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버팀목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버팀목, 정여사를 소개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내게 큰 산이자,가장 믿는 사람이었다.
덩치는 산만하지만 간 크기는 비례하지 못하게 소심했던 나는 학교생활도 사회생활도 매번 힘들어했다.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엄마는 어디선가 귀신 같이 내 표정, 눈빛만 보고서는 알아채고 다가왔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조언해주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너무 든든했다.
그 뒤로 경험치가 쌓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엄마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주문을 외우고 답을 얻기도 했다.
큰 산 같은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여러 번 시련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막내딸로서 큰 힘은 주지 못했지만 언제나 응원을 했다. 갱년기로 우울증이 심할 때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이 위기에 처할 때도 어떻게든 수퍼우먼처럼 해결했다.
고3때, 어렸지만 집이 어렵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특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느끼던 어느 날, 하교 후 똑같이 엄마는 저녁을 챙겨주셨고 몸이 좋지 않다고 쉬러 들어가셨다.
알고 보니 그날, 집에 빨간 딱지가 다 붙은 날이었고 하루 종일 엄마는 뛰어 다니며 어렵게 일을 해결했다고 한다. 어린 나에게는 절대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다며, 언니가 나에게 뒤늦게 고백했다.
집안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살았던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큰 산 같이 단단한 엄마도 약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빠르게 변해가는 컴퓨터, 모바일 시스템을 적응하기보다는 전적으로 의지하려고 하셨고, 답답한 마음에 엄마랑 싸우는 날이 많아졌다.
항상 스스로 해결하고 독립적이던 엄마도 맘처럼 잘 안 되는 것에 답답해하셨고, 동사무소에서 하는 스마트폰 강좌를 듣기 시작하셨다. 그게 시발점이 되어서 동사무소에서 들을 수 있는 강좌를 하나씩 늘려가며 듣기 시작하셨다.
'인생은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 고 엄마는 하고 싶은 걸 찾는데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캘리그라피, 학습 매니저, 리듬스푼, 합창까지 여러 수업에 올해는 개인 PT까지 들으면서 엄마의 일주일 스케줄이 꽉 차기 시작했다.
엄마의 인생에 활력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때마침 취미 부자가 되어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약해지고 있던, 엄마가 조금씩 유연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취미생활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갑자기 한꺼번에 들려온 이모부, 친구의 부고 소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입이 닳도록 공휴일에 여행을 다니자고 설득을 할 때에도, 제사가 중요하다며 큰집 맏이의 책임감을 내려놓지 못하셨다.
그러던 엄마도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마음을 바꾸셨고, 인생을 즐기자고 마음을 바꾸셨던 것 같다.
인생의 속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이가 1살이라도 어리고 건강할 때, 많이 여행을 다니며 보고 먹고 느끼고 행복하게 지내보자는 마음이 전해져서 기뻤다.
마음을 먹은 김에 나는 엄마에게 여행 적금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작은 돈이지만 매달 모아서 분기별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사실 나는 부모님과의 여행은 아주 호화롭고 제일 좋은 여행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Y2적금(엄마와 내 이름 둘 다 이니셜에 Y가 들어가서 Y2로 지었다)을 만들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호화롭고 편한 여행 한번 보다, 몸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기억에 오래 남을 행복을 여러 번 함께 느끼고 싶었다.
나이가 들고, 시련과 고난에 무던해질수록 눈앞에 행복이 소중해진다.
아침에 건강하게 눈을 뜨고 오늘 하루 무탈하게 잘 지냈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지루하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마음만 더해진 것뿐인데 내 삶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든다.
정여사의 취미부자 별명에 걸맞게 나도 취미생활이 늘어나고 있고 서로 좋아하는 게 많다보니 통하는 게 더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공유하는 시간과 함께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즐겁다.
서로 조언해주며 쓴 소리도 아끼지 않고, 가끔은 싸우기도 하고 누구보다 응원해주는 모녀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엄마, 남은 인생 함께 즐기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날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Y2 여행’의 여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