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거다. 틀린 게 아니다.
흔히들 그런 말을 한다.
'대체..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생각이 있는건가?'
나조차도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감정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망각을 하게 되는데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애기다.
난 날 낳아주신 부모님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이 익히 그렇듯이 생각의 깊은 곳에 그 분들에게 난 아직도 어리고 서툰 아들일 뿐이고
그러한 무의식에 깔린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행동들이 나를 옭아맬 때가 많다.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봐주지 않고
부모이기에, 자식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관점에서 오해가 시작된다.
사실 두,세걸음 물러나서 보면
자식으로써 내가 부모님을 이해해드리고 배려해드려야하는 것은 지당하다.
이건 내가 효자이거나 효심이 지극 정성해서 그렇다는게 아니다. 내가 하나의 생명체로써 태어나
그 분들에게 받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평생이 걸려도 갚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배려와 혜택이 오래 지속된다면 그걸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신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그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은 맞다.
그건 내가 부모로써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난 내 아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
내 자식을 위해 뭘 못하겠나 싶고, 끊임없이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게 부모 마음이다.
아들 입장에선 부모인 우리가 자신을 돌봐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자신의 마음과 생각도 있는데 우리가 안된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여섯 살짜리 우리 아들이 그런 말을 하는데, 마흔을 향해 가는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하겠나.
살다보니 그게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유발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이해하는게 아니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그러한,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내 부모가 실망스럽다고 내 부모가 아닌게 되진 않는다.
내 자식이 사고를 쳤다고, 아니 살인을 했다고 해도 내 자식이 아닐 순 없다.
이해와 인정의 차이.
이건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는데서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다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뭐 하나 같은 건 없다. 닮은게 있을 뿐이지.
성격, 취향, 가치관, 성향.
모든 것이 다르다.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헌데 사람들은 그룹이 되면 두 그룹으로 갈리는 일이 많다.
흔히 말하는 흑백논리와 비슷한데 뭐 아니면 도로 보고 있다는게 문제다.
선거철이 되면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투표 하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으로 갈려서 말이다.
투표 안하는 사람은 잘못되었다. 라고 얘기한다.
그래, 나라를 잘 이끌어갈 정당의 대표자를 잘 골라야 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내가 그 나라의 일원으로써 수행해야할 권리에 가깝다. 내가 가진 권리이자, 나라를 위한 일이고
미래를 위한 일이니 권리를 수행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권리를 수행하지 않는게 "잘못된 행동"이라고는 누구도 정의하지 않았다.
그게 범죄라면, 법에서 제재를 했을 것이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상황과 다름을 고려하지 않고 "잘못되었다" 라고 단정짓는 것이
바로 크게 잘못된 일이다. 정말 갈 수가 없었을수도 있다.
그냥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아예 모를수도 있고. (그럴 수 없다 라고 생각하면 거기서부터 잘못 된거라 본다)
실제로 나도 투표권을 최초로 얻었을 나이엔 한나라당?민주당?그게 뭔데? 수준이였다.
그런 사람한테 투표를 하라? 그래서 누굴 찍을까? 엄마 나 누구 찍어야 해?
그건 누군가의 성향이 누군가에게 강요되는 행동이다. 잘 모르면 안하는게 맞다. 그 한장의 표로 인해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까.
요즘 회사에 노조가 활동을 한다.
자주 그런 말이 나온다. 직장인으로써 요구해야할 일을 요구하는건 당연한 것이라고.
왜 이도 저도 아닌 중립을 지키느냐고.
자, 아까 투표얘기를 할 때 나라를 얘기했다.
나라는 내가 태어나면서 귀속되고 이 나라가 어떻게 되느냐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제 회사를 이야기해보자.
회사는 내가 선택해서 지원을 했고, 내가 노력해서 들어온 곳이다.
그런데, 뚜껑을 까보니 개판이다. 그럼 옮기는게 거의 80%는 맞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건 간에 잘못된 것을 잘못됬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그래, 이야기할 수 있고 제안할 수 있으며 건의할 수 있다. 그 행위 자체는 바람직하다.
우리 이런게 고쳐졌으면 좋겠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을 한다.
회사는 나라와 매우 흡사하다. 나라 정치판이 개판이듯 회사 정치판도 개판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나라엔 일단 내가 귀속되어 있다. (물론 이 귀속..바꿀수 있는건 아실꺼라 본다)
하지만 회사엔 내가 귀속되어 있지 않다.
계약을 했을 뿐이지, 내가 나를 그곳에 귀속시키지 않았다.
그럼 반대 입장도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회사을 일으켰다.
사업을 성공시켰고 믿을만한 사람을 "리더"라는 자리에 앉히며 조직을 성장시켰다.
수많은 일자리가 생겨났다. 채용이 지속되고 많고 많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 일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 일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회사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요구한다.
협상을 하자고. 그런데 그 협상 테이블은 협상이라기보단 협박이 오고가고
서로간의 감정선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이 녀석은 누군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이런 요구를 하는걸까.
그 아무개씨는 직원을 대표한단다. 내 회사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얼척이 없는 일이다..
누구의 편을 들자는게 아니다.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다는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양쪽 다 잘못된 것에 가깝겠지만..)
서로의 입장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며 겪어온 세월이 다를지언데,
그것을 인정하고 시작하는게 아니라 틀렸다고 지적을 하며 시작한다.
서로의 가치관이 다름에서 유발되는 차이가 점차 의견 차이를 만들고 패를 가른다.
노조의 시작은 올바른 의도에서였을지도 모르겠으나
흐름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그리고 감정이 더해지면서 싸움이 되어 간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싸움을 선택한다면 그것의 결말은 단순해진다.
"승리", "패배" 또는 "화해", "굴복"
어떤 결말로 가기 위해 그러한 방법을 쓰는 것인가
애초에 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 하는가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꼭 그러한 방법으로 접근했어야 했나?
꼭 그런 식으로 대처했어야 했나?
애초에 내가 자유롭게 떠날 "능력"이 있었다면 이러한 고민을 했을까?
나를 자유롭게 만들 "재력"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결국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에 의해 그러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누군가의 가치관이 자신과 같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비슷하기만해도 반가워야 하는게 맞다.
살면서 그런 사람 만나보기 힘드니까.
우린 모두 다르다.
아니 같은 사람은 없다.
이 생각을 염두하고 사람을 보고, 상황을 보자.
그러면 이해가, 아니 인정이 조금은 쉬워질 수 있다.
그러면 삶이 조금은, 편해지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