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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Mar 22. 2018

처음 마주한 그녀들

미국 엄마들과의 첫 번째 기도모임에서

띠링 띠링, 아침 일찍 바쁘게 전화 메시지가 울려왔다.   

"I can't make it today."  

"Sorry, already booked."  

"I won't be able to join this morning."  

기도모임 리더가 날짜를 바꾸어 오늘 아침 모이자는 제안에, 다들 힘들다는 메시지들이었다. 같은 의미도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미국 엄마들의 영어가 눈에 쏙 들어왔다. 어느 엄마가 이번 주 내내 스케줄이 있다고 쓴 "I am booked every day this week." 표현을 보며 나도 단순히 "I am busy" 가 아닌 "I am booked"란 표현을 써봐야겠다 싶었다. 문자 메시지에서부터 살아 있는 영어가 통통 튀어나오는 게 좋았다. 비록 불발된 모임이 아쉽기는 했지만 말이다.

    



며칠을 더 기다려 드디어 모이는 날짜가 되었다. 아침에 바쁜 전쟁을 치른 뒤 둘째 먼저 초등학교에 데려다주고 그 다음 첫째를 중학교에 데려다주고서 바로 리더 집으로 향하였다. 두근두근, 집 앞에 도착했는데 어느 엄마도 마침 들어가는 길이었다. 다행히 어떻게 집 안쪽으로 들어가는지 가르쳐 주어 당황하지 않고 함께 들어올 수 있었다. "Welcome! Good to see you!" 따뜻하게 안아주는 리더 엄마의 환영에 긴장되었던 마음이 좀 풀어졌다. 다들 백인들만 있으면 꿔다 놓은 보리자루마냥 주눅이 들어 어쩌지 싶었는데, 피부색 다른 인도 엄마가 보이는 게 아닌가. 아, 너무 반가웠다! 물론 인도 사람들은 영어권이라 나와 비교할 수 없이 영어는 잘하지만, 그래도 같은 유색인종이라는 점에 왜 이리 친밀감이 느껴지는지.   


알고 보니 우리 큰딸이 초등학교 6학년으로 전학 왔을 때 같은 반이었던 여학생 엄마들이 그 모임에 두 명이나 되었다. 그 인도 엄마의 딸도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것이다. 새삼 작년 처음 이곳 초등학교에 전학 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특히 큰아이 반에는 한국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학교 오픈하우스나 행사에 가도 아무도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정말 뻘쭘했던, 아이도 엄마도 외로웠던 초창기 그 시절... 그때 그 엄마들은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모른 채 스쳐 지나갈 인연이었을 텐데 이제라도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인사를 나눈다는 게 신기하고 또 반가웠다. 소개를 나누다 보니 아이들이 셋 또는 넷 있는 엄마도 있었다. 대단하다, 미국 엄마들!  


미국 엄마들은 역시 말이 빨랐다. 한 엄마가 눈 떨리는 증상을 이야기하자 다른 엄마도 같은 증상을 호소하며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의 사진들도 보여주며 이전의 미소를 더 이상 지을 수 없어서 아쉽다고 말하는 그녀들.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던져지는 말들 속에서 내용을 캐치하려고 신경을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기도 시간, 과연 내가 내 몫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절로 긴장이 되었다.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죄를 고백하고 말씀을 몇 군데 찾아 읽은 후 돌아가면서 기도하는 순서였다. 자신의 아이들과 학교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 다음 사람은 앞사람의 자녀들까지 함께 기도해야 했다. 그게 내게는 관건이었다! 앞사람이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을 잘 듣고 따라서 기도해야 하는데, 듣기가 안 되면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영어로 기도하기 벅찬데, 다른 집 애들까지... 대략 난감이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인도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엄마는 비교적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짧게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 휴우~ 이리하여 내 순서를 그래도 잘 마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는, 큰애가 계속 무릎이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하여 체육 시간에 뛸 수 없는 상태여서 이를 위해 기도했고, 그 다음 엄마가 나의 짧은 기도보다 더 많이 우리 애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Thank you!   


그리고 나의 버벅거렸던 짧은 기도에도 불구하고 인도 엄마는 나에게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기도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해 주었다. 에고, 부끄러워라... 보통 학교에서 만나는 인도 사람들은 대부분 힌두교인데, 이 엄마는 이름도 Salome이고, 아이들도 Samuel, Sarah로 다 성경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자신의 이름은 지금은 돌아가신 예전 목사님이 지어주셨다고 했다. 그녀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어떠한 사연이 문득 궁금해졌다.

 

   

이리하여 첫 모임을 무사히 마쳤다. 나는 인사말로, 내가 영어를 잘 못해도 나를 받아줘서 고맙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겠다 하려고 했는데, 그 말을 할 겨를도 미처 없이 헤어졌다. 빠르게 오고 가는 말 속에서 내 말 한마디 하기에도 솔직히 쉽지 않았다. 나의 한계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 엄마들 말을 다 알아듣고 내 말 한마디 더 보태려면 별도로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각오도 절로 생겨났다. 그래, 사실 내게는 이런 자극이 필요하다. 부딪치지 않으면 내가 그럭저럭 잘하고 있구나 싶지만, 막상 부딪치고 나면 실제 내 현실과 한계를 느끼고 절망도 하며 목마름을 느끼게 된다. 불편하고 어려운 자리이기도 했지만, 용기 내어 잘 노크했다 싶었다. 일주일에 한 번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자극으로 삼아 조금 더 영어에도 노력하리라. 잘 안 보던 미드를 다시 뒤적거리며, 쉬고 있던 유튜브 영어 레슨 동영상을 다시 틀면서 귀를 쫑긋, 한 마디 더 중얼거려 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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