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이상과 현실
20대 끝자락 뒤늦게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 엉겁결에 독립도 같이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독립에 대한 환상이 컸기 때문에 직장 옮기는 걸 무리하게 몰아붙이기도 했던 것 같다. 옮기는 회사의 연봉, 복지, 4대 보험은 되는지, 연차는 있는지 제대로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철없이 독립할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만약 독립을 하게 되면 내가 원하는 물건들로 방을 가득 채우고 공간도 마음껏 꾸미고, 좋아하는 식재료로 냉장고를 채우고 건강한 음식들을 만들어 먹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하며 자유롭게 지내도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는 즐거운 상상에 취해 있었다.
엄마랑 가장 친하고 어렸을 때부터 나를 예뻐해주던 서울 이모는 원룸 건물을 가지고 계셨다.
때마침 옥탑방에 방이 비어 있었고,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나를 선뜻 받아주셨다.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대충 택배로 먼저 보내고, 급하게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옥탑방 위치는 합정역 근처, 회사는 신논현역에 위치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수많은 유동인구에 절여진 지하철안의 짓눌린 사람들에 한번 놀라고, 삐까뻔쩍해보이는 커다란 회사 건물에 압도당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해서 보니 어중간한 경력자로 입사한줄 알았지만, 전혀 다른 분야여서 경력이 없는 나이 많은 중고신입이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잦은 외근으로, 버스노선부터, 거래처 위치를 외우기에 급급했다.
환상 속의 퇴근 후 생활은, 건강한 식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 먹으며 반주 한잔하며 영화나 음악, 책을 천천히 감상하며 하루를 여유롭게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현실 속 퇴근 후 삶은, 9시 퇴근 후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서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마감 세일로 구입한 시리얼과 우유를 사서 커다란 그릇에 담아 우걱우걱 먹으며 때우는 식이었다. 이모한테 신세지고 있는 입장이라 최대한 전기세나 수도세를 아끼고 싶은 마음에 항상 밤마다 세탁기 대신 손빨래를 하고 옥상에 옷을 널고 나면 금방 밤12시가 되었다.
그리고 아침 6시가 되면 다시 출근하는 쳇바퀴 같은 주중을 보내고 나면 기다리던 주말이 찾아왔다. 피곤에 쩔어 나는 아무 눈치도 안보고 실컷 늦잠을 자려고 하면, 창문 너머로 이모의 손이 쑤욱 들어오는걸 보고 처음에는 경악했고 애써 자는 척을 했다. 살갑지 못한 나를 배려하신다고 주말 새벽마다 옥상에 식물들을 돌보는 척하며 내가 잘 지내는지 항상 살펴보며 반찬과 음식들을 가져다주셨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내가 주말에 잠만 잔다고 걱정이라고 연락을 하시고는 내가 숨은 쉬는지 하루에 한 번은 점검 하러 오셨다.
퇴근 하고 돌아오면 화장실은 청소가 되어 있었고 쓰레기통도 항상 말끔히 비어져있었다. 관심과 애정은 한끗 차이인데, 부지런한 이모 덕분에, 엄마 보다 더한 감시 대상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혼자인 것보다 나를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울생활은 내게 삭막하게만 느껴졌다. 처음 몇 달은 회사에 적응하느라 집에만 오면 떡 실신을 했는데, 적응을 하다 보니 집에 오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적막함에 숨이 막혀서 노트북으로 아무 영상이라도 종일 켜놓았다.
내가 원하던 독립생활의 1순위는 실컷 책이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작은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였고 그 다음으로는 요리할 수 있는 공간, 내 물건이나 책들을 놓을 수 있는 책장이였다. 정작 옥탑방에서 내 공간은 대자로 누우면 가득 찰 정도로 작았고,부엌에는 작은 싱크대와 전자렌지로 만석이었고, 손바닥만한 탁자 위에 화장품 몇 개와 작은 거울과 책 몇 권, 노트북이 살림살이 전부였다. 좁은 공간 활용을 하기 위해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지지해둔 행거는 자주 쓰러져서, 자다가도 몇 번이나 짓눌려서 강제로 일어나게 만들었다.
