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경x인영구] 인영구로부터
세상에는 말로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쉽지 않은 말들을 쉽게 하는 사람들 말이야. 그런데 그 말을 참 어렵게 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냥 말로 전해도 되는 건데 빙빙 돌려서 필요한 건 없냐고 묻는 사람들. 둘 중 어떤 사람이 더 좋을까. 나라면 당연히 후자일 것 같아. 마음이라는 게 전하기 참 어려운 일이잖아. 나는 어려운 일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참 좋아. 어려운 일을 용기 내서 하는 사람들이 좋고, 사랑한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는 사람들이 좋아.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클까 생각해. 아, 우리 엄마 얘기를 해줄까? 내가 가끔 본가에 내려가면 우리 엄마는 그렇게 나한테 뭔가 챙겨주려고 해. 마스크는 있는지, 반찬은 있는지, 하다 못해 과자나 라면 하나라도 챙겨주려고 난리야. 심지어 어느 날엔 옷장을 열어서 홈쇼핑에서 산 옷 박스를 꺼내더니 필요한 걸 골라가라고 하더라고. 나는 엄마가 입으려고 산 걸 그렇게 다 꺼내 주면 어떡해. 하면서도 주섬주섬 옷을 골랐어. 옷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하면서 말이야. 사실 필요 없었는데도, 그냥 엄마가 나한테 주는 그 마음을 아니까. 나한테 뭔가 줄수록 엄마가 행복해진다는 걸 아니까.
오빠 이야기를 보면 난 왜 우리 엄마가 생각날까. 마음이 참 커서 그런가 봐. 마음이 너무 넓어서, 그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내가 참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오빠나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은, 마음을 주고, 또 주고, 그리고 더 주고도 내게 도착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 아닐까? 그래서 자꾸만 뭔가 주고 싶고, 손에 뭐라도 하나 더 쥐어주고 싶고, 그걸 잔뜩 들고 가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지. 나는 멀리서부터 그 마음이 오는 걸 꾸준히 지켜봤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해지고 있는데 말이야.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에 물건을 얹어주고도 미안해하는 마음, 그 마음을 나는 언제쯤 따라갈 수 있을까 싶네.
다만 오빠나 우리 엄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있어. 자기 마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 그래야 버리는 마음 없이 전달하지. 충분하게 말이야. 마음이라는 건 주는 것도 어렵지만 받는 것도 어려워서, 어떤 거대한 마음들을 보면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걸까?” 싶어 날을 세울 때가 있는 것 같아. 나도 그랬었고. 오빠의 지난 기억들은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날을 세우다가, 내가 문득 초라해지는 것 같아 도망쳤을지도 몰라. 혹은 그런 마음들이 과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지도 모르고. 오빠 마음이 참 거대한 것처럼, 누군가가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총량은 조금 작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서로의 총량을 이해하면 우리는 충분해지지 않을까?
버리는 마음 없이, 넘치는 마음 없이, 미안함도 없이.
사랑만 있을 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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