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당신은 누굴 바라보시나요?
오늘(9월 30일)은 ㅇㅇ대병원에 다녀왔다. 수술이 확정되어 몇 가지 검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9월 10일에 의사 선생님을 만나 수술 의사를 밝혔고, 같은 날 피검사와 소변검사 두 가지를 했다. 수술 후 청력이 상할 수도 있어 비교를 위해 청력검사와 뇌 CT촬영도 해야 했지만, 예약이 밀려 같은 날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주 내에도 검사를 할 수 없어, 제일 빠르게 잡은 예약이 오늘이었다. 그나마도 청력 검사는 오전 10시, 뇌 CT는 오후 4시 30분에 예약되어 있어 그 사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신랑과 둘이 밥을 먹고 카페 데이트를 하였다. 음료도 마시고 찬찬히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누릴 만큼 누린 카페 데이트를 마친 뒤, 신랑이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하여 병원 근처 미용실을 검색했다. 남성 커트 만원. 나도 머리를 자를까 말까 고민 중이었는데, 커트 비용이 너무 싼 것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남성 위주의 속성으로 자르는 미용실인 듯해서이다. 막상 미용실에 들어서니 여성손님도 많아 나도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머리를 예쁘게 땋은 디자이너 선생님이 내 머리를 맡았다.
"어떻게 자르고 싶으신가요?"
"앞머리를 내고, 뒤쪽은 잘라 단발 느낌을 내고 싶어요. 그런데 한 달 뒤에 뇌 수술을 해야 해서 머리를 좀 밀게 될 것 같아요. 뒤쪽 잘라도 머리 밀 곳은 가려질까요?"
"큰 수술 앞두고 계시네요. 힘내시고 수술 잘 되셨으면 좋겠어요. 머리숱 많으셔서 충분히 커버될 거예요. 뒤에 조금 미셔도 예쁘실 거예요. "
"다행이네요."
쓱싹 -
디자이너 선생님의 몇 번의 가위질이 끝나고,
"고객님, 앞머리 내시는 스타일이 잘 어울리세요. 이 정도 길이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아요."
"고객님은 옆쪽에 볼륨 있는 것보다 붙는 게 예쁘시네요. "
"맞아요. 옆에 볼륨 있으면 안 어울리더라고요."
"어떠세요? 맘에 드세요?"
"네, 마음에 들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나는 뒤돌아 신랑을 바라보았다. 벌써 커트를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신랑을 향해 활짝 웃었다. 확 짧아진 머리를 한 신랑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새로 자른 내 머리가 맘에 들면서도 어색해서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2023년 방영했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연인>에서 “사람은 위기일 때 가장 의지되는 사람을 찾죠.”라는 대사가 나온다.
길채가 병자호란이라는 위기 속에서 장현을 바라보았듯, 나도 쑥스러움이라는 작은 위기 속에서 신랑을 바라보았다.
미용실을 나와, 신랑과 다시 병원으로 향하며 내가 쫑알댔다.
"여보, 내 서울 머리 어때? 예쁘지?"
서울머리도 하고,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다시 한번 확인한 뜻깊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