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는 보는 게? 아님 안 보는 게? 어떤 게 좋은 걸까?
아이맥 한대를 더 샀다.
당근마켓에 알림을 걸어놓고 근 한 달을 기다려서
맘에 드는 아이맥 한대를 찾아냈고,
2017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나온 27인치 아이맥을 구매했다.
당근이니 물론 현금이다.
사실 이 일은 커피숍의 불친절에서 시작됐다.
작업실을 차려두고, 월세를 내가면서
작업실을 안 가고 커피숍을 갔었다.
사람들의 소리가 좋았고, 넓은 공간이 좋았고,
그리고 바깥 풍경이 좋았다.
그래서 책상과 컴퓨터를 뺐다. 그리고 결국, 작업실을 빼고.
커피숍을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직원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모를 누군가가 내게 불친절을 시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모든 감각이, 그리고 남의 시선에도 예민한 사람이다.
게다가 남의 생각이 읽힌다. 예민하니 그런 듯도 하다.
커피잔을 던지듯 건네고,
그 행사 어제 끝났어요. 하는 그 말뽄새가 가히 사람 신경을 건드린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다. 예의 바른 사람이기도 하다.
게다 나의 자존감 또한 그리 낮지 않다.
그러니 상대방이 나에게 불친절하다면 불친절한 거였다.
그런데,
나는 회피형 인간이다. 평화주의자이기도 하다.
그 앞에서
지금 커피잔을 건네듯 주신 건가요? 불편함을 표현하지도.
지금 그 말투가 뭔가요? 저 손님이거든요? 하며 기분 나쁨을 표현하지도 못한다.
왜냐, 나는 회피형 인간에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차라리 미친년처럼 갑질이라도 해 보고 싶지만
그렇게는 또 못하겠다. 나는 고고하고 럭셔리 하게 살고 싶다.
결국, 나는 커피숍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좋아하던 커피숍이었다.
커피맛은 개떡 같았지만,
책상과 의자 높이가 어깨를 아프게 하지 않았고,
뻥 뚫린 바깥 풍경은 내 침침한 눈을 시원하게 했다.
가끔 그곳에서 작업하다 우연히 만나는 동네 지인들도 좋았다.
킥보드를 타고 달리며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집에서부터의 딱 그 거리도 좋았다.
그래서 그 커피숍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커피숍을 가지 않는다.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커피숍을 가지 않겠다고 하자.
남편이 선언한다 -컴퓨터와 책상을 옮겨줄 수 없다고
그래서 나는 흔쾌히 답했다.
괜찮아. 새로 사면 되지. -
그렇게 집에 아이맥을 두고 중고 아이맥을 구매하게 됐다.
그렇게 집에 모션데스크를 두고 원목 테이블을 구매하게 됐다.
절대 옮겨 줄 수 없다던 남편은
원목 테이블과 의자를 구매하는데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대한 공헌을 하고,
트럭으로 옮겨주고 엘베없는 건물 작업실 3층까지 원목 테이블을 지고 날르셨다.
그리고 그렇게
또다시 작업실을 차리게 됐다.
카페 라이프 대신 다시 시작된 골방 라이프!
부디 명작이 탄생하길.