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다니게 될 그곳은
집이 결정되자마자 바로 달려간 곳은 얼바인 교육구(Irvine Unified School District) 사무실. 아이들을 학교에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곧 아이가 안전히 잘 있다는 하나의 사인이 될 테고, 비로소 뉴욕의 이전 학교들도 마음을 놓을 것이니.
사무실에서 담당자를 만나서 상담을 하는데, 아이들이 어떤 학년으로 들어갈지에 대해 약간의 고민이 있었다. 이곳에서 학년을 나누는 기준이 뉴욕의 학교와 다르기 때문이다. 9월 1일 생일자를 기준으로 학년을 나누는 얼바인 교육구의 기준에 따르면, 9월 중순이 생일인 우리 작은 아이는 지금보다 한 학년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만, 이전 학교에서 공부하다 온 것을 인정받아 다행히도 같은 학년에 들어가도 된다고 했다. 6학년인 큰아이도 같은 학년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만 이전 뉴욕 학교에서는 5학년까지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6학년부터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여기서는 6학년까지가 초등학교이므로 다시 초등학생이 된 것이다. 초등학교를 두 번 졸업하는 것이 되므로 좀 이상하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두 아이를 한꺼번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올 수 있으므로 더 편리해진 셈이다. 또한 큰아이가 중학교에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잘된 일인 것처럼 여겨졌다.
우리가 배정받은 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S 초등학교였다. 우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류들을 들고 학교를 찾아갔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서류 중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은 주소 증명이었다. 보통 전기나 가스, 수도, 인터넷 회사 등에서 보내온 메일을 요구하는데, 서비스를 신청하고 청구서 메일을 받기까지는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리기에 당장 구할 수 없는 서류들이었다. 다행히도 주소가 찍힌 서비스 신청 내역을 가지고 오면 우선 등록을 해 주고 나중에 메일을 받게 되면 제출해도 된다고 해서 서둘러 서류를 준비했다. 그렇게 해서 등록을 마친 날짜가 12월 중순의 금요일. 정말 아슬아슬했던 것은, 바로 다음 주부터 학교가 2주간 겨울방학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만일 하루라도 더 오래 걸렸으면 방학으로 넘어가서 등록이 지연되었을 테고, 겨울방학이 이곳보다 더 늦게 시작하는 뉴욕 학교에서 계속 독촉 전화를 받았을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만 하나의 절차가 더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비록 미국 학교를 다녔음에도 다시 영어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중 언어권 가정의 자녀인 경우 피할 수 없는 관문이었다. 뉴욕에서 벌써 다 테스트를 통과했음에도 다시 본다는 것이 다소 억울하기도 했지만, 어쩌랴. 캘리포니아에선 캘리포니아의 법을 따르는 수밖에. 오피스에서 방학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로 시험 날짜를 잡아 주어서 아이들은 그 시험을 치른 후에 정식 반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래, 얘들아, 너희가 뉴욕에서 학교 다니며 쌓았던 영어 실력을 보여 주려무나~
그렇게 학교 등록을 마치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홀가분한지! 그제야 찬찬히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아담한 사이즈의 학교였다. 강당도 작고, 실내 체육관도 없고, 2층도 없고 다 1층인 데다가 교실도 컨테이너를 이어서 교실로 만들어 놓은 듯한 참 희한한 구조물이었다. 3층짜리 벽돌 건물 안에 커다란 강당과 실내 체육관과 각 반들이 다 한 건물 안에 연결되어 있었던 뉴욕의 학교만 보다가 이렇게 생긴 학교를 처음 보니 참 낯설게 여겨졌다. 뒤늦게 설명을 들으니, 지진의 영향 때문에 대체로 건물을 높게 짓지 않고 또한 철근보다 목재로 짓는다고 했다. 허리케인과 눈폭풍을 피해서 캘리포니아로 왔더니 여기는 지진이 도사리고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생각하면 두렵지만, 어차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니 지금 주어진 이 순간순간을 감사하며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2주간 주어진 방학도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누리기로.
그러고 보니 캘리포니아에 온 지도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아직 제대로 놀러 가지도 못했다. 이제 중요한 미션을 마치고 나니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안 그래도 계속 뉴욕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에게 캘리포니아의 좋은 인상을 남겨 주어야 할 텐데. 캘리의 자랑인 인앤아웃(In N Out) 햄버거도 먹고 칙필레(Chick-fil-A)의 치킨 메뉴도 먹고 엘뽀요로꼬(Elpollo loco)에서 그릴 치킨과 또띠야의 절묘한 조화도 실컷 맛보았다. 이제는 캘리의 명물인 놀이동산 차례. 흠, 디즈니랜드는 너무 비싸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좀 멀고. 그래서 결정한 곳이 너츠 베리 팜(Knotts Berry Farm)이었다. 스누피를 테마로 한 놀이동산인데,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즐길 수 있는 여러 놀이기구와 볼만한 쇼들이 있고 겨울에는 특히 아이스 스케이팅 쇼가 인기 만점이다. 집에서 30-40분 거리이니 그리 멀지도 않고, 1년 회원권이 그리 비싸지도 않아서 우리에겐 제일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십여 년 전 큰아이가 꼬마였을 때 방문한 적이 있던 이곳을 다시 찾고 보니 추억 또한 새록새록했다. 이제는 이곳에서 살게 되어 회원권을 끊게 되었다는 것에 실감 나기도 하면서.
사실 나와 우리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그런 놀이동산이 아닌 바닷가였다. 특히 라구나 비치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 걷노라면 그 풍경에 절로 카메라 버튼이 눌러지고 마음 또한 평온해진다. 라구나 비치의 아트 갤러리들을 둘러보며 캔디 가게에서 다양한 캔디를 한 움큼 사 먹고 군것질하는 재미도 쏠쏠~ 그렇게 따뜻한 바닷가 바람을 쐬며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상하고 낯설어서 더욱 마음이 싱숭생숭한, 그런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캘리에서의 색다른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