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

워런 버핏의 마지막 주주서한 읽어 보셨나요?

by 솜사탕


별 일,

특별한 별 일,

사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매일같이 '아주 좋은 특별한 별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살았습니다.

거기서 비롯된 마음이 욕심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고요.


그리고 지금 내가 충분히 가진 것들은 쳐다보지 않고

아직 가지지 못한 것들 또는 앞으로 영영 가지지 못할 수도 있는 것들을 갈망하고 살면서

그래서 정말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열심히 일한 나 자신에게 보상을 준다는 이유로

손쉽게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때로는 음주를 하고, 물질적인 잠깐의 풍요를 안겨다 주기도 했습니다.

한 시간 후면 곧 낡아 버릴 새 옷, 가방 같은 것들로요.

마치 그 옷과 가방들이 나 자신을 대변해 줄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살았거든요.

(그렇다고 쇼핑을 완벽하게 끊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게 끝이냐고요?

좀 쉬어줘야 해 하면서 종일 누워만 있어도 봤습니다.

그런데 누워서 휴대폰을 통해 남의 인생만 들여다보며 허비한 하루의 끝에는 남은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한 주간 열심히 달린 후 진정으로 나를 위한 휴식들,

이를테면 산책, 가벼운 운동, 건강한 음식, 독서 이런 것들은 멀리 하고 보낸 주말이 더 많았습니다.


뇌가 쉬지 못하게 계속 생각 회로를 돌리고

생각이 많아지니 삶에 대한 불안은 감출 수가 없고

불안이 이어지니 자꾸 더 가지고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에

사람이 되게 조급해지더라고요.


그 여유 없는 모습은 내가 봐도 참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좀 내려놓고 살아도 되겠다고.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이 지난 10일 '추수감사절 메시지'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습니다.

사실상 마지막 주주서한이자 편지였습니다.


그 긴 글 중 인상 깊은 문장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본인의 삶과 성공을 운과 기회로 여기는 태도가 어쩐지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1930년, 건강하고 똑똑하고 백인 남성이며 미국에서 태어났다. 와 행운의 여신님 감사합니다!"

그가 하신 말씀을 대략 번역한 문장입니다.


그리고 그는 여동생들과도 비교하며

그녀들은 같은 지능이었고 인격도 더 뛰어났지만

본인이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부와 기회는 출생 순간에 이미 결정되는 경우가 많고,

반면 불우한 배경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출발선에서부터 훨씬 불리하다며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나처럼 살아야 이렇게 돼! 가 아니라

사실 난 운이 좋았던 건 맞아! 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 겁니다.

그의 말대로 그가 가진 것들은 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운을 지켜내고, 겸손하게 살며, 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선택을 한 건 그의 능력이 분명합니다.




비교는 남이 가진 것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와 저는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각자의 부와 삶을 누리며 살지만

저의 작은 세상에서는 저도 나름의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온갖 어려운 일들을 다 겪어냈고,

또 그럴 때마다 버틸 힘이 생겨났고,

날 기꺼이 돕는 운도 따랐습니다.


어쩌면 운이 따른 인생은 버핏이나 저나 다름없네요!

운은 크기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정신승리 ㅎㅎㅎ ...)


사실 정말 감사한 것 투성이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득한 욕심이 올라오면 그걸 잊고 사는 것 같아요.


그동안 그놈의 '(특별한) 별 일 생겨라!' 하며 살았는데,

막상 별 일이 다 생겨, 이것들이 내 몸과 마음을 온통 휩쓸고 가면

사실 별일 없는 조용한 하루가 진짜 진짜 감사한 거더라고요.


아무튼 오랜만에 브런치에 생존 신고!


여러분 모두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의 귀한 가치를 느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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