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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

대한민국 생물학적 나이 극복기

by 프롬나

대한민국에서 규정하는 생물학적 나이 40세 미혼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철저히 사실을 바탕으로 여러 미혼 여성들의 사례로 재구성한 이야기이며,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될시 섣부른 조언 보다는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이라는 걸 하고 싶다. 결혼이나 종족 보존을 위한 수단이 아닌 내 마음이 활활 불타서 소진할 때까지 가슴이 벅차고 아리도록 강한 사랑을 하고 싶다. 비어져 있는 하트 이모티콘 보다 빨간색으로 가득 채워진 하트처럼 열렬한 사랑 같은 걸 원한다. 강렬하게 마음을 주고받고, 상대방이 내 마음의 크기보다 훨씬 작더라도 나의 큰 사랑으로 채워져서 남부럽지 않게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어느덧 내 나이 40세,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38세이다. 내 정신적 나이는 아직 20대 후반에서 멈춘 것 같은데 왜 사회가 규정한 나이는 같이 멈춰주지 않는 걸까?

한국에서는 자기소개를 할 때 특히 나이를 많이 물어본다. 어디 가서도 나이가 어렸고 젊음이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내 나이를 솔직하게 말하기가 무서워졌다.


사람들 반응은 크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졌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시네요."

나이 많다는 걸 강조하는 느낌이고, 진심일지 알 수 없지만 동안이라는 사실도 이야기해줘서 그나마 타격이 덜하다.


"네? 40살이요?"

40이라는 나이가 이렇게 놀랄 일인가?

그 뒤에 무슨 말을 할지 긴장이 된다.


"와 40살인데 아직 결혼을 안 했어요?"

나이도 강조하고 원하지 않는 내 결혼까지 운운하며 미래를 심각하게 걱정해준다. 자격지심이 생겨서 그런지 한 문장 안에 이때까지 뭐한다고 못 해? 라는 뉘앙스가 괜히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씁쓸하다.


드라마나 상상 속 장면처럼 질문 한 사람이 당황스러워할 만큼 야무지게 되받아치면서 속 시원한 대답을 하고 싶다.


'제 나이가 어때서요? 가장 꽃다운 나이인데?'


'그쪽도 나이를 먹고 있을 텐데, 잊으신 건 아니죠?'


'결혼은 마음만 먹으면 내일도 할 수 있어서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하지만 현실은 되풀이되는 나이 공격에도 나는 애써 웃으면서 사람 좋은 척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군가와 함께 하는 걸 기다리다가 혼자 하는 게 마음 편하고, 생각보다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혼자 하는 거 별 거 없네? 생각하며 점점 혼자 범위를 넓혀 나갔다.




첫 혼자 경험의 시작은 대학 입시 때였다. 남들은 수능 끝나고 놀러 다닐 때 나는 하루에 12시간씩 그림을 그리면서 미술학원에서 모든 청춘을 쏟아내고 있었다.


"열정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해라, 너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미술 학원 선생님들과 응원해주는 부모님의 성원에 나는 주저앉을 수 없었고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경쟁 구도로 치열했던 학원에서도, 쉬고 싶었던 집에서도 나는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 가장 좋아하는 게 영화보기였다. 영화를 볼 때만큼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고 마치 현실도피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어떻게든 같이 갈 사람을 구해서 보러 가고는 했다.

어느 날, 혹독한 그림 평가를 받고, 스트레스가 극심해진 나는 포기도 할 수 없고 나아갈 수도 없는 내가 너무 한심스러워서 지금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함께 영화 볼 사람을 구할 시간이 없었고 지금 바로 영화를 보면 잠시라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처음으로 혼자 영화 보기를 시도했다. 학원에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조퇴를 했다.

학원 출입문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부터, 이른 저녁 시간에 극장까지 걸어가는 데 벌써 마음이 후련했다. 이대로 모든 입시를 포기하고 도망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 겨울인데도 걸어가는 내내 살결에 닿는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의 일탈이 한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극장에서 직접 예매를 하던 때였고, 매표소 입구부터 용기를 내야 했다. 당시 핫 했던 남녀 배우들이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예매했고, 저녁 시간에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 중에 하나였다. 혼자 왔다고 개미만한 목소리로 말을 했고, 왠지 매표소 직원이 나를 짠하게 쳐다보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나는 수많은 커플들 속에서, 커플-나-커플-커플 이렇게 샌드위치처럼 끼여서 영화를 봐야 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울고 웃는 장면이 많았다. 아직도 잊을 수 없었던 게 나는 처음 그 극장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손뼉을 치면서 가장 크게 웃고, 가장 크게 소리 내면서 울었다. 옆에 사람들이 나를 쳐다봐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어두운 극장에서 나를 보든 말든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하고 싶은 걸 미루지 않고 당장 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때부터 점점 나는 혼자 하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혼자 영화, 혼자 여행, 혼자 밥 먹기, 혼자 카페 등 여러 형태의 혼자 하는 모든 것들을 봇물 터지듯이 열정적으로 했고 내가 혼자 해낸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즐겼다.





