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나 Dec 23. 2020

근무 첫해, 시작이 반

미국 특수교육 이야기 3

고대하던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무려 2주! 미국에선 여름방학을 제외하고는 학기 중 가장 긴, 꿀처럼 달콤한 방학이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Stay at home’ 행정명령이 떨어진 이곳 캘리포니아에선 집 밖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 집 안에서 쉼을 즐기며 그동안 못다 했던 일들을 두루 챙겨보리라 결심해 본다. 계속 미뤄두어 늘 미안했던, 글쓰기를 비롯해서 말이다. 미국 학교에 특수교육 보조 교사로 일한 지도  3년 차로 접어들었는데, 그동안의 경험들도 압축적으로 담아보리라 의욕을 불태우면서 말이다. 




2018년, 특수교육 보조 교사로 일을 시작한 근무 첫 해. 내가 덩치 큰 고등학생들을, 그것도 영어로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처음엔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시간은 나의 편이었다. 정해진 루틴에 익숙해지니 학생을 돌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남매 학생을 함께 돌보는 간호사와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 속도감 넘치는 현장 영어를 알아듣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지만, 그러면서 내 귀도, 입도 더욱 틔여가리라 생각하며 힘을 얻었다. 


특수교육 보조교사도 여러 가지 역할로 나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학생의 장애 정도에 따라 특수 학급에 배정되어 일대일로 학생을 돌보는 역할이 있고, 맡은 학생이 고등학교 일반 수업을 듣는다면 같이 수업을 따라다니면서 도와주는 역할도 있다. 꼭 일대일이 아니라도 특수 학급 선생님을 보조하며 반 아이들을 전체적으로 도와줄 수도 있고, 특수교육 서비스를 받는 (주로 증상이 경미한) 학생들이 일반 수업을 잘 따라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이처럼 학생들이 어떤 서비스를 받느냐에 따라 보조 교사의 역할도 달라진다. 


나 같은 경우, 일을 시작한 첫해에 특수 학급에 배정되어서 담당 선생님 밑에서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잘 모르면 언제든지 물어볼 선생님과 동료들이 있어서 든든했고, 전반적으로 특수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엿볼 수 있었던 것도 유익했으니 말이다. 한 달에 한 번씩은 함께 야외로 나가서 동물원 구경, 운동(볼링이나 무술 등) 체험, 도서관 방문, 쇼핑, 레스토랑 식사 등 여러 활동을 체험하는 시간도 좋았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일반 고등학생들이 찾아와 같이 점심을 먹는 시간이 있는데,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마련해 준 선생님들의 아이디어도 좋았고, 매주마다 찾아와 주는 학생들도 고마웠다. 졸업식 시즌이 다가와서는, 프롬 파티에 참석하는 특수 학급 학생들을 위해 파트너로 자청해 준 일반 고등학생들과, 그 옆에서 수줍은 미소를 짓던 우리 학생들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며 존중하고 배려해 주는 모습은 언제 봐도 흐뭇한 장면이었다.  


일하면서 순탄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기복이 심하거나 발작 증세가 있는 어떤 학생들은 순식간에 위협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통제가 쉽지 않아 한동안 씨름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갑자기 학생에게서 발길질을 당하거나 할큄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경험 많은 교사들이 발 빠르게 나서서 학생들이 진정될 때까지 도와주고, 우리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침을 받을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함께 일하는 교직원들은 매주 한 번씩 회의를 하고, 맛있는 음식도 서로 나누며, 복권도 공동 구매하는 등 아기자기한 삶의 재미를 함께 나누었다. 사실 그때의 나는 그들의 모든 유머와 빠른 말들과 미국식 행동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격의 없이 서로 편안하게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만큼은 즐길 수 있었다. 다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론 언제쯤 저 말들이 다 들리려나 나 자신도 몹시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어느덧 한 해가 끝나면서 내게도 변화의 시간이 찾아왔다. 내가 맡았던 학생이 졸업을 하게 되면서 내 역할도 달라져야 했다. 사실 내 소속은 이 학교가 아닌, 얼바인 교육구이기 때문에 교육구에서 각 학교나 학생의 필요에 따라 배정해 주는 곳으로 가는 게 내 운명이다. 과연 나는 이 학교에 남게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될 것인가. 익숙한 곳도 좋겠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학생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고, 나도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곳을 막연히 소망하면서. 아무튼 일단 미국 학교에 발을 디뎌서 무사히 한 해를 마쳤으니 시작이 반이었다. 이제 다음 행선지는 여름방학에 결정될 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폐 학생 M과의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