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은 <노르웨이의 숲>

왜 유명한 거야?

by 솜사탕


20년도 더 된 학창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현대인의 고독과 청춘의 방황을 그린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발표된 후

하루키를 세계적 유명 작가로 끌어올린 대표작.

국내에서는 1989년 문학사상사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으나

이후에는 민음사의 <노르웨이의 숲>과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로 병행 출간됨.




그리고 30대 후반이 된 지금 다시 한번 책장을 펼쳤다.

지루하지 않게 완독하긴 했는데 '이게 왜 유명해졌지? 독자들에게 뭘 남겼길래?' 새삼 궁금해졌다.

그냥 좀 야했다고 하면 '넌 문학을 몰라' 소릴 들으려나.

아무튼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감정선도 특이했고 썩 울림을 주는 맛은 못 느꼈다.


물론 책을 통해 반드시 훌륭한 교훈을 얻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이례적인 유명세를 탄 것과 유독 하루키를 찬양하는 분위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하는 마음.


사실 이 작품의 유명세는 내용 자체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먼저 출판 시장에서의 영향이 컸는데, 1987년 일본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그동안 어렵고 관념적인 작품들을 보다가 비교적 읽기 쉬운 문체와 대중성이 이례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 문학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라고 평가되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이 된 1960년대,

학생 운동과 사회 변화 속에서 세대가 겪는 허무와 공허 등이 청춘들의 정서를 건드린 것도 한몫했고

감정의 과잉은 적고, 건조하면서도 일상적인 문장, 그리고 재즈나 비틀스, 맥주, 파스타, 혼자 걷기 등

서구 소설 스타일이 매우 이질적이기도 했다.


특히 성 묘사가 굉장히 많은데 야한 의도라기보다는

죽음과 연결되거나 또는 현실과 연결되어 생명력을 갖는 등의 방식으로 표현되어

그 당시 꽤나 파격적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민주화 이후 사회적 이상은 붕괴되고, 개인주의의 등장과, 청춘의 방향을 상실한 상황이

소설의 정서와 거의 동일해서 한국의 학생들이자 청춘 세대가 강하게 공감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처음 번역된 제목은 <상실의 시대>로 원제인 Norwegian Wood와 사뭇 다른데

당시 시대와 이상, 그리고 관계의 상실이라는 감정을 겪는 세대의 정서를 정확히 찔렀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 또한 꽤나 충격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은 다르게 다가오는 건 아마 나이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낭만과 이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그저 옳은 방향, 명확한 답, 현실, 눈 뜨면 또 현실이라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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