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사와 함께 하는 여름 포항 여행 첫째날
8월 중순 여름 휴가 날짜를 정해놓고 2달전부터 설레어하며 기다렸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일상의 퍽퍽함과 고단함을 휴가를 보내면서 날려보내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나 또한 직장인으로서 길게 휴가를 내지 못하지만 여름 휴가를 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숨쉬는 구멍이 작게 만들어져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면서 든든했다.
짜증나고 힘든 일이 있어도, 휴가를 생각하면 '이 정도쯤이면 괜찮아' 하면서 의지가 되었다.
평소에 나는 아주 치밀한 계획형 인간이었지만, 이번 여행은 오래 기다린 여운에 지쳤는지, 여행 일정이 다가오니 점점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2주가 남고, 1주가 남았는데도 계획한 것이라고는 여행 목적지와 숙소 뿐이었다. 목적지는 포항이었고, 이번 여행메이트도 역시 나의 베스트 드라이버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정여사와 함께 하기로 했다.
여행 목적지를 포항으로 정한 이유는 단순한데, 내가 사는 부산과 가까우면서도 바다와 가깝고 어느 정도 관광지를 찾던 와중에 적당해서 골랐다. 무엇보다 집에서 대략 2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라서, 부담이 없었다.
여행 날짜가 다가왔고, 내 심적인 부담도 커져갔다. 이번 여행 처럼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가는 여행이 처음이었고, 무엇보다 폭염인 이 무더운 날씨를 견딜 수 있을까, 자꾸만 혹시나 병이 생겨나서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차 사고가 나거나, 숙소가 별로면 어쩌지, 가려던 곳이 별로라서 실망을 한다거나, 무더운 날씨에 짜증이 폭발하면 어쩌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여러번 가봤다고 우리의 짐들은 제법 단출해졌고, 짐 싸는 속도도 꽤 빨라졌다. 여행을 가면 자주 사용하던 물건만 쓰게 되고, 여행이라고 안 쓰던 물건을 가져가게 되면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 입던 옷을 입어보기로 했다. 사진에 예쁘게 찍히기 위해서 잘 안 입던 니트 재질의 가디건도 챙기고 블랙 도트 무늬 롱 원피스를 첫 날 입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얇은 여름 소재로 접으면 부피가 덜 차지하는 티셔츠를 여러벌 챙겼다.
드디어 출발!
안 입어보던 옷을 입고,처음 가는 목적지로 향해 가는 마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 재미 없는 내 하루에 대한 자기 연민이 지나쳐서, 색다른 일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일탈을 꿈꿔보았다.
지난 여행 때 깨진 트렁크 유리 창문을 생각하며, 나는 더 사소한 순간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결제하는 순간 카카오뱅크에서 캐시백에 당첨이 되었다.
여행을 시작하는 동시에 이런 행운이 오다니,오늘 하루 너무 기분 좋을 일들만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시간 여만에 도착한 포항, 우리는 목적지인 곰탕 맛집을 방문했다. 곰탕집은 포항 죽도 시장에 위치해 있었는데, 시장 주차장에는 차들이 너무 많아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배는 고프고 휴가라 차들도 많았고 주차할 곳이 없어서 계속 돌아다닐 생각하니 아찔했다. 주차할 곳을 찾아 해매는데 마침 문 닫은 가게가 바로 보여서 수월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우리의 행운이 이렇게 따라주는 것인가 생각하며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는 점심시간 시작으로 이미 대기가 시작되었다. 어딜 가나 기다림의 연속이구나 생각하고 , 이 더운 여름 땡볕에 어떻게 기다리지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화장실을 잠시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빈자리가 생겨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곰탕 2그릇을 주문하자마자 거의 동시에 나왔다.
우리 자리 앞에는 커다랗고 깊숙한 솥에서 펄펄 끓는 곰탕이 있었고 직원들은 땀에 젖은 수건을 목에 걸치고 재빠르고 정성스럽게 국밥을 토렴해서 준비해주었다. 보글보글 끓는 국물이 다 먹어갈 때까지 아주 뜨끈해서 좋았고, 쫄깃한 머릿고기와 살코기가 적당히 섞여서 다양하게 씹는 맛이 있었고, 하얀 쌀밥은 국물이 적당히 베여서 먹을 때마다 감칠 맛이 났다. 살짝 매운 깍두기와 양파,쌈장,고추가 어우러지니 화룡점정으로 포항까지 온 보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는 더위를 식힐 겸 근처 카페로 갔다. 우연히 도착한 곳은 대형 카페였고, 아주 커다란 회전목마가 있어서 이색적이었다. 1층에 회전목마를 기점으로 2층,3층 계단이 원을 그리며 있었고, 이용하는 손님들이 계단을 오르면 원을 그리며 한참을 크게 돌면서 힘겹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래서 엘레베이터를 이용해라는 문구가 있었지만,이용객 대비 1대 밖에 없는 엘레베이터는 너무 느려서 답답했다. 우리는 자리를 잡기 위해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계단을 열심히 돌면서 걸어서 도착했다.
