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나 Jul 03. 2018

또다시 여행사로

<이민 일기 #12> 쉬우나 또 쉽지 않은 그곳에서

새로운 여행사에 들어가기 앞서 세 살이 되는 우리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보았다. 지난번엔 아이가 아직 어려서 개인 집에 부탁을 했다면, 이번엔 유아원을 알아보았다. 아이들이 일찍부터 글을 깨우치고 영재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유아원,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며 다닌다는 인기 있는 유아원 등을 둘러보았는데, 겉으로 교육과 홍보에 신경을 쓰면서 정작 아이들을 잘 봐주지 않는다는 여러 이야기도 들리는 등, 뭔가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당시 우리가 다니던 교회의 젊은 집사님이 운영하는 유아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가정집을 빌려 운영하는 아담한 곳으로 아이들도 소규모이고 밝은 성격의 원장님이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잘 봐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곳으로 쾅쾅쾅! 결정하고 나니 안도감이 들었다. 일하게 될 여행사와도 가까운 거리여서 더욱 마음이 편했다.     


이리하여 아이를 유아원에 맡기고 첫 출근을 했다. 뉴욕에서 그래도 이름 난 여행사여서 기대 어린 마음으로 새로운 회사 식구들을 만났다. 사무실에는 사장님과 부사장님, 회계를 담당하는 사모님, 그리고 나와 같이 티켓팅과 고객 상담 업무를 하는 언니가 있었고, 투어 가이드 책임자가 있어서 투어 쪽을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부사장님은 여행사 오퍼레이션 경력도 많고 항공사 및 티켓팅 대리점들과도 두루 친분이 있으며 영어도 잘하여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이전엔 나 혼자 지식도 경험도 없이 좌충우돌 혼돈의 시기를 거쳤다면, 이제는 그러면서 터득했던 업무 요령과 더불어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는 상사가 있다는 게 참 든든하게 여겨졌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전과 다르지 않은 업무였기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고, 고객 상담에 성심껏 답하려 노력했다. 일을 하다 보니 뜻밖의 손님도 만나게 되었다. 처음 여행사에서 좌석 예약을 미리 하지 않아 오버 부킹 된 비행기 좌석을 얻지 못했던, 그래서 우리 쪽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려 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그 아주머니가 전화로 여행 상담을 해온 것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니!'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는데, 그분은 알지 못했나 보다. 아무튼 나는 그녀를 전혀 모르는 척, 친절히 응대해 주었다. 자리 예약이 되어 있는지 재차 확인을 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하기도 했지만, 다시 만난 그에 대한 아픈 감정도 다소 덜어낼 수 있었다.     


지난번 여행사에서 멕시코 캔쿤에 허리케인이 닥쳐와 긴급 상황이 벌어졌다면, 이번엔 유럽 여행을 보낸 손님이 폭우로 연결 편 비행기를 놓쳐서 한밤중에 연락이 오는 다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다음 편 비행기를 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 한 손님으로 인해 단체 투어 스케줄이 꼬이게 되는 게 문제였다. 일정보다 하루 뒤 도착하게 된 손님이 영국 공항에서 단체 투어 일정에 잘 합류할 수 있도록 긴급 연락망을 돌려서 결국 잘 해결될 수 있었다. 이처럼 여행사 업무에는 날씨라는 변수 앞에 여러 돌발 상황들이 생기지만, 최선을 다해 대책을 간구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체험했다.     



일을 잘 처리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받았지만, 어이없는 실수로 손님을 곤란에 빠뜨린 적도 있었다. 엄마와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꼬마의 퍼스트 네임과 라스트 네임 순서를 바꿔서 티켓팅을 하는 바람에 손님이 공항에 가서 티켓을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다음 날 손님이 다시 여행사를 찾아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항변했을 때도 무엇이 잘못인지 영문을 몰랐는데, 항공사와 통화를 하면서 실수를 깨닫고는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작은 실수도 바로 커다란 결과-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너무 무겁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사에 있다는 게 참 고맙게 느껴진 순간도 있었다. 한국에서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남편이 급히 비행기 표를 구해야 했는데, 가장 빨리 출발하는 비행기에 좌석이 없는 것이었다. 이때 사정을 들은 부사장님이 인맥을 동원하여 자리도 좋은 좌석으로 얻게 해 주고 라운지 이용권도 받게 해 주어 너무 감사했다. 또한 친분이 있는 한국 항공사 대리점 언니를 통해 할인 혜택도 더 받을 수 있었다. 시카고에 계신 형님의 비행기 표도 함께 잘 구해 드릴 수 있어서 또한 다행이었다. 슬프고 아픈 여러 마음들이 교차했던 그 시간, 그래도 마침 여행사에 근무하고 있어서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이 여행사에 취직하기 전에 한국을 두 달간 방문해 시아버지에게 손녀를 보여 드리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그래도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이곳에서 4개월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탄탄한 회사라 믿었지만, 이 여행사 또한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표면으로 문제가 드러나고 있었다. 현지 여행사에 줄 돈도 밀리게 되더니 우리 주급이 밀릴지 모른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었다. 이전 여행사와 너무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나는 아찔해졌다. 이 상황에서 함께 일하는 언니라도 주급을 받아가려면 차라리 내가 먼저 그만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결심하고는 앞에 놓여 있는 신문을 들고 구직란 쪽으로 눈을 향했는데, 큰 규모의 가발 제조 판매 회사로 알려진 S 컴퍼니에서 리셉셔니스트를 뽑는다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좋은 회사라고 익히 들은 적이 있어서 바로 이력서를 냈다.     


그리고 다음날, 어렵게 부사장님에게 그만둔다는 말을 하려는데 왠지 목이 메는 것이었다. 그래도 애써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자 그는 난감해하더니 그럼 한 달만 쉬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말을 전해 들은 사장님은 나가지 말라며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만류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최종적으로 부사장님이 다시 나를 부르더니 회사 입장은 다른 언니를 쉬게 하더라도 내가 남아서 일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게 아닌가. 사실 속으로는 나를 붙잡아 주는 말들이 고마웠고, 내가 일을 잘못한 게 아니구나 싶어서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의도했던 것이 이게 아닌데... 더욱 곤란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때였다. 전날 이력서를 냈던 회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바로 인터뷰를 하자는 게 아닌가. 고민과 갈등의 순간에 찾아온 이 기회가, 과연 나를 향해 열려 있는 문인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번 걸어가 보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림과 휴식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