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을 파고, 너는 생각을 파고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현상적으로 드러난 감정에서
멈추지 않는다.
보이는 감정 너머에 있는
감정들,
메인 감정과 보조 감정들을
파고, 또 파고들어
이 행동의 근원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내는 걸 즐긴다.
“짜증 나서 그랬어.”
라는 말로 끝내지 않고.
사실은, 초조해서.
그 초조함이
저번의 그 상황에서
나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기억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는 무의식 중에
초조함을 느꼈고,
그 위에
짜증이라는 감정이
올라왔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러니까 나는
짜증이 난 게 아니라,
초조했던 거고,
그 초조함이
또다시 부정적인 피드백을
불러올까 봐
두려웠던 거다.
“아,
초조함이 만들어낸 두려움이
내 진짜 감정이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순간의
희열이란.
왜냐하면,
알고 나면
감정에 당하지 않게 되니까.
그래서 나는
내 감정 하나하나를
절대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관찰하고,
붙잡고,
그 감정의 근원줄기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나는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이 내면 여행을
꽤나 즐긴다.
심연을 찾아 헤매며
방황하다가,
그 알아차림 속에서
나는 종종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내 친구는
‘사고’로
똑같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생각의 꼬리를 무는 생각을
멈출 기세 없이 굴려,
모든 가능성과
모든 가설을 통과시키며
사고의 회로를
끝까지 다 돌린 뒤,
오차 범위를
최소화한
결론에 다다를 즈음,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맺음을 하며
희열을 느낀다.
결국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같았다.
우리는
사실 너무 다른데,
너무나도 똑같은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