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앞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하여 (하지만 늘 고객은 중요해)
오랜 시간 스타트업 씬에서 컨설턴트이자 심사역으로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실리콘밸리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빠르게 검증하고 빠르게 실패하고 또다시 빠르게 도전해야 한다거나,
항상 경쟁사와 비교를 통해 우리가 왜 더 나은지 증명하기를 요구한다거나,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줘서 시장에 진출하고 또 우위를 선점할 것인지 궁금해한다거나.
왜냐하면 내 역할은 그들이 매출을 발생시키는 기업이 되도록 도와야 했고
훌륭한 모험 자본이 있다면 투자를 받아 성장의 발판이 되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투자를 했으니 좋은 엑싯을 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자본 시장에서는 항상 여럿 경쟁자가 존재한다.
내가 경쟁사와의 비교를 해주십사 요청을 했던 것도, 일련의 시장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함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순위란 존재하겠지만 1등부터 10등까지 있는 블루오션이라면 적어도 시장이 작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애초에 우리만 유일하다면 1등이란 건 존재할 수도 없고,
극단적으로 1등과 2등만 나눠 먹는 시장이 과연 좋기만 할까?
예를 들어 온오프라인 쇼핑몰이, 그리고 식당이 포화 상태라는 건 인정한다.
물론 더 이상 버티지 못해서 폐업하는 수가 현저히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의식주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늘 필요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늘 필요하지는 않지만 소비를 하는 분야들도 있다.
유행이 올 때마다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참 부지런하다 생각이 들 정도인데
트렌드만 좇아 움직여도, 그 유행의 시기가 짧을지언정 고객의 마음을 훔치면, 그게 시장 아닐까.
항상 '고객'을 0순위로 강조하며 일한다.
심사역 시절에도 항상 '고객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대요? 고객이 필요로 한대요? 고객 반응이 어땠어요?'
고객 고객 고객... 소수여도 좋으니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정말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인지 증명하라고,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자고, 통계와 같은 문서가 아닌 현장에서의 고객을 지겹도록 강조했다.
그리고 심사역을 그만둔 지금, 신사업을 발굴하고 시장을 분석하면서도 늘 내가 보는 건 고객이다.
1등 하는 기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말 고객의 여정에 닿아 있는 서비스.
고객에게 항상 닿아있는 제품 또는 서비스를 보면 팀 구성도 훌륭하다. 투명하고 옳다.
평생 월급쟁이로 살 수 없을 거란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언젠가 나만의 비즈니스를 하게 된다면? 하며 상상하곤 한다.
그러면서 뭐가 시장에서 먹힐까? 뭐가 돈이 될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고객'을 강조하면서 정작 나는 시장에서 앞서는 아이템을 고민하는 것이다.
빠르게 빠르게 정신을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투자 생태계 내에서는 모험 자본이라는 단어가 그 의미에 걸맞게,
많은 창업가들이 신선한 모험을 하며 다양한 혁신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투자로 쓰이면 좋겠다.
내가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또 누구의 필요에 닿을 것인지 고민해야겠다.
늦어도 정확하게 닿는 것이 더 중요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