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자의 생존기랄까요?

by 솜사탕


예민한, 민감한, 과민한, 자극에 약한, 과부하에 취약한, 쉽게 소진되는, 유별난...

이 모든 게 저를 수식하는 단어였습니다.


머릿속은 항상 생각으로 가득 차있고 쉴 새 없이 돌아갑니다.

타인의 언행으로 일희일비하고 때로는 상처받아 저 아래 바닥을 치곤 하죠.

완벽하게 일하느라 소진되기 일쑤, 놀고 쉬는 것은 할 줄 몰라 늘 쳇바퀴 도는 삶을 삽니다.

유일하게 마음이 좀 동하는 건 여행인데 이걸 마음먹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합니다.

삶의 의미를 모르겠고, 살아가는 데 어떠한 의무나 책임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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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살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제 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상담을 받고, 한동안 약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나쁜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겁이 많아서요.

소진된 채 무기력하게 누워 있으면서도 늘 살 궁리는 했던 것 같습니다.

나빴다가 좀 나아졌다가 하는 일이 반복되어도 또 나아지는 상승 곡선을 기대했습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생존형 운동을 하고, 책도 보고, 글도 쓰면서 하루하루를 달랬습니다.


그러다 알게 되었죠.

'아 나는 항상 살고 싶었구나'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님이 하신 말씀인데요.

지인 중 프랑스인 의사 선생님이 계신데 의사다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대요.

국회의원도, 유명 영화배우도, 노숙인도요.

그런데 그렇게 다른 인생을 살았는데도 죽음 앞에서는 다 똑같은 후회를 하더래요.

내가 왜 그걸 안 했을까? 내가 왜 거기를 안 가봤을까?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 얘기를 안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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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어진 귀한 삶이라면 좀 더 버티듯 살아봐야겠다 싶었습니다.


대신 너무 비장하지는 않으려고요.

그냥 해가 뜨고 지는 걸 보고, 계절 바뀔 때 변하는 자연을 느끼고, 일상을 음미하면서

그러다 또 하강 곡선에 놓이면 늘 그래왔듯 상승 곡선에 가 닿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거죠.

나 자신을 달래면서 천천히 돌아오기를,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요.


거창한 일대기도 대단한 극복기도 아닙니다.

스스로를 위한 기록이자, 저와 같은 섬세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생존기에 가까울 거예요.

어느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위로이기를 바라며.


파리에서 눈 뜬 어느 날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