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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나 Apr 06. 2024

싱잉볼과 정신승리

아픔과 공명 

힘겨운 하루를 보낸 후 퇴근길, 오늘은 기다리던 싱잉볼과 아로마 테라피 명상 첫 수업을 듣는 날이다. 매일 병원에서 사람들에게 기가 빨리거나 화병이 생겨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가슴을 두드리고, 온몸이 경직이 와서 아침마다 손가락 관절까지 다 아픈 내 몸 상태를 보면서 나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동사무소에서 하는 작은 수업 팜플렛을 보고 명상이라는 단어에 꽂히게 되었다.      

싱잉볼은 요즘 핫한 명상 하는 도구 중에 하나인데, 다양한 놋그릇 같이 생긴 도구에 작은 막대로 비스듬히 치면 지이이잉 하며 소리가 울린다. 묵직하게 울림을 주는 소리로 시작하다가 청아한 중간음 마지막에는 여운을 남기는 가느다란 소리에 귀 기울이며, 호흡을 가다듬고 명상을 한다. 은은한 아로마 향기를 맡으면 청각과 후각의 긴장과 정신까지 이완하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수업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갖고 있는 스트레스이겠지만, 유독 예민하고 사람들에게 잘 동화되는 성격 탓에 일희일비 하는 나 자신을 속부터 다시 튼튼하게 만들고 싶었다.      


첫 수업 당일, 어색하게 눈인사를 하며 자기소개를 하고 싱잉볼에 대한 개요 설명을 들었다. 

네팔에서 처음 만들어진 싱잉볼은 7가지 색깔과 음계, 역할이 나뉘어져 있었다.

뿌리(빨간색), 천골(오렌지색), 태양신경총(노란색), 가슴(초록색), 목(파란색), 제3의 눈(인디고색), 왕관(보라색)으로 오늘은 첫 수업으로 뿌리를 강화하는 명상과 싱잉볼을 연습하는 방법을 배웠다.

소리의 울림이 강하고 묵직하게 나기도 하고, 탁하고 약하게 깨지기도 하는 게 신기했다. 더 맑은 소리가 나게 하기 위해서 집중해서 연습하고 함께 호흡도 가다듬게 되는 과정에서 호흡만 신경 써줘도 스트레스가 살짝 완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짧은 오리엔테이션 시간이 끝나고 기다리던 명상 시간이 되었다.

작은 방안에 들어가 여러 싱잉볼들과 소리에 관련된 다른 도구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캐스터네츠처럼 생긴 띵샤라는 도구로 시작을 알려주면, 눈을 감고 가부좌 자세를 하고 손을 무릎 위에 가볍고 올리고 명상이 시작 된다.

방금까지 싱잉볼 소리를 잘 치기 위해 집중되었던 생각들이, 명상이 시작되자마자 오늘 있었던 일들이 갑자기 복기되며 어지럽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여느 평일과 다름없이 바쁘게 환자들 진료를 보고 있는데 원장님 화면에 쪽지가 띄어졌다. 


“원장님 p양 환자 챠트 좀 봐주세요. 왕싸가지입니다.”


p양? 내가 알던 그 사람인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산부인과 병원은 시스템상 정해진 기간 마다 담당 원장님이 로테이션이 되어서 일을 하게 된다. 지금은 남자 대표 원장님을 맡아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입사 초반에 여자 원장님을 맡아서 일을 했었다. 불과 

2년 전,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버티며 일하던 때였다.

요령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던 한가로운 오후, 환자들은 많이 없었지만, 옆방에 응급 환자가 와서 진료가 많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서 어느 원장님 방으로 옮길지 정신없이 확인하고 있는데, 어떤 환자가 대뜸 와서 소리를 버럭 지르며 당장 옮겨달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저 빨리 진료를 보고 이 상황을 무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맡고 있는 원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 환자를 우선으로 보게 되었다.

단순 진료로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지만, 산부인과 여자 원장님들은 워낙 환자가 많기 때문에 조금 말을 빠르게 환자들을 보게 되는 특성이 있었다. 최대한 배려하여 우선순위로 진료를 봤고, 원장님은 


“결과 나오는 데로 다시 오셔서 약 처방 받으시기 바랍니다” 로 진료를 마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대뜸 


“원래 이렇게 말을 빨리 해요? 내가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겠는데? 진짜 싸가지 없네, 이래서 당신의 의사야? 환자들이 알아듣기는 하냐고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20년 이상의 경력의 50대 여자 원장님은 5분 진료를 봐주셨고, 담당 환자도 아닌 다른 환자를 우선순위로 봐주기 까지 했는데 한순간에 봉변을 당하신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기만 한 나도 얼굴이 새하얘졌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는데, 그걸 듣고 있는 여자 원장님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20대 환자가 50대 의사에게 아니 적어도 환자가 의사에게 할 수 있는 말의 정도가 있는데, 이건 도가 지나치다 못해 한참 잘못된 상황이었다. 원장님은 최대한 중도를 지키며 의사로서 끝까지 할 몫을 하셨고, 그 환자는 씩씩거리며 나가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때 이후로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더 사람에 대한 경계가 커졌던 계기가 되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는데, 2년이나 지난 지금 이번에는 산모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임산부로 만나게 되면 적어도 10개월을 계속 그 사람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하고 아찔해져서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 

많고 많은 원장님 중에 왜 하필 내 담당 원장님에게 온 것일까... 그때의 상황을 다 알고 있던 수 선생님은 나에게 최대한 감정을 빼고 대하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라고 조언해주셨다.      

