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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Aug 11. 2018

선물

<이민 일기 #17> 정들었던 직장 생활을 마감하며

하루가 총알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이를 맡기며 일하는 엄마들의 고충을 경험하며 아등바등 허둥지둥 살기도 했지만, 즐겁고도 보람차게 근무하고 있던 중에 뜻밖의 소식이 찾아왔다. 첫아이를 낳고 5년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던,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둘째가 잉태된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한국에서 시어머님이 갑작스레 소천하신 후로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아이는 위로의 선물과도 같았다. 


그렇게 새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큰아이도 이제 공립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둘째도 곧 태어날 것이기에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좋은 직장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만두는 것이 많이 아쉽기도 했다. 2년여간 회사에 다니는 사이에 이젠 하이웨이도 두렵지 않게 운전 실력도 많이 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늘었으며, 한글로 사보도 만들며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음이 너무 감사했다. 결혼식 드레스 말고 난생처음 내 돈으로 드레스를 사서 입어보며 나름 우아하게 연말 파티에 참석했던 일이며, 회사 경품 추첨에 당첨되어 남편과 딸아이를 데리고 양키스 구장에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관람한 일 또한 직장 생활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되리라. 


그곳을 떠나기 며칠 남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창고 여직원이 호출하여 와 달라고 하기에 일하는 곳으로 가 보니 여직원들이 다 모여서 "서프라이즈!" 외치며 '베이비 샤워(baby shower)' 파티를 열어 주는 것이었다. 다들 어려운 형편일 텐데도, 각자 음식을 준비하고 커다란 헬로키티 인형과 애기 옷, 신발, 양말, 심지어 봉투에 돈까지 넣어서 건네주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미국에서 '베이비 샤워'(baby shower)를 받아보는 것도 처음인데, 다른 누구도 아닌 외국인 창고 직원들이 그렇게 마음을 모아 내게 특별한 선물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 마음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좋은 친구가 되었던 창고 수퍼바이저는 성으로 된 커다란 촛대를 선물해 주었다. 자신을 잊지 말라고 말하면서. "Don't forget me, Sona." 그렇게 창고 직원들로부터 따뜻한 사랑의 선물을 받고, 정말 빚진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함께하면서 비록 언어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그들뿐 아니라 틈틈이 함께 삶을 나누고 신앙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던 직장 동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 또한 감사함으로 간직할 것이다. 


미국에 와서 한창 어리버리했던 아줌마가 용기 내어 한 걸음 내디뎠던, 짧고도 굵었던 직장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한인 여행사부터 가발 회사를 거치면서 좌충우돌 부딪히며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던 모든 시간과 만남이 참 소중했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신감과 용기를 많이 얻게 되었다. 그동안 받은 선물들을 헤아려 보니 감사함이 넘쳤다. 그리고 이제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 소중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가정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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