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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스 Sep 17. 2023

내키는 대로 써 보기 - 1

생업 작가의 돈 안 받고 글 쓰기


 돈 버는 작가로 대충 10년 넘게 살았다. 글을 쓰는 것보다는 글을 쓰기 위해 상황을 만들고 조건을 세팅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바쳐왔다. 일만 생각하고 살았던 날이 많아서 뭘 쓰고 싶지가 않았다. 돈 받으려면 써야 하는데, 굳이 아무도 돈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쓰고 싶어졌다. 2023년에는 나의 하루하루를 잊지 않으려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기분이나 상황 등을 주로 기록하는데 밀려 쓰기 일쑤라 그냥 이제는 빠지지 않고 기록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10년 넘는 동안 2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쉬어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2개월째 마음은 반만 놓고 쉬고 있다. 이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벌써? 하는 마음도 있다.

 작년에 1번을 달게 되고 두 개의 프로그램을 론칭했고, 한 개의 프로그램은 촬영 직전에 엎어졌다. 다시 1번을 달고자 한다면 새로운 기획안을 내거나, 기획안을 가진 피디를 만났어야 하겠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 피곤했다. 번아웃이라기엔 거창하고 그냥 좀 피곤했다. 단체 카카오톡방 알림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매일 30분을 넘기는 통화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


 근 몇 년 간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한 상태가 꽤나 오래 이어져왔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분위기를 읽고 하는 모든 일이 하고 싶지 않았다. 체력이 부족한 상태라서 그런가 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피로감을 떨쳐내기 위해 시작한 운동 덕분에 체력이 아주 조금 늘고 근육도 조금 늘었으나, 체중에는 변화가 없다. 작년에 8kg 정도 갑자기 찐 이후로 각종 체중감량을 위한 짓들을 하고 있으나 소용이 없다.


 운동 이야기가 나와서 나의 운동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꽤 여러 가지 운동을 해왔다. 요가, 필라테스, 웨이트 트레이닝, 취미발레, 폴댄스 등... 그런데 다 오래 하지는 않고, 숙련도가 높아질 때쯤 하면 질려서 다른 운동을 찾았다. 그나마 폴댄스는 2019년 말에 시작해서 2년 정도 하고, 2년 쉬고 다시 시작한 지 한 반년 됐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나 더 할지는 모르겠다. 기분파라서 그냥 뭐가 맘에 안 들면 관둬버리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드디어 웨이트 트레이닝 PT를 30회 등록했다. 그런데 운동에 좀 취미를 붙이고자 하면 경미한 추돌사고를 당한다든가, 빗길에 어이없이 낙상한다든가 하는 일이 생겨 '좀 해볼까' 하는 마음이 자꾸만 작아진다. 탄력을 받았을 때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쉬어야 하는지. 여하튼 웨이트 트레이닝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동안 외면해 왔는데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인지 내가 변한 것인지 그럭저럭 할만하다. 비싸지만 않으면 더 해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1:1로 수업하는 운동을 꽤나 많이 해왔다. 그룹 수업도 해보았지만 그룹 수업에서는 '잘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기분을 망치기 일쑤다. 배우는 기쁨과 기분을 망치는 것이 공존한다면 나는 기분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이라 배우는 기쁨을 쉬이 포기하고는 한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만 이전의 나는 아마 프리랜서로 살면서 정해진 시간을 맞추기보다는 내 시간에 맞춰서 할 수 있는 운동 방식을 택했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원천 봉쇄한 1:1 수업을 본능적으로 해왔던 게 아닐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이면 주의를 쉽게 빼앗기기 때문에 그 누구도 없는 편이 낫기도 하다.


 나는 꽤나 산만하다. 병력이 있어서인지 원래 타고나기를 그런 것인지, 아니면 ADHD인지 알 수 없지만(담당 선생님은 아니라고 확신) 지금도 그냥 쓰고 싶다고 해놓고 이만큼 주절주절 써내려 왔다. 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이렇게 주절주절 얘기하다가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까먹고는 한다. 뭐 이런 식이다. 주의산만과 의지박약이 내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가 아닐까. 

 의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하자면 나의 의지와 의욕은 매우 얄팍하다. '아 오늘은 이게 하고 싶네' 하면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일을 벌이고는 한다. 그러나 이 의지가 이틀 이상 가는 일이 잘 없기 때문에 지금 이 글을 쓰는 중간에도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다. 아 내일이면 안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1주일 이따가 잊어버릴 것 같은데...

 유튜브 브이로그도 그런 식이었다. 아이패드를 사고 나서 뭐 좀 해볼까 하고 대뜸 일을 벌여놓고는 3개 만들고 안 했다. 한심하네. 오늘은 또 기분이니까 트위터 유저네임을 바꾸고 유튜브 이름도 바꾸고 뭐 이래저래 바꿔봤다. 우습게도 내 이름을 걸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아지고, 다른 사람이 내 이름을 몰랐으면 하고(이름은 흔한데 성이 흔하진 않아서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는 게 싫다. 아마 여러분 주변에 나와 같은 본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80%의 확률로 나일 것이다. 맞아요 저예요.) 브런치 이름도 바꿔보았다. 피스라는 닉네임을 설명하자면 요즘은 '평화'라는 단어에 꽂혀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평화가 우선인 것 같은데...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 닉네임이라도 가져볼까 한다.


 이름 하니 생각난 것인데, 나는 SNS 공개 계정(실명이 아이디)과 비공개 계정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공개 계정에서 할 수 있는 말과 비공개 계정에서 할 수 있는 말이 따로 있다. 너무도 사적인 감정 이야기나 기분 관리에 대한 이야기, 내 최근의 셀카, 매일의 폴댄스 기록 영상 등은 비공개 계정에만 올리고 있지만 뭐... 가끔은 공개 계정에도 그러한 것들을 올리고 싶다. 하지만 공개 범위를 정해야 하고 누구는 이거 보면 안 되는데, 누구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하면서 고민하느니 그냥 안 올리는 방법을 택하고는 한다. 


 나는 정말로 너무 예민하다. 나 스스로 내가 예민한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리디북스 구매목록에는 기분 관리와 예민함을 다루는 책이 열댓 권은 된다. 어제도 책을 샀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오히려 불안과 감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읽다가 잠들었다. 하는 일이 없으니 하루종일 하는 것이라고는 읽는 것뿐이다. 보는 걸 만드는 사람이면서 보는 것보단 읽는 것이 훨씬 좋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어제는 내키는 대로 또 사서 관련 교육이 받고 싶어서 학점은행에 가입을 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네...


 두 달째 돈을 벌지 않고 있는데 자꾸만 사고를 치려고 한다. 아마 경조증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가도 방법은 없어서 그냥 약 잘 먹고(정말 잘 챙겨 먹음) 스트레스 관리 잘하시라고 하는데 모르겠다. 이럴 때만큼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있어본다. 

 주변에서 가끔 내 병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농담처럼 '나 조울증인 것 같아 감정기복이...' 어쩌고 한다. 본인이 병에 걸린 것 같으면 병원에 가길 바란다. 어디만 조금 아프면 병원에 가는 날이 잦아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오른쪽 팔에는 병원에서 해준 드레싱 밴드가 붙어있다. 


 꽤나 길게 글을 쓸 수가 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즐거워진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민망하지만 뭐 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괜찮다. 이것도 다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일을 시작하게 되면 거기에 얽매여서 또 그것만 생각하고 아무것도 못할 게 뻔하니까. 작가인데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고 우습다니 그것도 꽤나 재미있다. 당분간 내키는 대로 써보려고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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