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쥐고 있던 하나를 내려놨을 뿐인데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운 건 그저 일시적인 기분 탓일까?
사람을 잘 못(안) 믿고, 몇십 년을 함께 할 타인과의 생활에 대한 의구심으로
결혼에 대해 두려움과 불신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항상 쫓기는 마음이 들곤 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른여덟 생일을 기점으로
사람, 관계, 삶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게 되면서
나를 옥죄듯 하는 이 기분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완전한 답일지 아닐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이유 중 하나는 발견하게 되었다.
https://brunch.co.kr/@luvseoa/72
나는 결혼 못 한 여자, 그리고 일반적이지 않은 자식으로 보일까 봐 늘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나한테 결혼이라는 건
처음에는 갈망하는 것이었다가
또 한때는 여전한 환상 같은 것이었다가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갈망하지도, 환상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해결되지 않은 의무 같은 것이었는데
나 같이 책임감 넘치는 사람에게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은 숙제가 남아 있다 생각했으니
내내 시달리고 쫓기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스스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이걸 몰랐다니...
남은 숙제 때문에 항상 일상의 반만 누렸던 것 같다.
(언젠 결혼할지 모르니까) 돈을 좀 더 아껴야 된다는 생각
(언젠 결혼할지 모르니까) 날 위한 여행은 다음으로 미뤄야 된다는 생각
(언젠 결혼할지 모르니까)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
그리고 다시 운전대를 잡고, 차를 사고, 대출을 내서 작은 집을 매매하는 것도
전부 '언제 결혼할지 모르니까'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쓰고 보니 미친 거 같네 ㅠㅠ
그야말로 오지도 않은 내일을 위해서 많은 걸 미뤘다.
그러니 모든 일이 완전하게 즐겁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심지어 내일은 올 가능성이라도 있지, 당장 결혼이라는 건 확률 1% 미만임에도 불구하고.
더 정확히 얘기하면
꼭 그것 때문에 미뤘다기보다는
모든 것에 대해 막 적극적으로 내키지 않았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냥 쫓기는 기분에 즐거움을 못 느꼈다고나 할까.
나이를 먹는 게 두려웠던 것도 그 이유였다.
결혼 시장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점점 더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생각을 접고 나니 지금 내 나이가 다르게 다가온다.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낸 결과일 테니 반가워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고 싶다.
훌쩍 여행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