국내 여행을 혼자 하면서 무섭거나 외로웠던 적은 없었다. 마음이 적적하다기 보다는 자유롭게 원하는 걸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서 원하는 시간에 먹고, 쉬고 싶을 때 마음껏 쉴 수 있는 게 너무 편하고 좋았다. 연인이나 가족, 친구, 동료 어떤 관계에서도 나는 맞추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 의지로 뭔가를 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내가 여행을 하면서, 혼자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버린 걸까,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게 불편하고 누군가에게 맞추거나 나를 희생할 자신이 없어졌다. 이렇게 혼자서 평생 지내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신동엽이 말한 명언이 있다.

'편하게 살려면 혼자 살고, 행복하게 살려면 결혼을 해라'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나는 언제까지 도망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그냥 편하게 사랑을 받기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정작 나라는 사람은 퍼주기만 하고 전전긍긍하면서 성냥개비만큼 사랑이 타올랐다가 금방 꺼져버린다. 그리고 타오른 불씨를 그리워하면서 힘들어하고 정작 상대방의 마음 보다 내 마음에 진절머리가 나서 도망치거나 숨어버린다.


아침에 눈을 떠서 마주하는 동반자의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으면 정말 축복이겠지만, 현실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것은 많아지고 내 취향도 더 강하게 짙어진다. 그런 요구 사항들을 모두 적어보는 배우자 기도문이 친구들 사이에서 한참 유행할 때가 있었다. 적다보니 이런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싫어하는 것만 적어보니 원하는 배우자의 사항이 순식간에 단출해졌다.

이런 사항들을 적어보다가 뭐가 나아지려나 싶어서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내 취향을 깊게 탐구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싫어하는 배우자 유형

1.거짓말 하는 사람

2.자격지심 있는 사람

3.깨작거리면서 먹는 사람

4.남을 무시하는 사람

5.이기적인 사람

6.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


모든 부모들은 자식들의 결혼을 걱정하지만, 내 아버지는 걱정을 앞세워서 아무것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어떻게든 보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마치 심청이가 된 것 마냥 팔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잦아졌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내 연락처를 일절 상의도 없이 마구 뿌리고 다녔다.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 아버지는 어떻게든 기습적으로 언제 만나냐고 물어보고 나는 기어코 피해 다녔다. 나는 애써 인사치레를 하며 연락을 하다가 최대한 미루다가 도살장 끌려가듯이 나갔다.


소개팅이라고 부르고 맞선으로 만났던 분들은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졌다.

정말 연애를 못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으로 나누어졌다.


연락 할 때 무조건 단답형에 나는 mc가 된 것 마냥 매번 대화를 쥐어짜서 이끌어내야 했다. 식당 예약과 주차장 위치까지 정리해서 보내주고 나니 마치 내가 엄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연락할 때는 인성도 좋고 배려심이 많다고 생각했던 분이었다. 만나기로 한 카페 입구에서 제발 저 사람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를 마중 나왔다. 눈을 질끈 감으며 자리까지 가는데 수천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은 안타깝게도 움파룸파처럼 미니미한 키를 소유하셨고 머리숱도 가벼워서 나는 더 이상 참기가 버거웠다. 나의 현실적인 위치가 이제 여기까지 왔구나 자책하며 눈물이 찔끔 나왔다.


**움파룸파 :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에 나오는 소인국 종족


다 갖춘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갔겠지만 그래도 정상인 사람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윤은혜의 명언을 되새기고 있는 요즘이다.

"내가 몇 년을 어떻게 기다렸는데, 눈을 낮출 수가 없어"


너무 공감 가는 말이었다. 눈을 더 이상 낮출 구간도 존재하지 않아서 헤매며 마음 졸였던 나를 잠시 놓아주기로 했다.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장단점을 파악해보고, 자신감도 충전하며 적극적인 마음을 가져보려고 한다.


사랑을 하고 싶은 화려한 싱글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남한테 맞추며 힘들어하는 게 아닌, 맞추는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을 겪어보는 게 중요하다는 인생 선배님들의 조언들이 떠올랐다. 아직 내 인생의 끝에 결혼이 있을지, 배우자 기도에 적합한 사람이 나타났을지 아직 태어났는지 조차 모르겠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내 책임이기에 주저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내 인생을 알차고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


그 끝이 정해진 로드맵이 아니더라고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직접 만들어 나가는 길이 더 의미가 있을 테니까.


상처 받은 싱글들이여 어깨 펴고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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