2층에 이어서 3층에 바다 뷰를 볼 수 있는 좌석들이 많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고, 자리가 더 없는지 두리번거렸다. 그때 두번째 앞에 있던 명당 자리에서 노부부가 일어났고 나는 지하철에 가방 던지는 심정으로 빠르게 가방을 놓으며 자리를 차지했다. 식당에 이어서 이번에도 행운이 우리한테 찾아왔다며 좋아했다. 바다뷰를 보는 잠깐의 시간이 힐링이 되었고, 사람들이 없는 탁 트인 뷰가 너무 좋았다.
하늘 아래 같은 바다는 없다고 포항 바다는 부산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바다 건너편에는 포스코 건설의 공장들이 즐비해 있었고, 저 공장들이 바다 한 가운데 위에 있는 것인지, 공장들이 만들어졌는데 바다가 생겼는지 궁금했다. 바다 지평선 위에 공장들이 있으니 마치 어렸을 때 상상하던 미래의 우주도시 느낌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점은 바다 주변에 쓰레기 하나가 없었고. 수시로 쓰레기를 수거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바다 근처에 주차할 곳도 넓어서 아주 좋았다. 부산에는 아마 저 주차할 곳에다가 건물을 세우거나 장사를 했겠지 생각이 들면서 상업적인 생각에 길들여진 스스로가 놀랍기도 했다.
처음 먹어보는 솔트 라떼는 단짠의 매력이 느껴져서 좋았고, 예쁘게 생긴 케이크들을 한입만 먹어도 당 충전이 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힙겹게 올라오던 커다란 계단도 1층의 회전목마를 아름답게 구경하기 위한 코스로 느껴지면서 훌륭한 건축물로 보여졌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인가, 부정적인 시선도 긍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게 달콤한 디저트의 힘인가 생각이 들었다.
다음 일정으로는 요즘 포항의 핫 플레이스인 스페이스 워크에 방문했다. 롤러코스터가 연상되는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진 계단들이 멀리서도 위용을 뽐내고 있어서 멀리서도 잘 보였다. 저 계단에 올라가서 하늘과 포항바다를 바라보면 어떨지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했다. 주차장은 이미 만석을 이루고 있었고, 한참을 올라가야 입구 팻말을 볼 수 있었다.
입구 팻말을 보고 나서도 10분 가량 등산을 해야해서 무더위에 땀으로 흠뻑 젖어서 지치기 시작했다. 고대했던 스페이스 워크가 보였고 사람들이 차례를 지키며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예상과는 달리 전부 철 소재로 되어 있는 구조물은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계단의 방향은 이리 저리 꼬여 있고, 하늘을 향해 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형태였다. 놀이기구도 잘 못 타고 멀미 증세도 쉽게 느끼는 나는 보는 순간 어지러웠고 더위가 더해지니 구조물 근처에도 가기가 싫었다. 뜨거운 열기에 달궈진 구조물을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재빠르게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마치 내가 sns의 실체와 허구의 이중적인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사진으로만 예쁜 모습, 즐거워하는 모습을 담고 정작 현실은 힘들어서 사진만 찍고 바로 도망가는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더위에 무참히 졌다.
내려가는 길에 발견한 작은 미술관에서 에어컨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예쁜 창문 숲 뷰를 바라보면서 잠깐 쉬어갔다. 어두운 건물 안에 작은 직사각형 창문에서만 새어나오는 빛이 마치 시원한 숲 속에서 쉬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뜨거운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난 이번 여름에 제대로 패배하고 말았다. 열이 제대로 올라서 얼굴 피부는 피지폭발과 뒤집어졌고 팔과 다리는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여태 나는 한여름의 바깥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이번 여름에 유독 온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여름에 물놀이도 하고 캠핑도 하며 제대로 즐기는 분들이 그저 부럽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숙소에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포항 대표 메뉴 물회를 포장해서 들어갔다.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먹는 물회 한입이 너무 행복했다.
오늘 하루를 다시 돌이켜보니 행운과 더위, 조금의 낯설었던 감정이 공존했던 것 같다.
안 입던 옷을 입고 계획 없이 마음이 끌리는 데로 이동하는 일정이 처음에는 불편하고 낯설기도 했지만,
일상의 무료함을 신선함으로 채우려고 애쓰기 위해서
그 낯선 감정도 직면하게 되니,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주유소에서 결제 후 캐시백당첨을 시작으로 주차 자리를 빨리 발견하고,식당에서 기다림 없이 들어가고 카페에서 명당 자리가 나고, 여러 상황들을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싶었던 바램들이 더해져서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눕고 나서 홍진경의 어록이 생각났다.
"행복이란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오늘 하루 뭐 하나 걸리는 게 하나 없이 알차게 무사히 잘 보냈으니 너무 행복한 하루였다.
내일 포항 여행은 어떻게 보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