병원 대표 원장님의 카리스마에 한 발짝 물러난 건지, 만나서는 아무렇지 않게 잘 부탁한다는 얼굴을 하고 진료를 무사히 마쳤다. 속으로는 다행히 이렇게 지나가다 보다 하고, 다음 진료를 설명을 했다.     


“계산 하시고, 검사실에 가셔서 산전 검사 하고 가시면 됩니다. 2주 뒤에 뵐께요.”     


“산전 검사를 오늘 꼭 해야 해요? 보건소 가서 하면 되잖아. 왜 미리 말을 안 해주는 건데?”     


다짜고짜 반말을 하기 시작하는 환자,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당황을 했다.


“보건소 가서 하시고, 결과지 들고 오시면 빠진 검사 저희 쪽에서 다시 할께요. 오늘 검사는 그럼 빼드릴까요?.”     


“아씨 뭐라 하는 거야, 말귀를 못 알아듣겠네, 싸가지가 없는 거가 생각이 없는 거가?. 옆에 언니가 설명해주세요.”     


“....”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선생님이 같이 당황하면서 마저 설명을 했고, 나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 감정을 정리도 하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진료를 봐야 했다.      

모든 환자들 진료를 다 마치고 나서야, 계속 그 말을 복기하게 되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나보고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이 없다고?’      


2년 전에도 똑같이 느꼈던 저 특유의 공격적이고 자격지심 가득한 말투가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다.

조금만 말을 길게 하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말을 빨리한다고 말하고, 그 사람은 졸지에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이해력이 떨어지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공격적으로 어떻게든 방어하지만, 갑작스러운 공격에 상처받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배려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야무지게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이 일단 너무 답답했다. 무엇보다 같은 위치의 상황이 아닌, 환자와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라는 점에서 할 수 있는 말과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었을까?, 저렇게 면전에 대놓고 설명 해주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싸가지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표정과 말을 해야 최대한 모욕적이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한 것이었을까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2년 전 당한 여자 원장님에 이어서 똑같이 당한 나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그때 제대로 원장님을 위로해드리기 못한 죄송스러움과 프로답지 못하게 대처한 나 자신이 다시 한 번 부끄러웠다.     

이런 상황들이 뒤섞여 명상하는 40분 내내 나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내 감정을 숨기려 눈물을 참아보려고 애썼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눈물샘이 터져버렸고, 소리는 최대한 내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감정이 가는 데로 온전히 내버려뒀다. 


혼자 화도 났다가, 어떻게 해야 복수를 할 수 있을까, 한참을 머리를 굴렸다가도 다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해져서 고질적인 명치가 콕콕 쑤셔와 아프기 시작했다.     


싱잉볼 선생님이 명상하는 사람들 옆에 다가와 싱잉볼을 쳐주시는데 그때 함께 공명을 한다고 한다. 

명상을 마치고 나서, 나에게 물어보셨다.     


“오늘 많이 힘든 일이 있으셨나 봐요? 계속 눈물을 흘리시던데. 지금은 괜찮으세요?”


“오늘 답답한 일이 있어서 명상 하는 내내 생각을 못 비우고 계속 그 생각만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명치가 계속 아프셨어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너무 답답해서 그런지 명치가 계속 쑤셨어요.”     


“선생님 옆을 지나는데 저도 명치가 쑤시더라구요. 싱잉볼은 함께 하면서 선생님들의 아픔을 저도 같이 느끼게 되요. 공명이라고 하는데, 오늘 선생님의 아픔이 저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 같아요.”     


아픔을 공명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내 아픔도 너무 커서 힘들어서 죽을 지경인데, 다른 사람들의 아픔까지 공명되어서 느껴진다면 너무 힘들어서 감당이 될까 싶었다.


선생님은 그런 아픔들을 함께 공명하고 싱잉볼을 하며 명상하면서 그 자리에서 모두 털어버린다고 하셨다. 숙달된 전문가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공감 하고 위로 받고, 내가 도울 수 있다는 일에 뿌듯함을 느끼다가도, 한 번씩 상식선에서 벗어나는 무례한 인간들을 만나면, 아직도 나는 버겁고 이겨내기가 힘들어서 너무 아프다. 그런 아픔들을 털어내야 하는데, 계속 내 안에 담아두다가 마음의 병이 생겨나고 고질적인 명치의 아픔이 생겨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수만가지 생각과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그 환자를 감당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막상 만나면 나도 모르게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게 되었다. 최대한 감정을 덜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대해야 하는 나의 상황들을 겪으며, 나는 많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도와주는 더 나은 인간이라는 정신승리를 하며 생각의 전환을 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픔을 공명하며 누군가는 아픔을 털어내고, 누군가는 그 아픔을 승화시키며 위로로 다시 나눠주는 걸 느끼며, 다시 사람으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 명치의 아픔은 언제쯤 말끔하게 사라질까, 

일단 오늘 하루 겪은 아픈 감정들을 비워내고, 굳어 있는 어깨부터 천천히 이완시키고 호흡에 집중하며 명상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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