부엌 미닫이 문 옆에는 다이소에서 산 작은 네트망에, 전시회에 다녀오고 모은 엽서를 붙여서 유일하게 꾸며놓은 작은 공간이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엽서 한 장씩을 채울 때마다 만족해하면서도 내가 쓸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엽서 한 장 밖에 안 되는구나 하며 쓸데없는 자책을 하기도 했다.
내가 꿈꾸던 독립생활은 여유와 자본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난 뒤로는, 본가에서 살던 때가 참 배불렀던 삶이라는 것도 체감하게 되었다. 주말마다 늦잠 자던 나를 등짝스매싱으로 깨우며 차려 주시던 따뜻한 집 밥도, 빨래와 청소까지 깔끔하게 해주시며 집안을 돌보는 엄마가 너무 존경스러웠다.
하루만 청소를 안 해도 코딱지만한 방안에는 먼지가 굴러다니는 게 눈에 보였고, 내 머리카락은 스스로 증식을 하는지 매일 청소를 해도 끊임없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오늘 하루의 이야기들에 공감해주며 주고받던 일상 속의 소소한 대화가 가장 그리웠다. 그때는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말하기도 귀찮아하며 내 방에 들어가 자유로움을 즐기며 만족했는데 지금은 그리워하다니 정말 아이러니했다. 그래서 밤마다 돌아가며 가족과 통화하는 걸 제일 좋아했다. 나중에는 다들 핑계를 대며 전화를 피했다는 슬픈 후문을 듣기도 했지만.
옥탑방 화장실은 성인 한명이 서서 벽에 등을 기대면 앞쪽 벽에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았는데, 특히 차가운 겨울이 오면 무릎에 닿는 타일의 차가운 기운이 전해져 너무 서러웠다. 출근 준비로 양치를 하며 등을 기대 무릎에 차가운 기운이 전해지면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쳐냈다. 내가 꿈꾸던 독립은 이게 아닌데, 자꾸만 후회가 되고 본가가 그리웠다. 그 뒤 얼마 못 있고 여러 사정과 건강 악화로 퇴사를 결정하며 부산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신적인 독립을 전혀 하지 못한 채 그냥 겉치레로 보기 좋은 자유로움을 환상 속에 기대 꿈꿨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 만족하고 여유로움을 즐겼다면, 옥탑방이든 어디든 뭐가 그리 슬펐겠나 싶었다. 내가 처한 환경을 계속 남과 비교하기 바빴고, 그걸 고치거나 이겨나갈 힘도 의지도 없었던 껍데기만 독립한 성인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원하는 것을 일단 ‘나중에 하자’는 식으로 미루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들끓는 욕망과 현실에서 느끼는 박탈감 어딘가에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것 같다.
지금은 무려 미혼 남녀 중 70프로에 속하는 캥거루족으로, 안락한 현실에 안주하며 독립의 꿈은 잠시 접어뒀다. 내가 없으면 부모님의 기프티콘 구매나 넷플릭스 결제,각종 온라인 할인 구매, 배달 어플 주문, 자잘한 문서 작업까지 누가 해주겠냐며, 스스로 집안의 숨어있는 필요한 존재라는 걸 각인시키고 있다.
그리고 뭐든 원하는 것이 있다면 후회하더라도 일단 먼저 해보고,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으로 바꾸니, 텅비어져있던 자존감이 조금씩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는 독립하지 못했지만, 정신적인 독립이라도 먼저 하기 위해 무던하고 일희일비하지 않는 감정 컨트롤에 집중하며 단단한 본체부터 구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언젠가는 리클라이너 소파에 편하게 앉아 정신적, 물질적 모두 다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소박한 독립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