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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경 Nov 17. 2021

#10. 마음을 전하는 게 어려워서

[댕경X인영구] 댕경으로부터

어릴 때 친구에게 조금 심하게 장난을 치다 그 친구를 기분 나쁘게 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게 정말 너무나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는데, 아무리 사과를 해도 그 아이의 기분이 전혀 나아질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 아이의 마음이 풀어질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어서, 일단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교 앞 구멍가게에 가서 그 아이가 자주 사 먹던 초콜릿을 몇 개 샀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가 끝난 후 그 아이한테 가서 어제는 진짜 미안했다고 말하며 전날 미리 사놓은 초콜릿들을 조심스럽게 주었다. 근데 그 아이는 나에게 ‘너는 먹을 거 사주면 다 되는 줄 아니?’라는 말을 하고선 휙 뒤돌아 가버렸다. 내가 마치 실수하고 나서 먹을 걸로 상대의 감정을 대충 무마하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릴 때니까, 며칠이 지나고 나서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장난치며 재미있게 놀긴 했지만. 여전히 한편으로는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끝끝내 풀어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의 첫사랑이었던 친구와 6개월 만에 약속을 잡고 광주 시내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친구와 만나기 전날 밤에 밤잠 설쳐가며 직접 쓴 편지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 친구와 밥을 먹으러 갔을 때,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근처 팬시점에서 아주 작은 목걸이를 구매(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호갱처럼 강매당한) 후 포장해와서 헤어지기 전에 그 친구에게 직접 쓴 손편지와 함께 선물을 건네주고 도망치듯 버스를 타러 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의 나는 더 어렸기에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잘 몰랐고, 그래서 뭔가 눈에 보이고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을 자꾸 상대방에게 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나의 사정을 다 알고 있던 친구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더니 그 친구는 나에게 ‘그런 선물 같은 거 주는 게 네 마음을 주는 건 아니다.’라는, 그 당시의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던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내 감정을 말로 상대방에게 전하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이 전혀 닿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 내가 그 사람에게 사과를 대충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면 그 말이 듣는 사람에게 닿기도 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겐 뭐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샘솟는다. 내 마음을 어떤 말로 전하는 게 좋을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뭐 필요한 거 없어? 아니면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내가 사줄게.’이다. 내가 밥 한 끼를 굶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에겐 따뜻한 밥 한 끼를 사주고 싶은 마음. 나에겐 없는 물건이더라도 그 사람에게 필요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사기 전에 내가 먼저 사주고 싶은 마음. 말로 마음을 전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눈에 보이는 걸 해주면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가끔은 어릴 때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사주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진짜로 물질적인 것으로 사람의 환심을 사려하는 속물 같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듣는 사람이 되었을 땐 진심 가득한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고 느끼는데, 반대로 상대에게 주려고 할 땐 그게 잘 안 된다. 왜 내 말은 신기루처럼, 뜬구름처럼 느껴지는 걸까. 마음을 전한다는 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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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 레터는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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