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화로운 삶

by 솜사탕


자기 확언, 감사 일기 쓰기, 명상 등

내면을 다스리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것들은 너무나 많지만

사실 '그게 뭐? 진짜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게 맞아?' 하면서 내 것이 아닌 것 마냥 굴어왔다.


눈 뜨면 출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면 잠들기 바쁜, 매일 똑같은 일상을 쫓기듯 살듯 하며

아마도 내 안에는 조금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리라.


사실 예상하고 선택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 겪는 과정 중에 생각해 보니 올해의 퇴사는 내 인생에 몇 번 없을 큰 사건 중 하나일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게 주어진 삶을 야무지게 맛보며 살고 있다면 조금 과한 표현일까.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았다.

그런데 타고난 기질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조금 외로웠다.

좋게 표현하면 얌전하고 침착한 아이였지만, 아이답지 못하게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렇게 자란 아이는 예쁘장했지만 조금 차가워 보이고 새침했으며,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또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내가 함께 어울렸으면 했던 친구들과 막 놀 줄도 몰랐다.

통금 시간과 일탈을 모르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혼자 몸 사리듯 하고 있었는데 결국 내게 돌아온 건 따돌림.

(다행히도 그 시절 나를 구해 준 소중한 몇 명의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내 곁에 남아있다)


그렇게 외롭고 우울했던 학창 시절,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해 방황했던 20대를 지나

아무런 준비 없이 얼떨결에 30대를 맞이했는데


그래도 헛되게 살지는 않았는지 번듯한 사회인으로서 자리를 잡았고,

또 나를 포장하는 능력은 나날이 늘어서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했다.

높은 연봉, 비교적 빠르게 얻은 직책, 때마다 나가는 해외 출장, 틈틈이 즐기는 여행,

게다가 버는 돈만큼 예쁘고 비싼 것들로 나를 가꾸기까지 했으니

SNS에 과시하기에는 전혀 문제없는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30년이 넘도록 쌓아 두기만 했던 내 안의 불안, 우울은 괴물처럼 커져갔다.

지금 내가 과시하는 삶을 유지하려면 나는 더 치열해야 했고, 부리는 욕심이 과한 줄도 모르고 계속 덤볐는데

거기서 오는 상처, 분노, 자기 비난이 나를 죄다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특히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내가 바닥을 치기에 충분했는데

싸구려 추파, 징그러운 희롱, 끔찍한 가스라이팅 등

거칠고 무서운 폭력들은 나를 갉아먹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나'만 탓했다.


늘 화가 나있었고, 동료와의 다툼은 반복되었다.

예민한 수준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그럴수록 방어 기제만 늘었다.

내 안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고, 거울 속 내 표정은 처참했다.

나름 승승장구했던 일이 더 이상 잘 될 리 없고, 서서히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보여주기 식 삶을 놓지 못했다.

내가 바닥까지 무너지는 건 중요하지 않고, 일단 잘 사는 것처럼 보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그때는 그런 나를 놓기가 참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은근히 독한 구석이 있어서 정신력으로는 얼마든지 더 버텼을 법 하지만, 더 이상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내가 그나마 가진 이 몸 하나를 희생시키는 건 진짜 못 할 짓이라 생각했다.


퇴사.


처음에는 그저 벗어나는 게 목적이었다.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었기에 건강을 되찾는 일이 우선이라 내내 병원만 다녔다.

그리고 또다시 어디론가 출근하고 돈을 벌면서 그저 그런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나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계속해서 나를 등 떠밀다시피 했다.

'너 이렇게 쉬어도 돼? 뭘 했다고 쉬어? 다 그 정도는 힘들어, 얼른 일해!' 하면서.


그러다 문득, '나는 누가 사랑해주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맹목적으로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부모 말고

살다가 가끔 한 번씩, 어떤 때는 오래 또 어떤 때는 짧게 들렀다 가는 연인의 사랑 말고

나를 필요로 해서, 또는 내가 능력을 발휘하는 한! 과 같은 조건부 인정이나 관심 말고 -


나는 나 자신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미워하고, 아주 가끔 조건 하에 '괜찮네'하며 인심 쓰듯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불쌍하고 안타까운 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이런 감정조차 처음이라서.


날 어떻게 돌봐야 할지도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고 싫어하는 게 뭔지도 정의하기 어려웠다.

유튜브만 열면 보이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이런 건 나와 먼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책도 보고, 필요하면 영상도 보면서 차근차근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전에 이미 상처받아 너덜너덜해진 이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게 우선이라 했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는데, 뭐 그런 건가? 하면서 자기 회복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우선 최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나부터 하나하나 꺼내 마주했다.

거의 30년 치의 나를 직접 마주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하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상처로 가득한 어린 시절의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잘못된 선택에 비난을 퍼부었던 나 자신에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이해를 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중하게 대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등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돌봐주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


되게 아팠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런데 정말 착한 그 시절들의 나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미안하다는 나의 한 마디에

조금도 질척이지 않고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몸속에, 마음속에 꾹꾹 눌어붙어서 쉬이 떨어져 나갈 것 같지 않았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훌훌 날아가버렸다.


과거가 훌훌 떠나간 그 자리에 공간이 많이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 그 공간은 더 넉넉해질 것이다.

채울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별 게 있어야만 좋은 삶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걸 알겠다.

아파보니 그냥 건강하게 눈 뜨는 아침조차 감사하다.

여기저기 아플 때마다 '난 왜 이렇게 아픈 거야!' 했는데, 이만큼만 아파서 다행이다 싶다.

내 두 발로 걷고 산책하는 이 순간도 너무 좋고, 내 두 손으로 소꿉놀이하듯 해 먹는 밥도 맛있다.

읽을 책이 넘쳐나서 마음이 급한데 그것도 좋고,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는 것도 좋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를 채찍질하거나 밀어붙이지 않는다. 미워하지 않는다.

에게는 또 달려 나갈 순간이 올 것이므로, 또 치열하고도 재미있게 나를 마음껏 활용할 때가 올 것이므로.


매일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불안하고 조급하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날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다뤄야 하는지, 나는 이제 그 방법을 안다.

그래서 불안하지가 않다.


감히 지옥 같은 30대였다고 생각한다.

매일 눈 뜨면 야금야금 먹는 나이 앞에 조바심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누군가 내게 '30대 다시 한번 더 할래?' 묻는다면, 과감히 사양하겠다.

(물론 남은 30대는 기꺼이 환영하는 마음으로 못다 한 행복을 다 누릴 것이고!)


그리고 좋아도 싫어도 그저 '헐, 대박'만 외치는 삶 속에서

나는 편안하고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 때로는 우울하고 슬프고 좌절하면서

다양한 형용사들을 내뱉으며 재미있게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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