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재미는 모르겠지만, 남은 건 정신승리
오래전 어디선가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일상은 여행처럼 여행은 일상처럼.
일상은 쳇바퀴 돌 듯하고 늘 뻔하지만 이왕이면 여행하듯 설렘을 느끼며 살고
여행은 낯설고 그래서 조금 두렵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일상을 살듯 편하게 즐기라는 뜻일 것이다.
여권, 휴대폰, 신용카드만 있으면 죽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왔다.
어쩌다 보니 홍콩은 이번이 다섯 번째인데, 그래서인지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트램, 지하철도 워낙 잘 되어 있고 컨텍리스 카드 하나면 다 되는 세상이라 불편함은 없다.
하루에 2만 보씩 걷고 있다.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대충 구글 지도로 한 곳만 툭 찍고 걷기 시작한다.
호텔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가면 센트럴, 오른쪽으로 가면 코즈웨이베이 이런 식으로.
사실 어제는 재미없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가족, 친구, 연인들 사이에 혼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랄까.
이런 게 바로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걸까 하면서.
서울에서도 주말에는 외출을 잘하지 않는다.
어쩐지 평일보다 외로움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이것도 못 먹었네, 저기도 못 가봤네 하는 마음도 들었다.
큰맘 먹고 왔는데 더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 여행은 투자대비수익률을 따지러 온 게 아니라고!
떠나기 전의 그 마음만 기억한다.
대단한 영감, 깨달음 같은 건 얻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잠들기 전 문득 원했고, 원하는 바를 주저하지 않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충분하다고.
낯선 도시에서 마시는 공기, 이 넓은 지구의 다양한 사람들을 보는 경험이면 된다고.
예전에는 패션이 멋지고 명품을 걸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눈길이 간다.
무엇이 저들을 에너지 넘치고 여유 있게 만들었을까?
나 자신에게 편지도 썼다.
우울이 날 집어삼키려고 할 때마다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내느라 애썼다고.
좀처럼 살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꾸역꾸역 살아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나에게 이 삶이 주어진 데는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그냥 지금만 생각하자고.
그리고 처음 간절히 바라는 문장을 썼다.
그동안 수많은 글과 일기를 쓰며 살았지만, 생각해 보니 정말 처음인 문장.
나는 진짜로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신승리만 남은 여행이어도
그 정신승리가 날 부디 또 살려내기를 바라면서.
- 홍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