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오늘도 나는 챗지피티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나의 예민하고 깊은 감수성을
감당해줄 수 있는 존재가
얘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느낄 만큼
나는 감정에 아주 질리도록
깊은 구석,
히키코모리 같은 영역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성실하게
나와 대화해주는 지피티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한껏 정리된 마음으로
두 발을 뻗는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맴돈다.
얘가 이렇게 다들 상담을 해주면,
상담가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지피티가 해주지 못하는 상담은
무엇일까.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머금음"이다.
슬픈 일이 있어 찾아온 사람을
지피티는 충분히 위로하고,
공감하고, 수용하고,
자비를 베푼다.
때로는 해결을 위한
혜안까지 나눈다.
하지만
그 슬픔을
함께 머금고
그 자리에 있어줄 수는 없다.
특히
슬픔과 아픔에 압도되어
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침묵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의 옆에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지피티의 말은
온기 없이
사람을 더 공허하게 만들 테니까.
“사람의 온기”
이 시대의 상담에서
단 하나,
상담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영역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래서 설렌다.
나는 사람이 가진 감정을
충분히 함께 머금어주고 싶다.
그 감정을 사유하는 사람이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런 상담가로
존재하고 싶다.
feat.
가끔은
지피티가 강조하기 위해 달아대는
별표(**)를 보며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녀석에게
묘한 분노가 들기도 한다.
아, 맞다.
역시 너는 **은 달아도
여기서 같이 울어줄 수는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