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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나 Jun 29. 2024

금요일 저녁 7시

연희와 경수의 하루 

* [ ] -> 속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연희의 하루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마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머리 정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까지 가는 과정을 머릿속에 빠르게 그려본다.     


금요일 저녁 7시 소개팅 약속이 잡혔다.      


주6일 근무자로서 금요일 약속을 항상 피해왔는데, 오랜만에 잡힌 약속에 게다가 소개팅이라서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드디어 퇴근 시간이 다가왔고, 탈의실에서의 전쟁 같은 사투를 벌이고 지하철 화장실까지 도착했다.

피부 잡티를 컨실러로 가려서 수정해주고 속눈썹 뷰러를 하고 가볍게 마스카라를 발라줬다. 브라운 아이브로우로 자연스럽게 눈썹을 칠해주고, 입술을 코랄색 틴트로 발라줬다. 남은 틴트는 볼에 발라서 생기를 주려고 나름 노력을 했다.     


화장을 안 한지 거의 2년, 회사 일어나서 출근하는 게 기적일 정도로 움직여서 도착하는 목표에 최선을 다하는 일상을 보내왔다.     


지하철역만 내리면 2번 출구 앞에 그 남자와 소개팅 주선자인 서연 언니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후하....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노래가사가 생각나면서 머릿속에 정리해뒀던 말들, 표정 관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까지...준비해뒀던 생각의 덩어리들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꽉 차 있던 머릿 속이 시원해졌다. 창문 밖에 내던져진 차갑게 식어버린 그날의 마음처럼.]     


연애를 안 한지는 꽤 되었지만, 그동안 몇 번의 설레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다를 거라는 걱정들이 잠식되어서,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그 사람을 앞에 두고 단점들만 자꾸 찾게 되었다. 6개월의 구애에 못 이기는 척 사귀고 한 달 후 뜨거웠던 감정들이 차갑게 식어서 마치 다잡은 물고기는 아무렇게나 둬도 된다는 식의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사귀기 전에는 아침, 저녁 두 번씩 출퇴근길을 한 시간이나 운전해오던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도 오는 걸 귀찮아하고 심지어 나에게 왜 운전을 안 하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나는 차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던 건데,..      


차갑게 식어가는 마음은 다시 데울 수 없었고, 급속냉각 상태에서도 멈추지 않고 깨져버려 재생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다짐했다.      

[ 제발 단점을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보자.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눈빛, 표정, 행동, 입 꼬리에 집중하자. 장점을 제발 찾아보자! 일단 입 꼬리에 경련이 일어나지만 억지로라도 웃어보자. ]     


영희 :  "안녕하세요"     

[ 서연 언니와 함께 걸어오는 저 남자구나.


깔끔한 셔츠와 슬랙스 일단 합격, 머리숱 풍성하고 어깨도 나보다는 넓어 보이네 굿 ]     

경수: "안녕하세요.. 덥죠커피 드세요!"     

[ 더워서 땀이 났는데 살았다! 아이스커피라니 완전 센스 있네, 첫 인상은 일단 합격이다! ]     


영희 : "와 감사합니다!"               



2) 경수의 하루     

급하게 낸 오늘의 반차에 응답해준 이유 중에 9할은, 강제로 내 연애의 역사를 모두 알게 된  팀원들의 간절한 바람이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갑자기 잠수 탄 여친, 다른 지역에 가자마자 바람난 여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마치고 동료, 상사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답답한 마음을 한풀이라도 해야 살 수 있었다. 헤어지고 나면 루틴처럼 술을 진창 마시고 그 다음날은 술병으로 거의 반쯤 죽어 있었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얼마나 피해를 줬을지 밤마다 이불킥을 한다. 


덕분에 모든 직원들이 나의 연애를 손꼽아 응원할 지경이 되었다.     

일본어 회화 모임에서 만난 4살 터울인 서연 누나는 시원시원하고, 내가 이야기하는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리액션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한테 관심이 있나 도끼병을 가질 정도였다.

조금 친해지고 난 뒤 서연 누나는 친한 동생을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기쁨의 환호성에 온몸으로 춤을 추고 방방 뛰고 싶었지만, 애써 감추며 "좋습니다" 한마디로 억누르며 이야기하느라 힘들었다.     


오늘은 무려 반차를 내고 소개팅을 위해 준비를 하기로 했다. 술을 마실 수도 있으니 차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대중교통으로 가야하는데, 약속 장소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반차를 활용하여야 했다. 단골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고 눈썹 손질까지 부탁했다. 옷은 최대한 꾸민 듯 안 꾸민 듯 유투브에서 본 대로 하늘색 셔츠와 남색 슬랙스로 무난한 톤온톤 코디를 연출해줬다. 붐비지 않는 시간을 고려해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최대한 빨리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무려 30분이나 빨리 도착해서 어디에 있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땀에 젖은 모습으로 첫인상을 보일 수 없으니 시원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불현듯 전 여자 친구와 나누던 메뉴 대화가 떠올랐다. 우유부단한 나는 메뉴 하나를 고를 때에도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2가지 메뉴 중 하나를 골랐다. 땅콩 알러지가 있었지만 여자 친구가 먹고 싶어 하는 토피넛 라떼를 마시는 척만 하려다 응급실에 실려간적도 있었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쌓이다보니 전 여자 친구는 나와 있으면 자기가 나쁜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2단 콤보로 나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다.     


[이번에는 호구로 보이지는 말아야지, 무조건 맞춰주기 보다는 당당한 내 모습을 보여줘야지. 휘둘리지 말고 정신 차리자]     


주선자인 서연 누나도 빨리 도착해서 연희씨 커피까지 아이스커피 2잔을 손에 들고,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 출구로 향했다.     

검정 가디건과 남색 슬랙스를 깔끔하게 입은 저 여자이기를, 어색하지만 눈웃음을 보이는 게 해맑아 보인다.     

영희 :  "안녕하세요"     

[ 역시나 내 촉이 맞았다. 감사합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     


경수: "안녕하세요.. 덥죠커피 드세요!"     

[ 커피를 제발 좋아하기를! ]      


영희 : "와 감사합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며. 음료를 받고 볼이 발그레 수줍어하며 활짝 웃는 그녀의 첫 인상이 벌써부터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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