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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AO Jul 12. 2024

삼각산 봉국사에서 (2)

배산례 씨에게 드리는 글

물론 주지스님과 나에게 서로에 대한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히 마주친 스님이 말을 걸어주시길래 어릴 때 외할머니를 따라 이 절에 자주 왔었는데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은 마음에 찾아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님과  신기하게 연결되어 있던 인연의 줄이 더 있었다.

스님께서는 <700년 고찰 봉국사의 불교미술>이라는 책의 첫 장에 이런 글을 써주셨다.



"心不負人 面無色 (심불부인 면무참색)"


부처님이 나에게 주시는 가르침이라고 하시며 주신 말씀은 내 마음의 어떤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면 즉 내가 누군가를 배신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주지 않으면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니  항상 좋은 생각을 하고 그 사람을 위해 나의 마음을 베풀며 살라는 것이었다.

마음속 사람을 저버리지 말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반복하실 때  얼마 전 잠깐의 서운함으로 마움을 잊고 누군가에게 나쁜 생각을 먹었다가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던 일이  생각났다.

사람은 그저 각자의 생각과 처한 상황이 다를 뿐이고 내가 그들의 생각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그 사람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고 어쩌면 내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도 좋을만큼 이제부터는 항상 좋은 마음으로 감사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외할머니 분명 산신각에 가셔서 나를 위한 기도를 하셨을 거라고 하셨다.


봉국사 산신각


지금이야 계단으로 편하게 올라갈 수 있지만 그때는 돌을 주섬주섬 놓아둔 험한 길이었는데 절에서 가장 높은 그곳에 올라 엄마로 하여금 나를 낳게 하고 명(命)이 길게 살라고 기도하시고 나를 절에 데리고 다니시며 많은 시간을 키우셔서 오늘날의 내가 있게 하신 것인데 어릴 때 철이 없어 그 고마움을 몰랐다면 이제는 할머니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내가 기도를 해드릴 차례라고 하셨다.


또 내가 흘리는 눈물들은 엄청난 내 마음의 병고를 없애주는 약이고 내가 눈물을 흘리 만큼 내 마음의 병고가 없어질 테니 참지 말고 마음껏 울라고 하셨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여 힘들다고 말해봤자 배부른 소리 한다는 말로 돌아올 뿐  굴곡졌던 삶으로 인해 나 혼자 그동안 많이 괴로웠는데 마치 보다 못한 외할머니께서 부르시기라도 한 듯한 봉국사에서 아픈 곳을 치료받은 듯한 느낌과 함께 너무나 신기하고도 값진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선하고 고마운 인연들에게 보답하고 베풀며 남은 나의 인생을 좀 더 값지게 살기 위해 부터는 이제까지의 마음가짐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의 틀을 만들기로 결심해 본다.

비록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꺾이는 연약한 마음일지라도!




"사랑하는 나의 배산례 할머니.

할머니가 늘 '너희 3남매 중에 네가 제일 잘 살 거다'라고 하셨죠? 저 정말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시고 잘 키워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앞으로 더 씩씩하게 사는 모습과 많은 기도로

할머니의 은혜에 보답할게요.

그리고 엄마 너무 미워하지 않을게요.

엄마도 엄마만의 사정이 있었을테고

할머니가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니까요.

부디 좋은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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