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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기 전, 우리들의 대처 자세

어쩌다 보니 현재를 즐기게 된 우리들

by 프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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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여사와 나는 꽤 많은 여행을 다녔다.

적어도 분기별로 여행을 빠짐없이 다녔고, 여행의 여운이 사라질 때쯤 항상 누군가가 어디를 가자 어디가 좋다더라 말이 나오면, 함께 휴가 일정을 조율하고 맞춰서 실행 하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이번에도 마침 회사에 연차 일정이 나왔다. 그것도 이틀이나!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을 붙여서 쓰면 무려 3.5일을 쉴 수 있는 날은 흔치 않기 때문에 어디든 꼭 가야만 했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포항을 갈 건지, 아니면 큰 맘 먹고 해외 여행을 갈 것인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우리가 가는 날의 2주 뒤가 설날 연휴가 다가와서, 설날 연휴에도 아버지와 어디를 가야만 한다고 엄마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두 번 다 여행을 어떻게 가냐며 엄마는 거의 반 포기한 듯이 말을 했고, 파워 J인 나도 일정이 코앞에 다가와도 숙소 예약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불현 듯 생각난 게 있었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북 스테이!

조용한 숙소에서 하루 종일 자유롭게 책을 읽으며 지내는 여행을 말한다.

SNS에서 많이 보던 북 스테이 숙소는 시골 외곽에 위치해 있고, 창문만 열면 새소리와 초록 나무들을 볼 수 있는 감성의 예쁜 숙소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차 소리가 많이 나는 도심에서 북 스테이 한다는 것은 조금 맞지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나 같이 장롱 면허에 뚜벅이인 사람에게는 차로 멀리 가는 숙소는 ‘그림의 떡’ 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 중에 예전부터 눈 여겨 보던 숙소가 있었는데, 그곳은 청도에 위치한 복합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책방 겸 북 카페가 있었고, 중고 책방, 레스토랑과 게스트 하우스, 독채 하우스까지 두루 겸비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야말로 숙소 안에서 몇 걸음만 가면 모든 곳을 즐길 수 있었기에 북 스테이를 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숙소는 책의 컨셉에 따라서 숙소 안의 색깔, 책 배치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숙소 가격이 내 기준에는 조금 비싸게 느껴져서, 망설이며 거절 당할 걸 예상하고 엄마에게 사이트 주소를 공유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다.

“와 여기 어디야? 숙소 너무 예쁘다. 여기 꼭 가고 싶다!”


이렇게 엄마의 확신으로 가득찬 반응은 처음이었다.


워낙 까다로운 성격의 엄마는 숙소나 장소를 공유해도, 좋은 게 하나가 있으면 꼭 그에 따른 나쁜 점도 하나씩 발견할 줄 아는 치밀한 성격이다.

그러나 이번 숙소는 단점이 하나도 발견 되지 않아서 놀라웠고, 심지어 예상 했던 숙소 가격 보다 비쌌다.

그런데도 엄마의 반응이 ‘이런 경험도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태도가 너무 소녀처럼 해맑게 느껴져서 덩달아 나도 신나고 용기로 충만해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여행에 대한 계획을 전혀 짜지 않았고, 숙소에서 쉬기 위한 힐링 여행을 꿈꿀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보통 나는 엄마와의 여행에서 플랜 B부터 적어도 3~4가지 대처 방안까지 계획을 세워가는 편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바꾸는 여행 일정의 움직임에 매우 특화되어 있었다.

(이전의 여행 계획 썰도 천천히 풀어볼 예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볼거리나 맛집까지 전혀 알아보지 않고 출발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조금 긴장도 되었다.

드디어 출발 당일, 엄마와 간단하게 집에서 아침을 먹고 천천히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11시쯤 출발을 했고, 차도 막히지 않아서 2시간 남짓 걸려 빠르게 청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청도에 한번 와본 적은 있지만, 청도 와인 터널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마침 숙소 가까이에 위치해 있어서 잠깐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청도 와인 터널은 코로나 이전에는 입장료가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한시적으로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었다. 와인 모형과 감나무 모형들이 커다랗게 맞이하고 있는 입구 안에는, 어두운 터널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있었고, 안에는 와인들이 창고에 가득 채워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단체 관광객들 말고는 사람들을 별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너무 조용했고, 무엇보다 안에 있는 직원들도 너무 의욕이 없어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

좋은 장소와 와인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서 이렇게 관광 지역을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게 너무 아쉬울 따름이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고 마침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나서 우리는 콩나물 국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주차장이 따로 없었고, 공영 주차장을 찾아서 빈자리를 찾아보았지만 어딜 가도 만석이었다.

