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일기 #5>
갓 이민 온 초기, 참 외로웠다.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없는 이 새로운 땅에서 말 붙일 사람이라고는 남편밖에 없었으니. 너무 외로워서 놀이터에서 어느 엄마에게 용기 내어 다가가기도 했고, 그래도 외로워서 교회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친구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뉴저지에 남편 쪽으로 친척이 계셨다. 비록 직계가족은 아니고 촌수가 먼 삼촌이었지만, 찾아 뵙고 인사드렸을 때 그분들은 우리를 따뜻이 맞아주셨다. 그리고 이후에 있을 미국의 큰 명절인 땡스기빙이나 설날, 가족 행사 때마다 우리를 불러 주시고 또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소중한 가족이 되어 주셨다. 함께할 가족이 있다는 것, 이민 생활에서 얼마나 따뜻한 의지가 되는지 모른다.
이민 온 지 두 달여밖에 되지 않았을 때 딸아이 돌이 다가왔다. 오자마자 낯선 땅에서 돌잔치라니 참 막막했다. 하지만 소중한 첫아이인지라 작게라도 돌잔치를 꼭 해 주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축하해줄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곁에 계시지 않아 참 서글프기도 했다. 과연 누구를 초청할 것인가... 식당을 예약하려고 보니 어느 정도의 인원이 필요했다. 뉴저지 삼촌 댁과 남편이 일하면서 알게 된 몇몇 사람들, 그리고 정말 염치를 무릅쓰고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초대했다. 그렇게 플러싱의 한국 식당에서 작은 방 하나를 예약하고는 누가 와 주실까 조마조마했는데, 그래도 그 방이 거의 다 차도록 와 주셨다. 담당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고 돌잡이도 잘 치르고 다들 음식도 맛있게 드셔 주셨다. 와주신 한 분 한 분 얼마나 소중한지... 낯선 땅에서 가족도 없이 처음 치른 돌잔치, 그래도 잘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었다.
돌잔치가 끝나고 또다시 외로운 일상. 그러다 엄마와 아이에게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마미앤미'(Mommy & Me)였다. 미취학 아동을 위해 오전 시간에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함께 다양한 활동(미술, 한글, 게임 등)을 하고 예배를 드리며 간식을 먹는 일정으로 여러 한인 교회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여러 엄마와 아이들이 모이는 만큼 엄마와 아이 모두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희소식은, 이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교회가 바로 우리 집 근처에 있어서 유모차를 끌고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이제 한 살을 갓 넘긴 나이여서 무엇을 배운다는 건 쉽지 않았지만, 나는 얼른 등록했다. 아이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정말 기다려졌다.
막상 가 보니 우리 아이가 너무 어려서 활동들을 잘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여러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낯설어 하지 않고 아이도 나름대로 즐기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엄마들을 사귀기도 쉽지 않았지만, 또 용기를 내어 어느 엄마에게 말을 붙여 보았다.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 엄마였는데, 물어보니 우리 딸과 같은 나이였고 그 집도 첫아이였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이곳을 잘 알고 있는 엄마라 더욱 호감이 갔다. 만날 때마다 말을 더 건네고, 친근한 호칭으로 바뀌게 되고, 급기야 그 엄마의 제안으로 우린 맨해튼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맨해튼으로 떠나는 길. 기차표를 구입하고, 낑낑대며 유모차를 번쩍 안아들어 긴 계단을 내려가고(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라..), 복잡한 맨해튼 전철을 갈아타며 목적지에 도착, 아이들의 실내 놀이터인 Children's Museum에서 아이들을 놀리고, 영화에도 나왔다는 베트남 레스토랑에서 쌀국수 시켜먹고, Macy's 백화점 쇼윈도우의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감상한 다음, Gap에서 잠시 애들 옷구경하고 이번엔 버스를 타고 무사히 집까지 귀환하는 판타스틱한 하루였다. 나 혼자라면 꿈도 못 꾸었을 그 일을, 미국 생활 베테랑인 엄마가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민생활, 용기를 내어 낯선 이에게 다가가고, 그와 친구가 되고, 그 친구로 인해 내 삶의 지경이 조금씩 더 넓어지는 기쁨, 지금도 계속 이어지길 소망한다.
PS. 그 엄마는 이후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고, 또 한국으로 떠나게 되어 영영 소식이 끊어지나 싶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다니는 뉴욕 교회에서 정말 반갑게 해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우리가 다시 캘리포니아로 이사 오게 되었으니... 돌고 도는 인생길, 우린 한치 앞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친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그때, 그 친구를 만나 참 즐거웠음을, 감사함으로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