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나 Jul 27. 2018

회사 사보 편집장으로 승진?!   

<이민 일기 #16> 바로 이곳에서 쓰임받는다는 것


이민을 오기 전에 했던 고민. 미국 땅에서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배운 게 한글이고 다닌 게 글과 관련된 업이었는데, 영어가 주 언어인 이 땅에서 전공과 경력을 살리기도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닌 나로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다행히 직장은 잘 얻을 수 있었지만, 글과 관련된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 경험을 살려서 자원봉사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뉴욕에 와서 첫 일 년간 다녔던 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는 잡지를 따로 발행하고 있었기에 편집부에서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 연락처도 남겼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봉사도 하고 싶다고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어느 날 교회에 복잡한 사정이 생기자 우리는 그만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한인 교회를 찾아가 보았는데, 첫 방문부터 자석에 끌리듯 마음이 향했다. 남편과 이심전심으로 이곳에 다니기로 결정하고는 교인 등록을 했다. 등록 필수과정인 새가족반 모임에 참석할 때 어느 곳에 봉사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글과 관련된 곳이면 좋겠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분이 그 말을 새겨듣고는, 내게 연락을 해 왔다. 우리 교회에서 잡지를 창간하다는데, 참여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         인생의 멋지고 신기한 기회들


될 일은 그렇게 쉽고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구나 싶었다. 얼떨결에 잡지 창간호에 참여하게 된 후로는 9년간을 쉬임 없이 잡지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엔 두 달, 나중엔 석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마감을 맞추느라 바쁘게 원고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버겁게 느껴질 때도 많았지만, 영감이 되는 좋은 이야기들을 만날 때면 절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혼자 쓰라고 하면 잘 쓰지 못할 텐데,  마감이 있으면 억지로라도 쓰게 되니 이 또한 나에게 약이 되었을 것이다. 

교회에는 도서관이 있어서 원하는 책을 빌려 보거나 희망 도서를 신청할 수 있었다. 서점도 잘 없거니와 책값도 비싸기 때문에 여기서는 한국 책을 쉽게 사 보지 못했는데, 도서관이 있으니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게 되어 참 좋았다. 한번은 교회 도서관 주최로 독후감 공모전이 있었는데, 이 기회를 놓칠라 얼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냈다. 아무래도 응모한 사람이 적었나 보다. 내가 1등으로 당선된 것이다! 받은 상품권으로 당시 인기 절정의 게임기인 위(Wii)를 한 대 장만하며 당선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운동 목적으로 구매해 놓고는, 전시용으로 잘 모셔 놓고 있다지만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참 감사했다. 이 미국 땅에서 한국 책을 손쉽게 접할 수 있고, 독후감 공모전에 참가할 수도 있으며, 잡지를 편집하며 글과 관련된 경험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이. 

그런데 이곳 회사에서도 한글과 관련된 뜻밖의 기회를 만날 줄이야. 우리 부서 부장님이 몸이 안 좋아 입원을 하게 되어 사장님과 함께 병문안을 가던 길이었다. 사장님이 내 전공과 경력을 묻길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말을 듣고 그는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우리 회사 사보를 만들어 보는 게 어때요?” 

놀랍고 기쁘면서도, 일회성 발언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사장님은 그 마음 변치 않고 회사에서 나를 따로 부르더니 추진을 해보라고 시동을 걸어 주었다.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도, 안내데스크에서 창고 사무실로 옮기게 된 것만도 내겐 커다란 선물이었는데, 회사에서 사보를 만들게 되다니! 물론 기존의 업무에서 무엇 하나 줄어드는 것 없이, 새로운 일복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지만 말이다. 


-         일할 맛이 더해 가다


창고에서 콕 박혀 있던 내가 이제는 영업부, 회계부, 디자인 부서 등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편집회의를 주관하기 시작했다. 따로 만나 대화를 나누기 쉽지 않은 회사 사람들과 이렇게 편집팀으로 뭉쳐서 함께 아이디어를 짜내는 상황 자체가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우선은 우리가 만들게 될 사보 이름을 공모했고, 콘텐츠를 기획한 후에 역할 분담하여 기사 작성에 들어갔다. 회사 제품 및 회사 소개, 직원 인터뷰, 부서 안내 등은 빠질 수 없는 항목. 재미나게 기획 기사를 꾸며 보면서 에세이, 맛집, 여행지, 회사 소식 등을 맛깔스럽게 골고루 담아내려 노력했다. 교정 작업을 거쳐 예쁜 디자인의 옷을 입고 나니 드디어 첫 창간호 탄생!

제일 뒷면에 만든 사람 이름을 적는데, 내 이름 앞에 ‘편집자’라고 명칭을 붙이려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받침 ‘o’ 하나 더 붙여서 ‘편집장’이라 정정해 주었다. 받침 하나에 갑자기 신분 상승한 듯한 기분, 참 괜찮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보는 회사 직원들에게 우선 배포되었고, 한국 손님들에게도 보내 드렸다. 아무쪼록 회사를 긍정적으로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했기를. 지위를 막론하고 사내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웃고 즐겁게 고민하던 그 시간들은 내게 일할 맛을 더해 주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아이디어도 점점 풍성해지면서 사보 형식도 더 발전해 나갔다.   


이민 생활에서 만나는 여러 장벽들로 인해 나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보일 때도 많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절로 나올 법한 이 타향살이에서, 나의 작은 재능과 경험을 살려 일할 수 있음이 큰 격려가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필요한 존재로 쓰임 받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내가 있는 그곳을 좀 더 사랑하게 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세계의 문을 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