계단 바로 옆에 조그만 자리를 발견했고, 우리는 냅다 차를 밀어 넣었다.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 철제로 제작된 커다란 계단이 아래로 삼각형 모양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었고, 우리 차는 큰 SUV 였기에 뒷 유리가 닿일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앞 뒤, 옆을 몇 번이나 확인을 했겠지만, 배도 고프고 주차장 자리도 계속 못 찾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차를 움직였지만 센서 소리도 나지 않아서 안심하고 후진을 시원하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퐈아아아아아악 소리가 크게 나면서 차 뒤에 유리가 계단에 부딪쳐서 산산조각이 났다.

만약 뒷자리에 누가 타고 있었다면 어딘가 다쳤을 정도로 유리에 구멍이 크게 뚫렸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나는 뒷목에 자극이 올 정도로 큰 타격감을 얻었고, 온몸의 털이 순간적으로 뻣뻣하게 솟은 느낌이 들면서 소름이 돋았다. 주차를 한 당사자인 엄마는 너무 놀라서 눈물을 글썽이며 상황 판단을 하려고 애썼다.


일단 차에서 내려서 트렁크의 유리를 확인하러 뛰어갔다.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유리들 파편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고, 트렁크 문을 열면 아예 트렁크의 유리가 다 떨어질 것 같아서 열지도 못했다. 그리고 트렁크 안에는 이틀 동안 우리를 책임져줄 식량도 박스에 담겨져 있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겨우 부여잡고, 엄마를 진정 시키면서 유리 업체와 정비소 업체를 알아봤지만, 일요일에 문을 여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도에서 정비소를 찾으려면 가까운 대도시인 대구가 가장 가까웠고, 대구를 갈 거리나 부산을 갈 거리가 거의 비슷했다.


지금 우리의 결정은 정비소로 가는 것보다, 지금 현재의 선택에 집중하기로 했다.

배고프고 놀란 마음을 진정 시키며 콩나물 국밥을 먹으러 갔다.

엄마는 국밥을 먹으면서 몇 번이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유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셨다. 나 또한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암담했다.


밥을 먹고 조금 정신이 돌아오고, 우리는 과감하게 숙소에서 이틀을 지내기로 했기 때문에 숙소까지 어떻게든 조심해서 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편하게 지내고 집에 올 때 렉카를 부르기로 결론을 냈다.






우리들의 놀라운 태연함과 의연하게 성장한 대처 자세가 조금 뿌듯하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우리들은 여행을 바로 취소하고 차를 정비하는 것에 몰두를 했을 것이다. 항상 일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강했고, 현재를 전혀 즐기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건 엄마도 그렇고, 그런 엄마의 예민함을 쏙 빼닮은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부산으로 가려면 적어도 3시간 이상은 걸리고, 숙소 취소는 못할 것이고 일요일에 문 여는 정비소는 없기에 우리들은 그냥 지금 현재에 주어진 상황에서 즐기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선택지가 없고, 강제로 북 스테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히려 반가웠다.


숙소까지 10여분이 걸렸지만, 오는 길에 뒷문 구멍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 차가웠고, 조금만 세게 달려도 유리 파편들이 후두둑 떨어져서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겨우 도착했다.

10여분이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린 것처럼, 등에서 식은땀이 계속 났고 너무 긴장을 해서 손아귀와 뒷목덜미가 뻣뻣해지고 저릴 정도였다.


그리고 숙소에 주차를 하고 뒷문의 유리 구멍을 어떻게 막을지 생각을 했다. 대체 방안으로 뒷좌석에 보이는 커다란 은색 돗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은색 돗자리로 대충 뒷 창문에 구멍에 대고 차문을 닫아서 고정시켜주었고, 혹시나 날아갈까봐 커다란 돌을 차 위에 올려둔 게 다였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이 편했다. 구멍은 뚫렸지만 뭐 어쩌겠는가, 차에서 가져갈 것도 없다.

어떻게든 시작 하고 하려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인생은 굴러간다고 생각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미 벌어진 사고에도 태연함을 가지고 현재에 집중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완벽한 여행은 없지만, 완벽한 순간은 있다!”



앞으로 어떤 여행을 가도 오늘의 일을 우리는 곱씹으며, 더한 경험도 충분히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 공간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숙소에서 얼마나 재밌는 하루를 보내게 될까?


숙소의 예쁜 문 손잡이를 돌리며 설레는 마음을 같이 꺼내본다.

그렇게 우리들의 험난한 북스테이 첫날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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