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독합니다
이따금씩 불안이 올라올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옳은 선택을 한 건지 의구심이 든다거나
물 흐르듯 하는 세월 앞에서 숫자에 불과하다던 나이가 유독 존재감을 드러낸다거나
현재 나의 상태를 점검하며 '더 나아져야 하는데!' 하는 조급한 마음들이 그런 것이다.
이렇게 불안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겪게 되는 증상이 하나 있다.
사실과 감정 사이에서 그 둘을 제대로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해 버리는 것.
내가 내 자리를 정리하고 나온 것,
그래서 지금 안정된 소속 없이 좋게 말해 프리랜서, 즉 자유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
이것은 내게 일어난 사실이다.
이 때문에 종종 바보같이 느껴지는 나 자신에게 분노가 이는 것.
이것은 내가 끌어들인 감정이다.
왜 나만 내 자리를 잃고 나의 귀한 커리어를 중단시켜야만 하는지 화가 날 때도 있다.
분명 죽을 것 같아서 한 선택인데 내가 결국 진 싸움을 한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감정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끌어들였으니 내가 내보내면 그만인 것이다.
내가 비워둔 그 자리는 간절하게 원했던 누군가에게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 자리를 비움으로서 나는 또 새로운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언젠가 생길 것이다.(라고 믿는다)
그때는 그 선택을 해야만 했고, 할만했고, 분명 옳았다.
굳이 과거로 돌아가 아픈 감정을 끄집어낼 필요도, 또 미화할 필요도 없다.
대략 한 달 전, 위의 글을 쓰다가 만 채로 저장해 뒀었다.
사실과 감정을 구분하려고 애쓰는 그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새로운 곳으로의 출근을 앞두고 있다.
오퍼를 받고 이런저런 속사정으로 인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칭찬하고, 대견해하고, 축하하는 일 같은 건 잊어버리고
자꾸 해서는 안 될 자기 검열의 늪에 빠지곤 했다.
그렇게 나를 우선시하고 가장 잘 돌봐주기로 다짐 또 다짐해 놓고선.
약 10년 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공식 면접이라는 것을 보지 않았다.
채용 공고를 보고,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고, 서류 면접을 보고, 대면 면접을 보는 그런 것들.
(물론 뒤에서 나의 평판 체크를 하고, 레퍼런스를 검토하고,
또 여러 번의 미팅을 통해 나를 평가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전부 면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때문에 누군가는 내게 참 편하게 산다고 한다.
커리어상 다음 단계로 올라갈 때쯤 되었다 싶을 때 적당한 오퍼를 받고,
잘 쉬다가 때가 되면 알아서 불러주니 운이 좋다고도 한다.
또 그동안 뒤에서는(이라고 하지만 눈치 빠른 내가 다 들리도록) 수많은 수군거림도 있었다.
(남사스러워 어디 가서 말도 못 했는데) 말 그대로 엉엉 울면서 일하고
좋게 말해 근성이지 독기로 버티며 여기까지 온 내 노력은 모른 체하면서
그저 내가 이룬 것들만 보며 운으로 포장해 폄하하는 이야기들을 견디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걸 하나같이 다 설명하고 다닐 에너지가 없었다.
또 그럴 때마다 "그럴 필요 없다, 널 알아보는 이가 여기 있다" 하고 응원해 주는 이들 덕분에 꾸역꾸역 왔다.
설렘과 기대, 불안과 두려움이 섞인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고자
최소 3년 치에 달하는, 그동안 일하면서 쓴 글들을 다 읽었는데
온갖 화, 분노, 짜증, 실망, 원망, 자책, 후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있는 나의 꿈에 대한 이야기들.
어쩌면 그게 날 기대하며 살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를 돌아보며 감히 단언할 수 있게 된 건, 나는 독한 근성 하나로 살고 있다는 것.
겁은 많지만 아픈 것도 지독하게 잘 참고, 엄살 피우면서도 해내고야 말았다.
나는 도망칠 곳이 없다.
그냥 직면한 모든 일을 해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할지 등
걱정부터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뭐가 되었든 이유를 찾지 말고, 그냥 또 하는 거다.
단, 최선을 다하되 마음이 망가질 만큼 애쓰지는 말 것
목표 또는 결과를 향해 치열하게 달려가되 과정 속에서도 충분히 즐길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한 가지... 나를 믿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