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엄마들 모임에 똑똑똑
미국에 이민 와서 누가 처음부터 영어를 잘하겠는가. 그래도 시간이 내 편인 줄 알았다. 사노라면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이 늘 줄 알았건만, 내가 노력하지 않는 한 영어는 절대 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민 생활에서 절절히 체감하게 되었다. 집에서 한국말을 처음 접하며 자라난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영어가 쏼라쏼라 유창해지더니 급기야 한국말에도 영어를 섞어 자신만의 요상한 언어를 사용하는데, 이 엄마는 아이들이 한국말 못 배울까 집에서는 한국어를 써야 하니 영어를 쓸 일이 정말 많지 않다. 그렇다고 따로 영어 공부에 시간을 잘 내지 못하고 있으니 이러다가는 우리 아이들과 의사소통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까 겁이 난다. (벌써 우리 사이엔 언어 장벽이 솟아오르고 있다..) 아이들을 한국말 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또한 미국에 살면서 이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지 늘 다짐만 하는 형편이었다.
이제 이민 12년 차, 처음 이민 와서 귀머거리, 벙어리 시절에 비하면 정말 많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도 여기서 직장 생활을 살짝 경험했기에 영어에 더 용감해진 이유도 있다. 이제는 밖에 나가 내 필요한 일을 해결하고,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과 면담을 하며, 학교 엄마들과 안부 주고받는 정도는 할 수 있다. 내 생활에 필요한 영어 정도는 어떻게든 구사할 수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려면 한계에 부딪히곤 하니 그야말로 생존 영어 수준이다. 전화로 영어를 쓸 일이 있으면 긴장부터 하고, 그 사람이 빨리 말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부터 한다. 여전히 영어는 날 답답하게 한다.
영어를 잘하려면 영어를 많이 말하는 환경에 노출이 되어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는 아무래도 여의치 않다. 대학의 ESL도 다녀보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국 친구를 사귀는 것이 제일이라지만 만날 기회도 그렇고 친구가 되기까지는 참 쉽지 않은 일이다.
2016년 겨울, 우리가 얼바인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한국 사람이 비교적 많지 않은 동네로 집을 정하게 된 것이다. 이웃 주민들도 그렇고 학교에도 한국 사람이 많지 않아서 옛 동네보다는 영어를 쓸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옆집의 수다스러운 스페니시 아저씨와 이야기하는 것도, 학교의 일본, 베트남, 브라질 엄마 등 다른 인종의 엄마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즐거웠다. 사실 이민자들끼리 하는 대화는 편하다. 같은 이민자들이기에 서로 부족한 영어도 잘 받아주고 이야기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기에 대화 나누기가 더 편하다. 어렸을 때 이민 온 엄마들은 물론 영어를 잘하지만 내 입장을 배려해 주기에 더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순수 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았다. 몇 번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들은 말도 빠르고 이야기 나눌 관심사도 별로 없어서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들 앞에서 위축되는 경향이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영어를 하려면 원어민들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결심을 했다. 내 발로 미국 엄마들 모임을 찾아가 보기로.
마침 생각이 나는 모임이 있었다. 미국 각 지역마다 자녀들과 학교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들 모임(Moms in Prayer)이 있는데, 거기에 노크를 해보기로 했다. 비단 영어 때문만은 아니었다. 총기 사고 등으로 안전을 위협받는 미국 학교의 현주소에서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학교를 위해서도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을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왕 미국에서 미국 학교를 위해 기도하는데, 영어로 기도해 보자고 용기를 낸 것이다.
그리고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 정보와 연락처를 남겼더니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 우리 아이 학교를 위한 기도모임이라며 어느 리더 엄마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는데, 이름을 보니 분명 백인이 틀림없었다. 오.. 드디어... 나는 차마 전화는 해보지 못하고 이메일로 궁금한 점을 남기며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는 것이었다. 소극적인 나는, 그냥 잊기로 했다. 그래, 역시 아니었구나 하면서...
그렇게 잊고 지냈건만 한 달이 지나서 갑자기 연락이 온 것이다. 내가 전화를 못 받았더니 텍스트와 이메일로. 내 메일이 스팸에 들어가서 이제야 확인을 했다며 미안해하면서 연락을 달라고 했다. 나는 또 한참을 망설이다가(영어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지 등등 고민하며) 용기 내어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랬더니 의외로 안면이 있는 엄마였다. 지난해 우리 둘째와 같은 반이었던 남자애 엄마였고, 집도 우리 집에서 가까웠다. 얼굴만 얼핏 알고 이야기해 본 적은 없는 엄마였는데, 다행히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목소리여서 나는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대여섯 명 엄마들이 애들 학교 데려다주고 바로 한 시간 가량 모이고서 헤어진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어물쩍 나도 모르게 간다고 대답하게 되었고, 그 엄마는 나를 곧바로 전화 메시지 방에 초대하여 주었다. 이리하여 처음으로 미국 엄마들 모임에 가보게 되었다. 막상 그 날이 다가오니 기대도 되지만 떨리면서 피하고 싶기도 했다. 과연 나는 그 자리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