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통보도 문자로 하는 시대

by 솜사탕


2026년부터 모든 학교 교실에서 스마트폰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학습 집중력 회복과 디지털 중독 예방을 이유로 내세웠다.

한동안은 다소 과격해 보이는 정책이 아니냐는 논란이 따르겠지만,

이 결정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곱씹게 만든다.


돌아보면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사람과의 소통은 얼굴을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감정은 표정과 눈빛을 통해 읽었고,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는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행위였다.


그러다 우리 집과 너희 집을 잇는 전화기가 등장하면서 목소리만으로 충분히 안부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 꼬불꼬불 선이 달린 전화기를 들고 친구네 집에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OO이 친구 솜사탕인데요. OO이 있으면 좀 바꿔주세요"

엄마가 가르쳐주신 대로 '인사 - 내 소개 - 용건'의 순서를 마치 공식처럼!


반드시 얼굴을 마주하던 시대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안부를 나누던 시대로

이제는 그 마저도 바뀌어 문자가 우선인 시대가 되었다.


삶의 모든 것에서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요구에 맞춰 과학 기술은 날로 발전했고

그 덕분에 손가락으로 툭툭 몇 마디 써서 보내면 의사 전달이 해결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과연 편하기만 한 것이 전부일까?


'폰 포비아(Phone Phobia)'라는 말까지 생겼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전화조차 공포로 느껴지는 현상이라는 뜻이다.


사실 나 역시도 전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간단한 내용은 문자로 보내는 것이 훨씬 간편했고,

복잡한 이야기도 글로 정리하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여겼다.

글에는 구조와 논리가 담기고, 순간적인 말실수나 감정의 흔들림을 조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이 더 설득력 있다고 믿은 건, 때로는 핑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냥 장황하게 말하는 일이 귀찮았고, 불편한 얘기를 전달할 때는 마주하기를 피했던 게 아닐는지.


그러나 그렇게 살다 보니 점점 목소리를 잊게 된다.

누군가의 따뜻한 목소리, 어조의 미묘한 변화, 말과 말 사이에 흐르는 침묵까지도 사라졌다.

소통을 단순화하면서 그와 동시에 빈곤화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지각, 결근, 연차 사용에 관한 보고도 카톡으로 한다.

심지어 이제는 보고를 받는 상사들도 전화보다 카톡을 더 선호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이별 통보, 퇴사 통보, 해고 통지를 카톡으로 한다는 얘기는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통보를 받는 사람은 눈빛이나 목소리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확인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화면에 뜬 몇 줄의 문장을 바라보며 관계의 종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모두가 입을 모아 '이별 통보는 웬만하면 톡으로 하세요'라고 강력 권고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교제 살인에 대한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이 대면 이별 통보를 완전히 불신한다는 뜻이다.

너무 안타깝다. 우리는 이제 안전조차 비대면으로 확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마트폰 교실 전면 금지라는 정책은 단순히 학생들의 집중력을 되찾기 위한 시도만이 아닐지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소통의 본질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다시 묻는 하나의 사회적 실험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편리함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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