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일기 #4>
미국에 와서 반드시 해야 할 미션 중의 하나, 바로 운전면허증 따기! 처음 정착한 동네가 워낙 걸어서 다닐 수 있다고는 하나, 아기 데리고 병원이라도 가려면 차 없이는 갈 수 없는, 그래도 여긴 미국이었다. 버스 노선이 간혹 보이긴 했지만, 노선도 짧았고 어떻게 타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결국 자력으로 모든 볼일을 해결하려면 내가 운전면허증을 따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1종 면허를 딴 전력이 있으나, 여기선 어떠한 인정도 받을 수 없었으니 아깝지만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우선은 필기시험 준비를 했다. 한인 업소록은 집집마다 한 부씩 챙겨 두는데, 그 뒷면에 보면 영어와 한글 버전으로 필기시험 유형이 나와 있다. 그것을 참고해서 열심히 암기했다. 한국어 번역이 어색하기에 영어가 더 쉬울 거라는 말도 있었지만, 난 주로 한국어 문제 풀기에 주력했다. 한국어가 더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 어렵지 않은 한국어 필기시험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나는 신청할 때 필요한 서류들(여권, 소셜 시큐리티 카드, 주소 증명할 고지서 등)을 챙겨서 남편과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로 향했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이 JFK 공항 근처 자메이카에 있었는데, 그곳은 흑인들이 많은 동네였다. 우리 동네 DMV를 비롯해서 웬만한 곳들은 사람들로 복작거리고 대기 시간도 길기로 유명하다. 그래도 자메이카 쪽이 덜 기다릴 거라 해서 우리는 남편 회사에서 멀지 않은 이곳 DMV를 택했다.
자메이카로 들어서니, 거리에 사람들이 흑인들로 바뀌어 갔다. DMV 안으로 들어가니 온통 흑인들만 보였다. 예상은 했지만 좀 당황스러웠고, 혼자 눈에 틔는 황인종으로 다니려니 살짝 겁도 났다. 주섬주섬 챙겨 온 서류로 등록을 마치고 면허증에 필요한 시력 검사도 마쳤다. 필기시험으로 한국어를 선택하여 시험지를 받아 들고 시험을 치기 시작했다. 20문제 중 14문제를 맞히면 되는데, 다행히 공부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결과는 무사 합격! 도로 주행을 배울 수 있는 임시 러너 퍼밋(Learner Permit)을 발급받고는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약 1주 후에 정식 러너 퍼밋(Learner Permit)이 우편물로 도착했다. 신분증으로도 사용 가능한 이 퍼밋은 정식 면허증이 있는 사람이 동행한다는 조건 하에 합법적으로 운전할 자격을 부여해 준다. 사실 한국에서 1종 면허증을 취득했지만 거의 장롱면허 수준이었기에 주행 연습을 다시 해야 했다. 남편에게 운전을 배운다는 생각은 애당초 접고, 한인 운전학원 선생님을 강사로 모셨다. 실기시험 전까지 다양한 코스로 안내하며 운전을 가르쳐 주어서 자신감 쑥쑥! 선생님도 별문제 없이 붙을 거라 용기를 팍팍 불어넣어 주었다.
- 미국 감독관 옆에서 떨리는 주행 테스트
드디어 결전의 날! 그래도 운전엔 자신이 있었지만, 영어 소통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내 옆에 무게감 느껴지는 미국 여자 감독관이 턱 하니 앉아 있는데 왜 이리 떨리는지... 영어만 쓰는 미국 사람과 단 둘이 차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감독관이 앞으로 가라는데 어랏, 차가 안 나가는 거다. 땀 삐질 흘리며 버벅거리는데, 난 시동도 켜지 않고 운전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 뒤 무슨 정신으로 코스를 마쳤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결과는 불합격...
다시 운전학원 강사를 대동하고 실전 연습을 더 했다. 이번엔 정말 이변이 아니라면 꼭 붙을 거라는 강사님 말씀 새겨들으며, 저번보다 더 쉬울 거라는 코스를 선택하여 재도전! 두 번째 도전이니만큼 전보다 마음의 평정을 가지고 운전에 임할 수 있었다. 시동 제대로 켜고 출발, 각각의 코스도 무리 없이 통과한 듯했다. 두근거리며 마지막 감독관 말을 기다렸다. “Pass!”라는 말이 크게 들렸다. 야호! 속으로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 감독관은 내게 종이로 된 임시 면허증을 즉석에서 발급해 주었다. 두 주쯤 후에 정식 면허증이 집으로 배달될 거라 했다. 마침내 해냈다! 미국생활에 꼭 필요한 생활 미션 하나 해결한 것이다.
면허증이 언제 오려나 학수고대하는데, 거의 2주 만에 묵직한 봉투가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뜯어보니 고대하던 면허증! 카메라 앵글을 잘못 보아서 거만한 듯 고개를 쳐들고 찍혀 버린 사진,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오케이. 그런데 이름이 ‘소’가 되어 버린 것을 발견하고는 속상한 마음 금할 수 없었다. 이유인즉 내 이름은 ‘소나’인데 한국에서 처음 여권을 신청할 때 ‘소’와 ‘나’ 사이를 띄어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 여권으로 이름을 만들다 보니 공식적인 내 이름은 So, 미들네임이 Na처럼 되어 버렸다. 한국어 이름이 어려울 경우 일부러 한 글자만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내 이름은 쉽고 발음하기 좋다고 자부하던 터에 이런 일이...
새겨진 이름에 아쉬움이 풀풀 남았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드디어 미국에서 정식으로 통용되는 신분증이 생긴 것을, 그리고 어디든 운전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것을.
어리바리 한국 아줌마, 이 험한 뉴욕을 잘 누비고 다닐 것인가 걱정도 되지만, 해 보는 거야!
More.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처음 여권 만들 때 신중하게 이름을 붙여서 만드시길 권유드린다. 나의 경우, 마침내 이름을 ‘Sona’로 바꾸기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시민권을 딸 때까지 기다려서 말이다.
Tip. 미국에서 운전할 때 주의사항
- STOP 사인 : 미국에서는 도로마다 STOP 사인이 많이 나오는데, 이때는 완전히 멈춘 후에 좌우 주변을 살핀 후 다시 출발해야 한다. 형식적으로 잠깐 멈췄다가 출발하면,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경찰에게 잡히기 딱 좋다. ‘Fail To Stop’이란 명목으로 티켓을 주는데, 주마다 벌금이 100-300불을 호가하므로 받으면 정말 억울해진다. STOP 사인이 나오면 차를 완전히 멈추어 세우고 3초를 센 후 다시 출발하는 습관을 들이자.
- 좌회전 : 좌회전 신호가 있는 신호등이면 신호에 따라 좌회전을 하면 되지만, 따로 좌회전 신호가 없는 경우는 파란불일 때 반대편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좌회전을 하면 된다.
- 우회전 : 우회전에 대한 규정은 주마다, 도시마다 다르다. 뉴욕시에서 운전할 때는 빨간불에 우회전을 할 수 없다. 직진 신호에 파란불이 들어올 때만 우회전이 가능하다.
한편 같은 뉴욕주라도 롱아일랜드 지역에서는 빨간불에 우회전을 할 수 있는데, 먼저 멈춰서 3초간 정지한 후 보행자나 다른 차량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우회전해야 한다. ‘STOP on Red’ 사인이 나온 경우 파란불일 때만 우회전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운전하는 지역의 규정을 살피고, 도로의 사인을 주의하여 살펴보면서 운전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