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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Jan 03. 2021

달라도 너무 달라진 두 번째 미션  

고등학교 수학을 영어로 가르치라고?

여름방학 기간 중 기다리던 메일이 도착했다. 교육구에서 배정해 준 다음 학교는 어덜트 트랜지셔널 스쿨(Adult Transitional School). 아하, 실은 예상했던 곳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마친 특수교육 학생들이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교육을 받는 이곳에, 지난해 내가 맡았던 학생도 입학할 예정이었다. 학생의 어머니도 내가 따라가 주기를 바랐고, 함께 일했던 간호사도 나와 계속 같이 하길 원했다. 나로서도 마음의 부담 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스케줄이었다. 이 학교는 다른 초중교 학교들과 달리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나기에 방과 후 우리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많은 고민 끝에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교육구 오피스에 내 사정을 알렸고, 배정된 학교에도 스케줄을 바꿔 줄 수 있는지 요청해 보았다. 그랬더니 출근을 앞둔 전날 저녁에 다른 학교로 배정되었다고 알려주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을 하게 되리란 설명도 없이 학교와 시간, 장소만 적혀 있었다. 다소 황당했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자초한 일이니. 


그다음 날, 전혀 낯선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떨려왔다. 이날은 전체 교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면서 학생들을 맞이할 개학 준비를 하는 날이었다. 학교에 일찍 도착해서 꿔다 놓은 보리자루 마냥 어색하게 앉아 있던 내게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이전 학교에서 함께 일했던 보조교사가 아닌가. 오, 나에겐 그녀가 구세주처럼 반가웠다.   


원래 예전 학교에서도 정보통이었던 그녀를 통해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예전 학교는 졸업생에 비해 신입생 숫자가 더 적어서 교직원 감축이 불가피했고, 자신도 그래서 이 학교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학교엔 올해 처음으로 ‘moderate/severe’(중증 장애) 반에 생기는데 학생은 다섯 명 정도이고 담당 선생님도 새로 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와 함께 그 반에서 일하게 되겠구나 생각하니, 더욱 안심이 되었다. 


학교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연륜이 있어 보이는 스페니시 출신 여 교장 선생님이 유쾌하게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도, 함께 웃으며 친근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교사들 모습들도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나를 포함해 새로 온 모든 교직원들을 소개해 주는 상냥함도 좋았다. 마침내 개별 부서 미팅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당연히 ‘moderate/severe’ 반으로 배정된 줄 알았는데, 담당 선생님이 내게 말하길 여긴 벌써 자리가 채워졌다는 것이 아닌가. 함께 일했던 보조교사는 그 선생님을 따라가며 안타깝게 나를 바라봤다. 서글펐다. 과연 내 자리는 어디에… 


우왕좌왕하던 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또 다른 특수교육 부서로 향했다. 그런데 거기엔 한국 사람이 있는 게 아닌가. 내 얼굴에 또다시 화색이 돌았다. 그녀를 통해 이곳에 관한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Directed Studies Room’이라 불리는 이곳에선 특수교육 서비스를 받는 학생들이 와서 숙제나 공부를 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mild’한 부류에 속해 있어서 대부분 일반 과목을 수강하고 있기에 고등학교 수학, 과학, 영어, 역사 등의 숙제를 도와줘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내 얼굴에 금세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왕이면 영어를 더 많이 쓸 수 있고, 나도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곳이면 더 좋겠다고 막연히 소망하긴 했다. 하지만 당장 영어로 고등학교 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갑자기 수준이 너무 높아진 게 아닌가. 눈앞이 아득해졌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이미 한번 요청해서 옮겼기 때문에 일단은 이곳에 나 자신을 맞추도록 노력하는 게 우선이리라.  


첫날은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각 해당 교시마다 학생들이 교실에 모이면, 담당 선생님이 공지사항 등을 이야기하고, 보조교사들이 돌아다니면서 출석 체크를 하면서 공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본다. 학생이 도움을 요청하면 옆에 앉아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게 학생을 도와주려면, 내가 잘하는 과목이 하나라도 있어야 했다. 그나마 수학이 제일 도전할 만해 보였다. 말을 길게 할 필요 없이, 어떻게 푸는지 보여만 줘도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수학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고등학교 수학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할 일이 없을 땐 학생들 옆에 앉아 공부를 해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고등학교 교과서를 펼치고 틈나는 대로 들여다봤다. 연산 등의 쉬운 문제는 그래도 바로 도움을 줄 수 있었지만, 영어로 수학 용어를 구사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래서 집에서는 칸 아카데미 등 온라인 수학 강의를 들으며 수학 용어와 문제를 익혀 나갔다.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은 어느덧 잦아들고 있었다. 조금씩 싹트는 자신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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