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벌리려고 하는 자와 입을 다물려고 하는 자의 싸움이 계속 된다.
‘아는 맛이 더 맛있고, 아는 고통이 더 아프다.’ 라는 말은 요즘 내가 절실히 깨달은 부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병원 진료는 필수로 갈 수 밖에 없다. 내가 가장 흔하게 가는 병원은 이비인후과, 내과이고, 어딘가 불편한 증상이 있으면 건강 염려증이 있어서 참지 않고 바로 병원에 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무서워서 계속 통증이나 불편함을 회피하다가 거의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은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쇳소리와 혹은 물과 쇠가 만나서 잔인하게 깎여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가끔은 진동 소리가 거칠게 나면서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혀와 이빨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다.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거나, 바들바들 떨면서 인형을 꼭 안고 있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이 차가운 공간에서는 입을 벌리려고 하는 자와 입을 다물려고 하는 자의 싸움이 계속 된다.
나 또한 이곳에서 어렸을 때부터 회피 하다가, 10년 전 무려 1년 여 간의 장기간 진료를 받게 되었다. 신경치료부터 치아 떼우기 3개, 사랑니 발치 4개, 임플란트, 스켈링 2회, 매번 울부짖음이 함께 하였다. 그때 진료 받았던 기억이 너무나 강렬했고, 회피 하면 그 대가는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나는 스켈링도 너무 아파서, 치과를 안 가기 위해 모든 구강 세정기와 치석 제거, 치아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 노력은 아무리 해도, 체질상 이빨과 잇몸이 약한 상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나는 임플란트 검진 차 방문했던 병원에서, 다른 치아를 발치해야 한다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을 듣게 되었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라서 전혀 통증이나 불편함이 없었고, 내 저작 활동에 가장 큰 활동을 해주는 위치로 수많은 음식들을 강렬하게 해치운 소중한 부위였다. 심지어 치아 아래 잇몸 염증도 많이 진행 되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고 왜 내 치아와 잇몸은 왜 이리 연약한 것인지 한탄스러웠다. 치아 발치 전 준비를 하기 위해 스케줄 조정을 하면서 마음의 준비도 함께 했다.
통증이나 불편한 것을 회피해왔기 때문에 나는 스켈링 할 때도 남들보다 더 아파서 울면서 치료 받을 때가 많았다. 치과가 극도로 무서웠고, '아는 고통이 더 무섭다'는 말처럼, 이미 경험한 고통은 나에게 더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래서 치아 발치 전 스켈링부터 벌써 두려웠다. 마취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입을 열고, 어떤 도구가 내 치아들을 괴롭힐지 몰라서 벌벌 떨면서 견디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원래 스케줄을 항상 봐주던 상담 선생님이었는데, 이번에는 치위생사 선생님으로 계셨다. 상담 선생님인데 치위생사를 어떻게 하는 거지? 의문을 품고 잔뜩 긴장한 채 스켈링을 하기 위해 내 치아를 맡겼다. 내 치아 하나하나 섬세하게 봐주시고, 속도를 늦춰주시면서 내 고통을 관리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기구로 치아를 정리하는지 수시로 알려주면서 놀라지 않게 해주셔서 나의 긴장도가 조금은 낮아졌다. 너무 아프기만 했던 스케일링이 조금은 견딜 만 했다.
영겁의 시간이 걸린 것만 같던 스케일링을 무사히 마치고, 치위생사 선생님이 치아 관리 설명을 해주셨다.
알고 보니 치위생사 선생님은 10년 동안 일을 하다가 상담 실장이 되었고, 이번에 그만두려다가 다시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치위생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에 나는 반해버렸고, J 선생님 덕분에 살았다고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했다.
10년 넘게 본 의사 선생님은 볼 때 마다 느끼지만 말수가 없고 시니컬하지만 꼼꼼하게 진료를 봐주신다.
우리 가족 포함 친척들까지 모두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을 정도로 믿고 보는 선생님이었다.
치아 발치 날이 다가왔다. 오늘도 치아 발치 전 커다란 주사기가 입안으로 들어와서 마취를 해주신다.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인사는 일절 없이 커다랗고 굵은 기다란 주사 바늘이 내 잇몸과 치아 사이를 관통하고, 살짝 찌릿한 통증을 참고 나면 마취한 주변이 얼얼해 지면서 감각이 없어진다. 그리고 발치할 치아 주변을 정리하고, 발치하기 위해서 시동을 건다. 오른쪽 아래에 제일 안쪽에 어금니이기 때문에, 나는 두배로 입을 크게 벌려야 했고 내진 의자는 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내가 느끼기에는 아주 기다란 기구로 지렛대 역할을 하면서 내 치아를 들썩거리면서 뽑아낸다. 내 입 안으로 들어오는 의사 선생님의 건조한 손과 치위생사 선생님의 침을 빼주는 석션 소리까지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지옥 같은 순간을, J 선생님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프지는 않는지 신경 써주셔서 조금은 견딜 만 했다.
내진대에 덩그러니 앉아서 나 혼자만의 고통과 긴장의 순간들을 견디고 있었는데, 사소한 말 한마디지만 나를 신경써주는 동지가 생긴 느낌이라서 따뜻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임플란트를 위한 길었던 과정들을 지나서, 임플란트 예약일이 다가왔다.
예약일 일주일 전부터 나는 너무 긴장이 되서, 잠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계속 생각을 했다.
