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나 Oct 31. 2018

내 친구는 어디에

새로운 인연 맺어가기

마침내 겨울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 학교가 시작되었다. 등교 전날에 영어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을 치렀는데, 특히 작은애는 수줍음이 많아서 혹시 선생님 앞에서 말도 잘 못해서 점수를 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려도 되었는데, 다행히 잘 통과하여 둘 다 ESL이 필요 없는 일반 반으로 배정받았다. 이리하여 첫 등교 날, 아이 둘을 데리고서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교실 앞에는 벌써 아이들이 줄을 서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 6학년 큰아이 담임은 착하게 보이는 젊은 여 선생님, 1학년 작은아이 담임은 세련되어 보이는 할머니 선생님이었다. 두 사람 다 친절하게 보여서 일단 마음이 놓였다. 그 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학급 친구들. 과연 한국 아이들이 같은 반에 있을까? 아무래도 같은 한국 친구들끼리 더 쉽게 친해질 테고 그러면 학교 생활에도 더 수월하게 적응할 테니 말이다. 


이전에 다니던 뉴욕 학교에서도 우리 아이들 베스트 프렌즈는 한국 애들이었다. 동네 가까이에 살아서 학교가 끝나면 숙제도 같이 하고 신나게 놀기도 많이 놀았다. 그 학교는 매해 구정 때면 엄마들이 자원봉사로 아이들에게 전통 무용 등을 지도하여 한중 합작으로 설날 행사를 가질 정도로 한국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도 나 또한 외롭지 않고 바쁘고도 재미있게 잘 지냈지만, 단점은 내 영어가 늘지 않는다는 것과, 공부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 그래서 내심 드는 생각은,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지는 않고, 그렇다고 아예 없지는 않은, 여러 인종이 적당히 섞인 학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미리 들여다본 학교 정보만 봐서는 이곳이 바로 그런 이상적인 비율의 학교가 아닐까 기대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아무리 둘러봐도 한국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바인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들었기에 학교에도 한국 사람들이 좀 있으리라 예상을 했는데, 그곳은 새로 지은 단지 쪽의 이야기이지 얼바인에서도 오래된 동네에 속하는 이 지역엔 동양 애들이 많지 않았고 그 몇 프로 안 되는 아시안 비율엔 인도 애들이 한몫을 차치한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한국 아이일까, 한국 엄마일까 하고 다가갔는데 중국 말이 들려서 실망스러웠던 적도 몇 번.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고, 내가 다른 엄마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영어로 대화가 길게 이어지기도 쉽지 않았다. 나야 그렇다 쳐도 우리 아이들이 떠나온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참 마음이 짠했다. 뉴욕과 끊임없이 비교를 하며, 보고 싶은 친구 이름을 불러대며, 어느 날은 눈물을 훔치며 왜 이곳에 왔냐고 항의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저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디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학교 생활도 즐겁게 잘 감당하기를.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아침,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어느 동양인 엄마와 마주쳤다. 평소에 눈에 잘 안 띄는 엄마였는데, 갑자기 내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Are you Korean? 한국 사람이세요?" 세상에, 한국말이었다! 그 집 아들과 우리 작은딸이 같은 반이었는데, 그 엄마는 일본에서 재일교포인 한국 부모 밑에서 자라나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왔고, 미국 사람과 결혼한 엄마였다. 혈통은 한국이나 사실 언어와 문화가 일본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어눌하나마 한국말을 좀 할 수 있었기에 그저 반갑게 여겨졌다. 반가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작은애 학년에 한국 여자애 두 명이 더 있다며 내게 그 엄마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할렐루야! 천사 같은 그 엄마가 그렇게 다리가 되어 주어 나는 우리 학교의 한국 엄마들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엄마들을 통해 또 다른 학년의 한국 엄마들과도 인사 나누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엄마들의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학교에 한국 아이들이 적어서 학부모들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음 따뜻한 그 엄마들과 함께 있으면 참 좋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많은 고민과 질문과 정보들을 나누며 함께 격려해 줄 수 있는 좋은 동반자들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학교를 오고 가는 동안 비단 한국 엄마들뿐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베트남, 브라질 등 다양한 인종의 엄마들을 만나게 되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안부라도 더 묻다 보면 내가 미국에 있음을 실감하곤 한다.


우리 아이들은 조금 더 시련(?)을 겪었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친구들 관계에 끼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데, 숱한 외로움과 갈등의 시간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말문을 터 갔다. 작은 아이는 스스로가 친구들 사이에 끼려고 노력을 하면서 좌충우돌했고, 그에 반해 좀처럼 먼저 다가가지 않는 스타일의 큰아이는 더욱 고독해 보여서 마음이 안쓰러웠는데, 다른 반의 두 조용한 중국 및 대만 아이 둘과 말문을 트더니 어느덧 친구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보니 우리 아이를 보며 반가워해 주는 그 친구들이 내게는 더 반갑고 고맙게만 여겨졌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중학교에 올라간 큰아이는 이제 학교와 교회에서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서 이제는 친구들과 폰으로 톡을 나누고 수다를 떠느라 바쁜 사춘기가 되었고, 작은 아이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밝게 웃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얼굴이 뽀샤시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태양에 제법 그을린 얼굴이 되더니 뉴욕에 가자는 소리도 이전보다 쑥 줄었다. 그래,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기도하고 인내하며 기다려 주면, 그렇게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간다. 그 터닝 포인트에 친구가 있다. 그 어느 곳이든 친구가 생기면 그곳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지는 법이니. 나 또한 그렇다. 지난 이민 생활을 돌아보며, 정말로 말벗이 절실했던 순간들마다 내게 다가와 인연이 되어 준 만남들 덕분에 인생의 고개들을 외롭지 않게 잘 넘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 이사 온 이곳에서 내 말벗이 되어 준 친구들 덕분에 이곳이 더 살 만한 곳으로 되어 간다.  


우리 작은딸은 가끔 물어본다. "엄마의 베스트 프렌드는 누구야?" 하나만 고르라는데 참 난감하다. 글쎄, 나이가 들다 보니 때마다 장소마다 베스트 프렌드가 바뀌어 온 것을 우리 딸은 이해하려나. 나의 친구가 되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고마운 옛 친구에게 안부 인사라도 해봐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