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꿈 vs 조심해야 하는 꿈 뭐가 나은 걸까
뾰족하고 빛나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뾰족한 바늘이었다. 모서리 공포증이 있는 나는 보기만 해도 찔릴까봐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바늘의 작은 구멍에 필사적으로 실을 넣으려고 애썼지만 도무지 잘 들어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실을 넣어야했고 그 좁은 구멍에 억지로 실을 넣는 순간 피가 흠뻑 젖어들면서 눈이 떠졌다.
이번에는 아주 작은 문 입구가 보였다. 톰과 제리에 나오는 생쥐 제리가 살고 있을만한 앙증 맞은 사이즈였고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라도 집어넣으려고 애썼다.
아주 잠깐 잠들었을 때 생생한 꿈을 꾸게 된 내용이었고, 내 꿈 노트에 빠짐없이 적어 두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꿈을 잠깐이라도 꾸고 선명하게 생각나는 것이 예지몽이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예지몽을 많이 꿨다.
초등학생 때 몇 개의 꿈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하루 종일 상을 받는 꿈을 꿨을 때는 실제로 그 해에 교내에 크고 작은 대회, 전국 대회 어떤 분야든 나가기만 하면 계속 상을 받았다.
꿈에서 하루 종일 흐느끼면서 울거나 넘어지는 날은 항상 안 좋은 일이 일어났고, 가족들이 나와서 사고가 나거나 울고 있을 경우에도 미리 조심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꿈을 많이 꿔서 개꿈이든 예지몽이든 꿈꾸는 게 조금 두렵고 힘든 적이 많았다.
내 사주를 보러 가면 항상 하는 말이 조상님이 도와주고 있어서 예지몽을 많이 꾼다. 어머니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몇 번의 유산한 아이들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안 풀리니 30살까지 많이 힘들다고 굿을 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계속 굿 해라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으니 나도 모르게 꿈에서 내가 무당이 되어서 신나게 작두를 탄 적도 몇 번 있어서 진짜 신 내림 받는 거 아닌가 걱정한 적도 있었다.
내 손에 싱싱한 바나나가 쥐어져 있다. 나는 그 바나나 하나를 톡 떼어내서 어떤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갑자기 아주 거대한 코끼리 2마리가 나타났는데 이빨이 코끼리 코만큼 아주 길고 기괴하게 붙어 있었다. 내 목을 하늘 높이 젖혀서 봐도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코끼리의 덩치와 우락부락한 생김새가 더해져 나도 모르게 무서워서 뒷걸음질 치게 되었다.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옆에 있던 친구가 바나나를 코끼리 입에 정확하게 던졌다. 나도 따라서 재빠르게 바나나를 코끼리 입에 던졌지만 땅에 떨어졌다. 내가 다시 떨어진 바나나를 주우려고 발을 떼는 순간, 순식간에 코끼리는 땅에 떨어진 바나나를 게걸스럽게 해치웠다.
촉이 좋다는 사람들이 항상 부러워했는데, 나는 정작 현실 세계가 아닌 꿈을 꾼 뒤 가까운 미래를 짐작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뭔가 간절하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라면 더 절실하게 꿈속에서 발현 되었다. 누군가에게 쫓겨서 도망 다니거나 혹은 뭔가 이루어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선물을 받는다거나 문을 활짝 여는 레퍼토리가 생기게 되었다. 실제로 선물을 받은 꿈을 꾸게 된 뒤 면접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떤 옛날 양장점에서 옷을 고르고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아주 고운 비단 한복을 선물을 해주었다. 그리고 돌아서면 또 다른 이가 나에게 다른 한복을 선물해주었다. 그 한복은 빛이 나서 반짝 거렸고 마치 날개가 달린 모습이 얼핏 보이기도 했다. 그 아우라가 듬뿍 담긴 옷들을 선물 받은 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서 옷들을 만지작거렸다.
그 중 가장 자주 꿨던 꿈은 신발과 계단 꿈이다. 취직 준비를 한창 할 때 나는 눈만 감으면 꿈에서 내 신발을 잃어버려서 양말만 신고 돌아다니거나, 신발장에 무수히 많은 신발들 속에 내 신발만 찾지 못해서 불안해하곤 했다. 꿈을 너무 자주 꾸다보니 어떻게든 신발을 신어야 나올 수 있게 된 걸 인지하게 되었고, 신발을 신고 나오면 비슷하지만 내 신발이 아니었고, 짝짝이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래서 내 신발을 다시 찾으러 하루 종일 헤맸고 꿈과 현실이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신발 꿈은 자주 꾸고 있다.
한참 취업이 잘 되지 않을 때는 가파른 계단을 계속 오르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 거칠게 숨을 쉬며 힘들어하는 꿈을 자주 꿨다. 죽을 듯이 힘들게 오르고 난 뒤 문이 열리지 않거나 혹은 문이 없어서 크게 허무해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 꿈들을 꾸고 난 뒤에는 서류 면접에 불합격하거나 마지막 면접에서 아쉽게 탈락해서 슬퍼하고 있었다.
꿈을 워낙 많이 꾸다보니 일어나면 꿈을 잊어버리기 전에 해몽을 찾아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해몽에 따라서 그날 아침 나의 기분이 결정 되었다. 누가 봐도 명확하게 기분 좋은 꿈은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좋다. 그래서 해몽을 대충 찾아보고 그날 하루 종일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찝찝하고 기분 안 좋은 꿈을 꾼 날이면 해몽을 좋은 뜻이 나올 때까지 끼워 맞춰서 찾아본다던지, 그날 왠지 조금이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극도로 예민해졌다. 좋은 결과를 바라는 중요한 날 전 날에는 아무런 꿈을 꾸지 않아서 괜히 불안해한 적도 많았다.
꿈을 많이 꾸는 사람은 상상력도 풍부하고 걱정거리도 많다고 하는데, 이제는 생각이라는 걸 그만 멈추고 숙면을 취하고 싶어졌다. 요즘처럼 도파민에 절여진 시대에는 더 독특한 꿈들을 꾸기도 한다.
SF적인 영화의 미래 배경에서 좀비들에게 쫓긴다던가, 내가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동물의 시선으로 돌아다닌다던가, 더욱더 내 머리 속은 복잡해지는 것 같다.
만약 예지몽을 꿀 수 있다면
기분 좋은 일을 알려주는 꿈 vs 조심해라고 안 좋은 일을 미리 알려주는 꿈 중에
어떤 꿈을 꾸는 게 나은 것일까?
한 번씩 나는 플라시보 효과를 경험 중인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몇 번 꿈이 제대로 맞았다고 갈수록 나는 꿈을 맹신하게 되었다. 내 앞날을 조심하라고 알려준 꿈일지라도 꿈에 의존하여 내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내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사소한 문제까지 조심해하며 안일하게 보내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불길한 꿈을 꾸고 난 뒤 중요한 일도 나는 수월하게 해결했고, 기분 좋은 꿈을 꿔도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가끔은 너무 간절해서 혹은 걱정이 많아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던지, 그저 내 생각과 걱정에 꼬리를 물고 바라는 상황들이 꿈으로 대신 표현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로또나 돼지꿈은 아직 간절하지 않아서 꿈꾸지 못하는 것인가.
앞으로 나는 더 이상 꿈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내 갈 길을 현실적으로 버티며 살아갈 것이다.
숙면을 취하며 개운하게 일어나는 그 날을 위하여 오늘은 그만 일찍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