나의 긴장도를 설명할 방법이 있다면, 백과사전 급은 될 정도의 분량으로 구체적이고 장황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약일을 잡은 날 부터,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자체 금주를 하고, 내 일정들을 최대한 임플란트를 위해서 맞췄다. 누가 보면 유난을 떤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의 긴장도와 맞먹는 준비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임플란트 수술 당일 나는 치위생사 선생님 J를 담당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의사 선생님은 안부인사는 전혀 하지 않고, 커다란 주사기로 시니컬하게 마취를 하고 다른 환자를 보러 가셨다. 내진대에서 마취되어 가기를 기다리기 위해 티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지옥처럼 느껴졌다. 사후세계를 아직 생각한 적은 없지만, 지옥에 간다면 다음 심판을 받기 위해 혼자 기다리는 시간이 지금처럼 최고조의 긴장을 유지하며 고통스럽지 않을까 상상해보았다.
분주하게 선생님들이 기구들을 소독하고 오염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은박지 같은 걸로 포장을 했다. 임플란트를 어렸을 때 해본 경험이 있다. 그때 느꼈던 아는 고통이 더 무섭다고 지금 이 순간을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때도 이렇게 거창하게 수술 준비를 했던가, 나는 왜 지금 이 행위를 맨정신에 받아야 하는 걸까...
수면 마취라는 좋은 방안이 왜 치과에는 없는 걸까..
갑자기 의자를 뒤로 넘긴다고 하며, 내 얼굴에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J 선생님은 이제부터 내 손을 올리지 못해서 불편할 거라며, 얼굴에 가려운 곳이 있다면 미리 말해달라고 이야기 하셨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도 않았고,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굴에 초록색 소독 포가 올라가고, 초록색 소독포에 뚫려진 구멍에는 내 입만 보였고 의사 선생님의 건조한 인사와 함께 손이 들어온다. 치아 주변을 소독하고, 뾰족한 기구들로 치아 주변을 정리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의사 선생님이 갸우뚱 거리며 급하게 발치 기록을 달라고 소리친다. 나는 그때부터 떨리는 마음이 두 배로 커졌고, 가슴에 모아져 있던 손이 너무 떨려서, 손 깎지를 더 강하게 움켜져서 손이 저릴 정도였다. 그리고는 한참을 고민 끝에 드릴 같은 기구로 내 턱과 입을 강하게 잡고 뚫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가 내 오른쪽 아래 턱이 구멍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항상 지적 받던 내 혀는 입안에 계속 강하게 힘을 주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J 선생님이 기구로 혀를 위로 들어서 고정시켰다. 드릴로 박았다가 물로 치아 주변을 정리를 했다가, 뾰족한 기구로 주변을 정리를 했다가, 실로 수술 한 부위를 꿰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마칠 때가 다 되었구나 안심이 되었다. 임플란트를 하는 그 긴 시간동안 J 선생님은 수시로 나를 토닥여주고, 얼마나 진행이 되었는지 물이 들어오는지 어떤 행위를 하는지 설명해주셔서 안심이 되었다. 나는 눈을 감고는 있지만 귀는 더 활짝 열려서 주변 소리를 더 신경쓰게 되었다. 내 옆에서 기구를 들었는지, 티비 화면을 껐는지, 석션을 입에 넣었는지 , 의사 선생님이 다급하게 기구를 전달해달라는 목소리까지 모든 게 선명하게 더 잘 들렸다.
드디어 내 얼굴에 덮여져 있던 초록색 소독포를 정리해주셨고, 의자가 올라갔다. 힘겹게 눈을 뜨니 마취가 안 풀린 입이라서 헹구면서, 세면대 사방에 물을 다 튀겼다.
그리고 내가 잘 해냈다는 안도감과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면서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상담 실장님과 J 선생님이 나의 긴장된 표정을 느꼈기에, 수술이 끝나고도 내 상태를 계속 확인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알고 보니 내 발치 기록을 찾았던 이유는 생각보다, 잇몸 뼈가 자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1mm 정도 안쪽에 임플란트를 심었고, 그 과정에서 살짝 잇몸 뼈가 부수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원래 의사는 감정에 동요 없이 말을 하기는 해야 하지만, 나는 담담하게 말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뼈가 자라는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지켜보자는 말씀을 하시고 진료를 마쳤다.
집에 돌아와서 마취가 풀려갈 때 쯤, 수술을 끝나고 천국처럼 느껴진 안도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언제나 유비무환의 자세로 항상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판단을 빠르게 해야 하고, 더 나아가 그 선택에 있어서 책임을 지고 내 인생의 방향이 좌지우지 하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너무 일어나지도 않을 상황에 미리 걱정하면서, 머리를 싸매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동안 나의 마음가짐과 준비 했던 과정들이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나의 건강 염려증으로 내 자신을 너무 괴롭게 하지는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다.
치아 발치를 하고, 발치 하지 않은 반대쪽으로 음식을 씹어야 한다는 말에 내심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반대쪽으로 야무지게 음식을 잘 먹고 있다. 역시 사람은 어떤 환경이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서 잘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치아 관리를 잘해서 맛있는 걸 더 많이 먹자는 교훈도 같이 얻었다.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하루들이 이제는 너무 지루하기 보다는 소중하게 느껴진다.
무탈한 하루가 쌓이고, 지옥 같이 힘든 일을 건너온 지금 이 순간이 곧 천국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앞으로도 행복한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마음껏 만끽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