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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경 Dec 01. 2021

#11. 떠나고 싶은 밤

[댕경X인영구] 댕경으로부터

5월 첫째 주에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얘기를 해서 수학 수업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일주일의 휴식 기간을 만들어 냈다. 그냥 쉬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 생각하고 나름의 휴가를 만들었는데, 쉬는 동안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마 이번 일주일의 휴가도 그냥 집에서 혼자 노래나 흥얼거리다가, 컴퓨터나 찔끔하다가, 침대에 누워만 있다 끝날 것 같다. 사실은 제주도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서 쉬고 싶었던 건데, 코로나가 너무 무섭다. 다른 사람들은 이 시국에도 조심하면서 잘 돌아다니고 사람들도 잘 만나고 다니던데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어서, 코로나가 퍼지고 나서는 한 번도 사적으로 누군가를 만날 약속을 잡아본 적도 없다. 가끔은 나만 너무 유난 떠는 건가 싶어서 그냥 어디든 갔다 올까 싶기도 했는데 결국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친한 지인들을 통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 요즘에는 친구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분풀이하듯 쏟아내기도 한다. 문제 풀 시간을 주고, 풀이 과정 쓰는 걸 가만히 지켜보면서 문제 푸는 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사소한 것들을 물어본다. 수업에 필요한 내용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포장하지만 사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학생들과 학부모님들뿐이라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초라한 내 인생 이야기라던가 내가 요즘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라던가 내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는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빙빙 돌려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말을 열심히 하고 오긴 하는데 지인들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감정들은 결국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오곤 한다. 이렇게 하고 싶은 말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떻게 될까.






보름 전쯤엔 전세 계약이 끝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다양한 고민과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 마음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이사를 하고 나서도 여전히 마음이 너무 힘들고 우울하다. 매일 과외가 끝나고 집에 와서는 그냥 침대에 엎어져서 한참을 울어버리고 싶지만 눈물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늘 불 꺼진 방에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침대에 멍하니 누워 까만 천장만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다. 술을 많이 마시고 나서 속이 안 좋을 땐 억지로 구토를 하면 나아지기라도 하는데, 이렇게 내가 힘들고 슬플 땐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지를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상태였을까. 이전 집보다 방도 하나 더 많고 조금은 더 넓은 집으로 왔더니 딱 그만큼 공허하고 우울해진 것 같다. 아직 정리가 안 된 이삿짐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내 상태가 저렇게 생겨먹은 것 같다고 느낀다. 볼 때마다 '치워야지, 치워야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주문해 놓은 수납장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그대로 어질러놓은 채 며칠을 지내고 있다. 이러다 평생 이렇게 살 것만 같아서 두렵기도 하다.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지금은 다 치우고 나름 깔끔하게 살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나의 감정을 타인의 어깨에 얹어주고 도망가는 느낌이 들어서 어릴 때부터 항상 혼자 삭히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엔 내가 힘들다고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힘들어 보인다며, 휴식이 필요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힘들다고 먼저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힘들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그 사람들의 손에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살짝 얹어놓고 도망치기만 한 것 같아서 많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이럴 거면 그냥 힘들고 지친다고 말하고 다니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힘들고 슬프고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다 털어놓고 사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먼지 털듯 다 털어버리고 나면 그런 감정들이 싹 사라지는 지도. 나도 힘든 걸 힘들다고 말하면 조금은 나아질까. 외로운 걸 외롭다고 말하면 조금은 덜 외로워질까. 우울한 걸 우울하다고 말하면 나아질까. 


도망치듯 떠나고 싶은 밤이다. 바다가 보고 싶은 밤이다.








2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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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 레터는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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