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경험의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뭐든 겪어봐야만 아는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조언으로, 책으로, 영상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은 많지만,
어떤 시절을 지내고 겪으며 체득한 후 얻을 수 있는 감정과 깨달음의 깊이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나 봐야 안다, 살아봐야 안다" 어른들이 괜히 하시는 말씀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경험으로 인해 겁이 많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아는 게 없기에 무모하고 도전적일 수 있었던 시기를 벗어나
아는 게 많아져서 두렵고, 그래서 더 피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으니까요.
너무 힘들어서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우연히 만난 지인이 흘리듯 한 말인데 오랜 시간 제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주변의 부정적인 언행과 너무 잦은 거짓말에 날로 지쳐가고 있었는데요.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저는 이제 거짓말? 하면 진절머리가 납니다.
모든 거짓말을 다 알아차리는 제가 싫을 정도였어요)
일은 벅차고, 사람에게는 신뢰를 완전히 잃은 상태라 도저히 견딜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좋은 게 좋으니 그냥 모른 척, 두루뭉술 넘어가자 하고 살았느냐?
저도 독해질만큼 독해졌었고, 이전 어느 글에 쓴 것처럼 제 안의 분노가 쌓여가고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매일이 전쟁 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상처받는 일이 많아지니
그 상대를 원망하는 걸 넘어서 '내가 그렇게 별로인 사람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곤 했는데,
그 무렵 저 말을 들었으니 특별한 문장이 아님에도 제 마음이 많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시절 내내 생각하던 바가 있었는데,
지난 커리어 역사 10년이 챕터 1이었다면, 앞으로의 새로운 10년은 챕터 2로 목표 삼아
주변 환경을 한번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물론 제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친 만큼이나 저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도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여하튼 누군가의 한마디가 제가 용기를 내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워라밸이 뭐예요?
그 정도로 일과 삶의 균형이 많이 깨져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회사 설립 단계에 초기 멤버로 합류했기 때문에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며 귀가했고
아침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어스름한 기운을 느끼며 출근하기 일쑤였습니다.
누군가는 워라밸을 누리며 성공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일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일이어야 잘된다고요. 그래서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요.
일부는 동의하고, 또 행복하기까지 하다는 말에 부러운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지난하게 긴 시절을 일에 몸 바쳐 살아온 저로서는 조금 주저하게 됩니다.
그 시간 동안 서서히 망가진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무조건 많이, 오래 일한다고 해서 유능함을 인정받는 시대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유능함과 일의 성과는 시간의 양으로 판단할 일이 절대 아니니까요.
게다가 일이 좀 한가해지는 때에도 그냥 익숙하게 회사를 지켰는데요.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하물며 직원들은 웬만하면 야근을 절대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다 퇴근시키고 나서도 그냥 당연한 듯 사무실에 앉아만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때 제 개인의 삶을 살아내고 즐길 방법을 전혀 몰랐던 거더라고요.
그래도 그때는 힘든 걸 모르고 했으니 닥치면 다 하게 된다는 건 맞는 말 같지만,
다시는 하라면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출퇴근만 하는 기계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요즘같이 타인의 삶을 평가하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저는 평가받기에 나쁜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앳되고 풋풋하지만 어딘가 조금 어설픈 느낌의 20대를 지나
내가 돋보이는 법을 잘 알게 되는,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 덕에 외양적으로도 가장 성숙한 30대였으니까요.
일의 성과도 좋고 돈까지 곧잘 벌고 있었으니 가장 예쁘고 화려했던 순간이었던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고립되기를 자처했습니다.
회사를 벗어난 시간과 주어진 주말 또는 휴일에는 그저 집에서만 살았습니다.
그 당시 우울감이 극에 달했고,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모든 일에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머릿속은 늘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고,
그 생각하는 행위를 피하고자 잠만 자며 5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고립되어 있던 휴일이 지나면 적어도 겉은 번지르르한 모습으로 출근을 했으니 지독했죠.
(어떤 이는 그러더군요.
그렇게 나갈 에너지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건 우울감도 아니다,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지 말라고요.
하지만 아침에 갈 곳조차 없으면 영영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아 일을 그만두지 못했던 것도 있습니다)
또 저는 주로 남성 비율이 높은 집단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의 연애사에 관심 많은 사람들은 저더러 도대체 뭐 하고 사느냐고 절 탓(?) 하기도 했습니다 ㅎㅎㅎ
하지만 그때는 심적 여유가 없었고, 혹여나 누구를 만났어도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 마음이 지옥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엄한 누군가를 제 감정으로 망쳐버렸을지도 모르고요.
아무튼 저는 그 빛나던 시절을 누워서만 보냈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기분도 들지만 그 덕분에 지금은 세상과 소통하며 살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필요한가 봐요.
내 인생을 구제하는 건 타인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지만,
그때 적어도 나를 바깥으로 이끌어 줄, 세상 밖으로 꺼내 줄 좋은 사람이 없었다는 건 조금 아쉽거든요.
하지만 이 또한 '경험 후에 오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회 차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모든 순간은 '처음'이죠.
그래서 조금 더 살아 본 누군가의 따뜻한 조언이 얼마나 귀한지 이제 알겠습니다.
최근 TV,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해 안타까운 친구들을 종종 보곤 했는데,
'옆에 좋은 어른이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다'는 얘기가 마음에 박히더라고요.
지금 터널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본인을 더 정성스럽게 돌봐주세요'
'타인의 언행으로 인해 자존을 잃지 마세요'
'혹시 지옥 같은 환경에 계신다면 벗어날 용기를 내세요, 그래도 괜찮아요'
뭐 이런 말들이요.
어쨌든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만큼 거창하고 대단한 사람은 아니어도, 나쁜 어른만은 되지 말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