지 교훈을 얻은 거는 이제는 10이 있으면 10을 모두 소진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나 자신을 믿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내 가치를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      


엄지손톱이 어느새 자라서, 더 이상 아리지도 않았고,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도 정신 차리고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값지게 살아나가야지.      


일단 준비하고 출근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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