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나 Jul 06. 2018

새로운 도약을 위해

<이민 일기 #13> 인터뷰,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담아


아침 9시 인터뷰. 여행사에는 다른 이유를 둘러대고서 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집에서 30-40여 분의 거리. 하이웨이를 타고 가면 좀 더 단축될 것이나 로컬 길만 겨우 다니는 내 운전실력으로는 엄두가 안 나서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다. 처음으로 이 먼 길을 홀로 운전해 가 보는 길, 롱아일랜드 포트 워싱턴의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을 끼고 꼬불꼬불 들어가 보니 한적한 넓은 부지에 사무실과 커다란 창고가 붙어 있는 회사가 눈앞에 보였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들어서는데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마침 마주친 동남아 출신의 어느 여직원이 나를 안으로 데리고 가 주었다. 그녀와 영어로 몇 마디 인사말을 주고받노라니 '이곳에선 영어를 쓸 기회가 더 많겠네'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지만 더 솔깃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칸막이마다 책상들이 즐비해 있었고 분주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상보다 더 큰 규모에 놀라는 사이, 나와 통화했던 인사 담당자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리로 들어오세요."

    

싹싹하게 보이는 인사 담당자와 꽤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감을 가지고 물어봐 주고 들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서의 경력뿐 아니라 미국에서 어디에라도 일한 경력이 있어서 이렇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런데 갑자기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질문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My name is Sona Park, and my major in college was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and..." 아, 왜 나는 이런 기본적인 질문에 대비도 하지 않았을까 자책하며, 대충 말을 꺼내긴 했으나 얼굴은 이미 붉어진 터였다. 마지막으로 자기 PR을 해보라는 말에, 나는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어서 한인 마트에서 뉴욕 최우수 주부 모니터 요원으로 뽑힌 경험을 들며 맡은 바 직무는 최선을 다해 감당한다는 책임감과 성실감을 강조하면서 내 소개를 마쳤으나 당황한 마음에 횡설수설한 것은 아닌지 싶기도 했다.


곧이어 2차로 전무님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그는 내가 "영어가 부족하지만 기회를 주시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잘 감당하겠습니다"라는 내 말에, "여기는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많이 써요"라고 말해 주어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인터뷰를 하면서 회사에 대한 소개도 더 들을 수 있었는데, 미국에서 가발업계 1위라 할 만큼 경쟁력 있고 비전이 있는 곳이었다. 일하는 사람들도 젊고 능력 있어 보였고, 듣기로는 사람들이 평생직장으로 여길 만큼 한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를 않고, 복지혜택도 많고 사람을 아끼는 회사처럼 보였다. 자연히 내 마음속엔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소망 또한 간절해졌다. 하지만 신입으로 들어가는데 나이도 많은 데다가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이 마음에 걸렸다. 리셉셔니스트는 당연히 영어 능력이 많이 요구될 텐데 아까 보여준 그 영어 실력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낙심이 되었다. 그리고 인사 담당자에게 여행사에서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가능한 일찍 결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괜한 말을 했나 후회도 들고 그 말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걱정도 되었다.     


어쩌랴, 여기까지가 나의 능력이며 한계인 것을. 운전도 벌벌 떨면서 그곳까지 어찌어찌 도착하여 인터뷰 잘 마치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장한 노릇이리라. 나머지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늘에 맡기고서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여행사 사장님과 부사장님에게 아직 내 거취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 않은 상태였고, 인터뷰 결과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애매함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업무에 집중하려는데, 오후가 되어 S 컴퍼니에서 전화가 왔다. 얼른 복도로 뛰쳐나가 전화를 받고 보니 "합격되었습니다"라는 인사 담당자의 말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내 부탁을 잊지 않고 이렇게 당일에 빨리 통보해 주어 너무 감사했다. 사실 내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나이도 많고 아줌마이고 영어도 잘 못하고... 그렇기에 오늘의 이 합격 소식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로만 설명이 되리라. 내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주심이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계속 감사가 나왔다.     


한편으로 무거운 일이 남았다. 이제 여행사에 분명한 사의를 표명하는 것. 다른 곳에 가게 되었다는 정직한 말이 너무 미안하게 느껴져서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남편 회사를 돕게 되었다는(결국 내가 일하는 것이 그를 돕는 것이라 애써 둘러대며) 명분으로 이번 주까지만 일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결국 나도 내 살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지만, 내가 그만둠으로써 다른 직원도 계속 일할 수 있게 되어서 서로에게 잘된 것이라 믿고 싶었다. 이리하여 나는 짧고도 굵었던 여행사 경력,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보람과 감사 또한 안겨 주었던 그 직종과 작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한 걸음 더 도약하게 되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가발 회사,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리셉셔니스트로.     


                                         포트 워싱턴의 바닷가 풍경



매거진의 이전글 또다시 여행사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