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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Jul 01. 2020

자폐 학생 M과의 만남

함께 걷는 법을 배우며

내가 일대일로 맡은 학생은 다른 아이들과 스케줄이 달랐다.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와서 더 일찍 가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다른 학생들보다 짧았다. 내가 근무하는 5시간보다 더 짧게 학교에 머물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내게는 남는 시간이 생겼다.  


사실 일이 없는 것처럼 뻘쭘하고 곤혹스러운 것도 없다. 다행히 우리에겐 아트 재료를 준비하는 일거리가 늘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격일로 아트 활동을 했는데, 이를 위해 작년에 했던 아트 샘플을 꺼내서 아이들 숫자에 맞춰서 재료를 준비해 놓거나 새로 아이디어를 짜서 재료를 만들어 놓는 일이었다. 이마저도 할 일이 없으면, 물품 정리를 하거나 청소 등을 했는데, 솔직히 학생을 돌보는 일이 가장 좋았다. 맡겨만 준다면 말이다. 

어느 날은 담당 학생을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데, 내게 임무가 떨어졌다. 다른 반의 학생을 도우라는 것이었다. 그 학생을 맡은 보조교사는 일찍 와서 조금 더 빨리 가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내가 이어서 봐주면 됐다. 내게 또 다른 기회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해서 만나게 된 학생 M은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였다. 신체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 아이는 언어 표현이 힘들었지만, 짧은 단어로 의사 표현을 할 수는 있었다. 걸핏하면 코를 톡톡 두드리며 “Go home!” 외치는 아이는 버스 타고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제일 좋아하는 일은 필통 뚜껑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기. 손가락으로 튕길 때 나는 소리를 좋아하는 듯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할 수는 없었기에, 학교에서는 아이가 과제를 잘 해내면 보상으로 필통을 튕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항상 들고 다니는 칭찬 차트(reward chart)가 있어서 아이가 잘할 때마다 바로 칭찬해 주면서 하나씩 찍찍이를 붙여 준다. 목표했던 5개가 다 채워지면 타이머로 시간을 정해 놓은 후 필통을 튕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담당 학생이 떠난 후 한 시간이 채 못 되는 시간 동안 학생 M과 함께 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다른 교실에서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볼 수 있고, 다른 학생을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도 경험할 수 있었으니 내겐 소중한 시간이었다. 격일로 돌아가면서 하루는 체육 시간을 보조해 주었고, 또 다른 하루는 생활 훈련 시간을 도와주었다. 종이 분쇄, 청소, 빨래 개기, 기프트 카드 분류, 봉투 넣기 등등 아이가 맡겨진 임무를 잘 감당하도록 옆에서 격려해 주었고, 체육 시간에는 운동을 싫어하는 아이를 달래며 공놀이나 원반 던지기 등을 함께 하며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특수교육 학생들을 위해 따로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재미있게 체육을 지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하루는 아침에도 M을 봐달라는 선생님 지시가 떨어졌다. 아이는 컴퓨터를 앞에 두고서 자신의 신상 정보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 입력하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나서 낑낑대고 있었다. 옆에서 도와주는데 내가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글자가 헝클어졌다. 이런 내 모습에 아이는 깔깔대며 좋아하는 게 아닌가. 우린 함께 웃으며 입력을 마쳤고, 그 여세를 몰아서 나머지 수업도 기분 좋게 마칠 수 있었다. 선생님이 나중에 “오늘 M이 나랑 같이 하면서 많이 웃었다고 하네요?” 하고 말하는데, 내 기분도 만점! 


잘하는 듯하다가도 아이는 갑자기 도망쳐 버리곤 했다. 처음엔 급한 마음에 막 쫓아가면서 손으로 붙잡으려 했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며 시범을 보여 주었다. 옆으로 아이를 쫓아가면서 방향을 인도하는 것이다. 아이를 억지로 잡기보다는 더 오래 걸리더라도 부드럽고도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방법을 택하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아이를 다시 제자리로 오게 하기까지 더 쫓아다녀야 했지만 말이다. 


아이가 가끔씩 들어가는 방이 있었다. 큰 공과 작은 공들이 흩어져 있는 작은 방인데, 주로 자폐 증상이 있는 학생들이 그 방에 들어가서 쉬고 오는 방이었다. 선생님들은 학생이 그리로 들어가면 안정을 찾고 다시 나올 때까지 밖에서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가끔씩 괜찮냐고 물어봐 주면서. 아이를 강압적으로 억지로 끌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는 교육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한편으로 슬며시 반성도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는 내 속도대로 하지 못한다고 답답해하며 다그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아이에게 알맞은 목표를 정해 주지 못하고, 그때그때 칭찬하며 격려해 주지 못했던 때가 또 얼마나 많았는가를…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함께 걷는 법을.  


아차 하는 순간에 K가 사라졌다. 노란색 스쿨버스를 보더니 냅다 밖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Go home!”을 신나게 외치며 말이다. 겨우 아이를 따라잡고는 버스 쪽으로 데려다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미소를 바라보며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야호! 나도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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