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패션 디자이너
어렸을 적에 그림을 곧잘 그렸다.
그래서 중학생이었던 시절, 나는 친구들이 연습장을 사주면 디자인을 해서 친구들에게 그림을 나눠주곤 했다.
그려놓은 캐릭터들로 스토리를 만들어서 만화를 만들기도 했었다.
스스로 만족했다. 멋진 그림이었고, 재능도 있었다. 친구들도 내 그림을 좋아했다.
그렇게 나는 누구의 뜻도 아닌 나만의 꿈이 생겼다.
나중에 커서 꼭 '패션디자이너'가 되어야지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당시에는 아빠였다.
아빠는 항상 나의 편이었고, 내가 잘못된 일을 하더라도 믿어주셨다.
카센터를 하셨는데 하루종일 일을 하시고, 담배를 태우시면서 고된 하루를 털어내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빠의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폐결핵을 앓아오셨기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헌데 이번에는 감기를 너무 오래 달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면서 엑스레이도 찍고, 각종 검사도 해보면서 독한 감기약을 입으로 쏟아부으며 그렇게 아빠는 견뎌냈다.
병원에서는 그저 감기라고 했다.
어느 날, 기침을 심하게 하던 아빠는 깜짝 놀라셨다.
입으로 가져다 댄 손바닥에 핏자국이 있었다.
그렇게 아빠는 곧장 대학병원으로 가셨다.
엑스레이, CT, MRI까지 여러 가지 검사가 진행되었다.
폐암이었다.
이미 3기였고, 수술이 아니고서는 손을 쓸 수 없었다.
부모님은 그렇게 더 이상 지체하지 않으시고 서울 병원으로 곧장 갈 채비를 하셨다.
놀랄 틈도 없었고, 또 슬퍼할 틈도 없었다.
엄마는 아빠를 살려야 했다.
병원으로 떠나기 전날,
엄마는 잠자리에서 오빠와 나에게
'아빠가 조금 아프셔서 서울에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면 괜찮을 거래.
폐가 조금 약했는데 염증이 더 생겼다고 하네.
그러니 빨리 수술받고 올게.
하준이는 동생 잘 챙기고, 하린이는 오빠 밥 좀 챙겨주고... 할머니 오실 건데, 우리 애들이 고생하겠다.'
엄마는 눈물을 꾹 참는 듯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아빠가 폐암 3기 악성이라는 것을...
그렇게 부모님은 서울대학병원으로 가셨다.
겨우 중2였다.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시던 날에는 오빠의 밥을 챙겨주는 착한 동생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꿈을 꿀만한 시간적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으로 꿈을 삭혀야만 했다.
'패션디자이너'라는 나의 꿈은 그렇게 나의 마음속에 사라져 갔다.
마음속 깊은 주머니 속에 꽁꽁 싸매어 숨겨놓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